40대에도 창작력 안 떨어지거든

3호선 버터플라이의 ‘Dreamtalk’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2-10-22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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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인상 깊었던 앨범은 모두 1집이다. 이이언, 무키무키만만수, 전기뱀장어, 404 등 썩 괜찮은 신인 혹은 새로운 길을 걷는 뮤지션이 눈에 띄었다. 서울을 주제로 한 ‘Seoul Seoul Seoul’, 여성 뮤지션들이 위안부 문제를 다룬 ‘이야기해주세요’, 블루스를 재정의한 ‘블루스 더, Blues’ 같은 컴필레이션 앨범도 훌륭하다. 반면에 앨범 가치를 증명하고, 선배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인 기성 뮤지션의 앨범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해 워낙 많은 걸작이 나온 까닭에 올해는 일종의 휴식기라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때, 그 아쉬움을 달래줄 앨범이 한 장 나왔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네 번째 앨범 ‘Dreamtalk’다. 이 앨범을 들으면서 지난해 어떤 뮤지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다음 앨범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내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우리나라건 외국이건 뮤지션이 40대를 넘어서면 창작력이 떨어지게 마련이거든.” 일견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팝 역사에서, 혹은 가요사에서 명반 기록은 대부분 20~30대 음악인의 몫이었다. 40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뮤지션조차 결국 공연 하이라이트를 수놓는 곡은 대부분 젊었을 때 만든 노래가 아니던가. 하지만 3호선 버터플라이는 그런 선입관의 예외가 될 법하다.

    세 번째 앨범 ‘Time Table’ 이후 8년, 그 긴 시간 동안 밴드는 각자 생업과 활동, 혹은 휴식에 충실했다. 아예 몇 년간 공연조차 안 했다. 격변하는 시간 속에서 화석이 되나 싶기도 했다. 그 사이 기타리스트이자 메인 송라이터인 성기완은 시집 두 권과 솔로앨범 두 장을 냈다. 보컬 남상아는 결혼을 했다. 베이시스트이자 사운드 엔지니어인 김남윤은 엔지니어로서 충실히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드러머 서현정이 합류하면서 팀에서 유일한 20대가 됐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레코딩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미국과 캐나다 투어가 있었고, 쉬는 기간 멤버들의 개인 활동 영역이 너무 커진 탓도 있다. 앨범 작업 막바지에 성기완은 “미국 투어를 다녀올 땐 팀에 에너지가 넘쳤는데, 앨범 작업이 늘어지면서 그게 식는 것 같아 좀 답답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 에너지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Dreamtalk’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앨범은 1집보다 2집, 2집보다 3집, 그리고 3집보다 4집이 더 발전하는 밴드가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앨범 각각이 모두 다른 방향을 가지면서도, 밴드 고유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음을 웅변한다. 그들은 밴드 뿌리인 기타 노이즈를 단단히 부여잡고 몽환적인 드라마를 피워 올린다. 원숙하기 이를 데 없는 남상아의 보컬은 전성기 한영애처럼 퇴폐와 허무를 잘근잘근 씹은 채 희로애락을 토해낸다. 제주의 바람, 길거리 수박 행상의 확성기 등 생활 곳곳에서 길어 올린 소리가 밴드 사운드의 일원이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원숙해지면서도 ‘감(感)’은 오히려 날카로워지는 성기완의 기타는 매너리즘 따위는 없다는 듯 연주와 구성 모두에서 비전형의 미학을 뽐낸다. 김남윤과 서현정의 안정되고 탄탄한 리듬은 성기완과 남상아의 역량이 틀에 갇히지 않고 뻗어나가도록 돕는다.



    스스로 걸어온 세월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상상력이 곡마다 가득하다. 1집과 2집의 주제가 노이즈록, 3집 주제가 한국 고전가요 스타일의 현대적 해석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신뢰와 자유로움이다. 강박에 얽매이지 않고 긴 시간 떨어졌다 다시 모인 밴드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각양각색의 13곡을 들으면서 새삼 놀란다. 이게 40대 두 명과 30대 한 명, 20대 한 명으로 구성된 밴드의 앨범이란 말인가. 그리고 깨닫는다. 그들이 8년이라는 공백을 허투루 보낸 게 아니었음을, 롤러로 테니스장 바닥을 밀듯 탄탄하게 각자의 시간과 밴드의 시간을 다져왔음을, 그리고 언제나 상업이 아닌 표현으로서의 음악을 욕망해왔음을.

    40대에도 창작력 안 떨어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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