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하게 그러나 흥정은 금물

연봉협상

  • 정은주 커리어케어 이사

    입력2012-10-22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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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드헌터는 종종 이직 희망자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헤드헌터가 하는 일 아닌가”라는 노골적인 요구에 난감할 때가 있다. 이직 희망자가 생각하는 연봉 수준과 회사가 면접 후 판단한 지원자의 가치에 상당한 차이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봉협상은 이직과정에서 고용인과 피고용인 간 매우 섬세한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매너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연봉협상을 할 때 이직 희망자가 빠지기 쉬운 오류 몇 가지를 짚어보자.

    먼저 연봉 액면가만 보지 말고 그 이면을 잘 살펴야 한다. A회사와 연봉 1억 원에 고용계약을 맺은 B씨, 그리고 연봉 7000만 원에 C회사와 계약한 D씨가 있다고 해보자. 이 경우 이직 1년 뒤 실수령액 총액과 실질적인 혜택 등을 따졌을 때 예상과 달리 B씨보다 D씨의 만족도가 높을 수 있다. 연봉협상을 할 땐 복리후생 항목과 주차 지원 여부, 법인카드 사용한도, 주택자금 융자, 직원 저리대출제도, 휴가제도, 퇴직금 계산방법, 변동성과급 수준, 최저 연봉인상 수준, 전문 계약직에 대한 차별조항 유무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직 희망자가 여성이라면 여직원을 대하는 조직 분위기도 회사생활 만족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연봉협상 시 제시되는 숫자에만 현혹되지 말고, 연봉 체계와 기타 수당 등 보이지 않는 실질적 연봉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무형 자산, 예를 들어 회사 명성이 다음 커리어를 위한 튼튼한 발판이 될 만한지, 롤모델로 삼을 만한 상사는 있는지, 전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는지 등도 고려해야 한다. 연봉을 협의의 ‘금액’으로만 보지 말고 광의의 유무형 ‘자산’으로 보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이직하면 지금 받는 연봉보다 15~20%는 더 받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오산이다. 이직 시 통상적인 기본 인상률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데도 많은 지원자가 이를 이직시장의 룰인 것처럼 착각한다. 회사마다 후보자의 경력 정도를 감안한 적합한 직급체계를 갖추고 있고, 드물게는 시장에서 검증된 우수한 인재라는 프리미엄이 더해져 최종 연봉 범위가 정해진다. 아쉽게도 이 범위를 벗어난 연봉은 거의 불가능하다.

    연봉협상은 지원자의 일방적인 ‘대박’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소위 후려쳐서 어처구니없이 낮게 정해지는 경우도 드물다. 그러니 기계적으로 15~20% 인상을 요구하기보다 먼저 회사 연봉체계를 묻고 경청하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다음 적당한 근거와 함께 자신이 원하는 연봉을 제시해야 한다. 이때는 부드럽지만 명료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희망 연봉의 근거는 현재 자신이 받는 연봉 수준이 될 수도 있고, 미래 그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를 수치로 표현한 것이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인사 담당자에게 희망 연봉이 근거 있는 금액임을 인식시키는 일이다.



    더 요구하지 않으면 손해라거나, 일단 많이 불러놓고 깎아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장사꾼이라면 몰라도 이직 희망자에게는 적절치 않다. 연봉협상은 흥정이 아니다. 각 회사의 인사 담당자와 임원들은 그동안 숱하게 면접 및 연봉협상을 거치며 수많은 지원자를 만났을 것이다. 그러니 흥정하는 듯한 협상 태도는 자칫 얄팍한 사람으로 비쳐 소탐대실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면접 때 애써 만들어놓은 자신에 대한 좋은 인상을 망칠 수도 있다. 연봉 8000만 원을 희망했던 사람이 회사에서 먼저 7800만 원을 제시하니까 돌연 9000만 원을 요구하며 그 중간쯤인 8000만 원대 초반에서 맞춰주리라 기대하는 건 옳지 않다. 한 번 상대하고 말 장사꾼이 아니라 계속 몸담고 지낼 회사에 제안하는 요구사항인 만큼 진정성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소극적일 필요는 없다. 연봉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려면 희망 연봉을 얘기해놓고 회사 결정을 기다리기보다 그동안의 성과와 성공 스토리, 창의적인 업무계획 등을 제시하면서 자기 가치를 스스로 부각하는 능동적 태도가 유리하다. 그런 점에서 연봉협상은 이력서를 작성하는 순간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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