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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웃지만 ‘족집게 도사’가 생각난다

신정원 감독의 ‘점쟁이들’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웃지만 ‘족집게 도사’가 생각난다

웃지만 ‘족집게 도사’가 생각난다
살기는 팍팍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하수상한’ 시절이다. 중산층이라도 언제 삶이 고꾸라질지 모른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에 기대를 품고, 말도 되지 않는 것에 매혹되는 것일까.

도시 골목마다, 구석마다 낡은 깃발을 드리우고 요상한 징표를 내건 ‘점집’ 문턱이 뻔질나게 넘나드는 발길로 분주하다. 차기 대통령을 맞춘다는 신기의 역술인도 앞다퉈 책을 낸다. ‘관상’이라는 제목을 내건 영화도 촬영 중이고, TV에선 고려 말 풍수를 소재로 한 ‘대풍수’라는 드라마도 방송한다. 저승 세계를 소재로 한 영화 ‘신과 함께’도 기획 중이다. 현실이 참담하고 미래가 예측 불가능할수록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믿음은 더 매혹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점쟁이들’(감독 신정원)은 제목부터 느낌이 확 온다. 대한민국 최고의 점쟁이들이 모여 큰돈을 손에 쥐려고 거나하게 굿판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주어를 도둑으로 바꾸고 굿판을 ‘한탕’으로 대체하면 그대로 영화 ‘도둑들’일 테니, 여러모로 ‘트렌디’한 영화다. 한두 명이 주인공이 아니라 여남은 사람의 이야기가 겹치고, 엎친 데 덮치는 식으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은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급속도로 유행하는 ‘인기 스타일’이다.

어떤 점쟁이들이 모였을까. ‘도둑들’에 전설적인 도둑 마카오 박이 있듯, 굿판 한가운데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점쟁이라고 불리는 ‘인천의 박 선생’(김수로 분)이 있다. 집에 붙은 귀신, 사람에 붙은 귀신을 쫓아주고 거액의 복채를 챙기는 역술인이다. 그는 거액이 걸린 굿판을 제의받고 전국에 있는 내로라하는 점쟁이와 퇴마사를 불러 모은다. 그중 한 명이 각종 기계를 스스로 발명해 파동을 감지하고 에너지를 추적하며 ‘과학’으로 귀신을 잡아내는 공학박사 출신의 청년 퇴마사 석현(이제훈 분)이다. 눈으로 귀신을 보는 파계승 출신의 점쟁이도 있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 자리를 깐 심인 스님(곽도원 분)이다. ‘처녀 보살’도 빠질 수 없다. 사람을 보고 한눈에 과거를 읽어내는 미모의 점쟁이로 일명 ‘춘천 아가씨’라고 부르는 승희(김윤혜 분)다.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보는 신기가 있다면, 앞날을 예지하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도 있다. 소년 점쟁이 ‘월광’(양경모 분)이다. 마지막으로 특종 여기자 한 명이 이 희대의 굿판을 취재하려고 합류한다. 대기업 비리를 추적하다 결정적 단서를 잡고도 정재계의 압력을 받은 회사 명령 때문에 한가한 화젯거리나 보도하려고 점쟁이들을 따라나선 찬영(강예원 분)이다.

이들이 모인 곳은 바닷가 마을 율진리이고, 굿판을 의뢰한 이는 지역개발에 눈이 먼 기업 회장이다. 수십억 원을 쏟아부어 땅을 파헤쳤지만 기이한 사고가 잇따라 개발이 지지부진하자 신통하다는 도사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드디어 굿판이 벌어지는 날. 난다 긴다 하는 점쟁이가 다 모였지만 분위기는 불길하기 짝이 없다. 마을 주민들은 험악한 인상으로 점쟁이들의 길을 가로막고, ‘도사 군단’이 탄 버스는 정체 모를 진동과 고장으로 추락 위기를 맞는다. 바닷가에 근엄한 제의를 위한 상을 차렸지만 먹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휘몰아치며, 급기야 여기저기 불길이 치솟는다. 공학박사의 귀신 잡는 기계 바늘이 춤을 추고, 소년 점쟁이는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채 발작하며, 심인 스님의 눈엔 시커먼 영령들이 율진리의 하늘을 휘젓는 모습이 보인다. 막강한 음기가 마을을 뒤덮고, 사악한 기운이 굿판을 벌이려던 점쟁이들을 격렬히 막아선 것이다. 결국 자리를 접은 도사들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가 반격을 시도하지만 기이한 사고와 죽음이 잇따르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얽히고설킨 도사들 간 ‘과거’가 하나둘 밝혀지면서 자중지란까지 일어난다. 그러던 중 점쟁이들의 신기와 여기자의 ‘인터넷 검색’에 잡힌 단서! 율진리 앞바다에 일제강점기의 보물선이 침몰해 있다는 것이다. 수조 원 가치의 금괴와 함께 말이다. 원혼으로 가득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사건은 과연 바닷속 난파선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웃지만 ‘족집게 도사’가 생각난다
요즘 유행하는 개념대로 한다면 이 영화의 재미는 ‘B급 유머’에 있다. 귀신이 눈에 보이고, 저주받은 영혼들이 불을 뿜으며, 퇴마사의 공격을 받은 악귀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쪼그라드는 ‘판타지’가 천연덕스럽게 나열된다. 점쟁이들 간 갈등과 충돌, 화해도 어이없을 정도로 주저 없이 이뤄지며 개그와 슬랩스틱, 거창한 음악이 뻔뻔하게 어우러진다.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처럼 숨 가쁜 격투와 추격 장면이 펼쳐지다가도 돌연 시시껄렁한 농담과 엎어지고 자지러지는 소동이 이어지면서 3류 코미디영화 같은 모양새를 띤다. 스릴러와 코미디, 호러와 액션, 로맨스와 가족극이 뒤죽박죽돼 기묘한 쾌감을 자아낸다. 메가폰을 잡은 신정원 감독은 이미 코믹 호러영화 ‘시실리 2km’와 거대 식인멧돼지를 소재로 한 괴물 재난영화 ‘차우’에서 독특한 유머감각과 ‘B급 감성’을 보여줬다. 신 감독 특유의 유머와 액션은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릴 만하다.

영화나 드라마 등 현대의 서사장르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존재는 마치 악몽처럼 동시대 관객의 욕망과 무의식을 투사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선 뱀파이어와 좀비가 등장하는 TV드라마와 영화가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현대사회에서 유일하게 영생하는 불멸의 존재 ‘금융자본’, 그리고 신용과 투자라는 이름으로 마치 바이러스처럼 증식하는 탐욕, 그 속에서 ‘살아 있는 시체’처럼 무기력할 뿐인 인간이 흡혈귀나 좀비로 은유되는 것이다. ‘점쟁이들’은 귀신을 통해 우리 사회의 탐욕을 풍자한다.

그러나저러나, 다음번 로또 당첨번호는 뭐가 될지, 금리는 오를지 내릴지, 집값은 뛸지 곤두박질칠지, 그것도 아니라면 다음 인사 때는 승진이나 될지 알아맞힐 수 있는 용한 점쟁이가 어디 없을까. 이번 대통령선거에선 누가 웃을지 꼭 집어낼 수 있는 족집게 도사를 아는 사람 어디 없나. 아닌 게 아니라, 살기가 갑갑하니 점집이라도 찾고 싶은 요즘이다.



주간동아 857호 (p62~63)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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