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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 동작 그만?

중국 견제 판 짜는 미국과 의견 충돌, 한미동맹 교착 상태

  • 글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jdkim2010@naver.com

‘자주국방’ 동작 그만?

‘자주국방’ 동작 그만?
“한미동맹이 데드록(deadlock·교착상태)에 빠졌다.”

최근 한미동맹 정책을 담당하는 국방부와 합참 영관급 장교 사이에서 나도는 말이다.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를 한 달여 앞두고 한미 군사동맹이 된통 꼬여서 아무런 합의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문제 발달은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연습 기간에 미국 측이 “한반도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과 북한의 불안정사태를 가정한 ‘개념계획 5029’를 통합적으로 운용하자”고 우리 측을 압박한 것이다. 이 두 계획 가운데 5027은 전면전 상황을 가정한 것이고, 5029는 전쟁은 아니지만 북한 체제가 붕괴하거나 극심한 혼란에 빠져 한미연합군이 개입해야 하는 사태를 가정한 것이다.

이 둘을 통합적으로 운용한다는 의미는 뭘까. 이제껏 한국은 북한에 불안정사태가 발생할 경우 자칫 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군사적 개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즉 북한 정세가 불안정해지더라도 굳이 전쟁 상황을 의미하는 ‘데프콘’을 선포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는 방안을 더 선호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불가피하게 군사적으로 개입한다고 해도 이는 한국 주도의 통일 기회가 돼야 하며, 미국과 중국이 북한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식의 위기관리는 용인하기 어렵다는 방침이었다.

민족주의 억제 아시아 국가 정렬



반면 미국 측은 북한의 불안정사태는 전쟁에 준해 관리해야 할 위기이며, 미국이 중국과 협력해 북한 핵무기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국제적으로 북한을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에 버금가는 비상사태 선포가 불가피하므로, 작전계획 5027과 개념계획 5029는 상호보완적으로 융합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다. 또 한반도 통일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책임을 분담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중국의 반발을 초래할 한국 주도의 통일을 목표로 설정하기는 곤란하다는 게 미국 측 시각이다. 북한은 한국 주권이 관철될 수 없는 별개의 국가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 측 군부가 유지해온 통일관을 뒤흔들 만한 사안이다. 만일 미국 의도대로라면 앞으로 한미동맹은 한반도 통일을 지원하는 동맹이 아니다. 그보다는 미국과 중국이란 ‘G2 체제’ 관점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하위체계에 지나지 않는다. 즉 미국의 주된 관심은 중국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한국 민족주의(국가주의)를 부정하고 영구분단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성을 가진다. 그러나 한국 군부는 이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동맹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푸념이 나올 만도 하다. 이 때문에 다음 달 SCM에 어두운 전망이 드리워진 것이다.

이러한 한미 간 상이한 인식은 미래 한반도 위기관리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북한의 불안정사태를 어떤 위기로 볼 것인가. 이 위기를 관리하는 목적은 한반도 통일인가, 아니면 중국과의 협력인가. 이 문제에 대한 한미 인식이 너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미국은 한국 민족주의를 매우 경계할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 동북아정책이 갖는 일관된 의도는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는 군사블록에 아시아 국가를 정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 요인을 억제하고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를 조속히 완성하고자 한다. 한일 군사협정 체결도 시간을 다투는 긴급한 사안이고, 한미일 합동 해상군사훈련, 미사일방어(MD) 추진 등 전략적 과제도 추진 중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이 ‘공해전투(air-sea battle)’ 전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데 동참하도록 군사적 진영을 갖추자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 의도가 반영된 한미 간 합의문이 ‘전략동맹 2015’다. 이 문서는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이 한국으로 전환되는 상황에 대비해 한미 양국이 각자 준비해야 할 사항을 망라한 가이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서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장차 한국이 자주적 억제력을 확보하는 것을 미국이 견제한다는 점이다.

단적인 사례 하나. 6월 국방부는 북한 전역을 타격하는 미사일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향후 5년간 2조5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가 나오자마자 크게 놀란 미 국방부는 주한미군으로 하여금 “미사일전력은 ‘전략동맹 2015’에서 합의된 전력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우리 합참에 던지도록 조치했다. 이어 미 공군 전략사령부 고위관계자가 미사일을 개발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 방문을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확보하는 데 대해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후 미국은 한국군의 탄도미사일 사정거리를 800km 이상으로 확대하는 한미미사일지침 개정에 대해서도 난색을 표하며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또한 원자력 발전소 폐기물 재처리를 허용하는 원자력협정 개정에 대해선 아예 협의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국 핵무장의 빌미가 될지 모른다”는 게 이유다.

독도 훈련 축소·공중급유기 취소

이어 7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며 한미일 군사협력을 촉진하려던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잠식되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이 대통령 독도 방문에 대해 여론의 80% 이상이 지지를 보였고, 정권 말기 실추된 대통령 위상을 한껏 높였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한일 군사협정을 주도한 외교안보수석실이 아니라 홍보수석실이 적극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려던 시도는 국무회의 통과 사흘 만에 전격 취소되고 김태효 대외전략기획관은 경질됐다. 이 현대판 ‘갑신정변’은 정권 지지율에 치명타를 입혔고 외교안보수석실은 이후 자세를 낮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에서 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독도 방문은 준(準)동맹으로 결속하려던 한일 관계를 갈등 관계로 반전시키며,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에 균열을 가져오는 국가주의를 전면에 등장시켰다. 일본과 협력해 한미일 해양세력 진영과 블록을 강화하려는 지향성을 지닌 외교안보수석실 관점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일본과 고강도 외교전쟁을 불사하는 갈등 국면에서 반전 기회를 노리던 외교안보수석실은 8월 30일 행동을 개시했다.

첫째는 9월 7일 예정된 독도 방어훈련에서 해병대 입도훈련을 취소하기로 한 것이다. 최근 상륙기동헬기와 상륙공격헬기를 도입해 항공력에 의한 상륙전을 모색하는 해병대는 독도에서도 그 위용을 과시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독도 방어훈련은 국민적 지지를 받는, 이미 예고된 훈련이었다. 국가가 한 번 결정한 일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 자체도 국격을 훼손하는 일이지만, 이미 훈련에 참여할 해병대 병력과 장비를 다 대기해놓은 상태에서 명분 없이 훈련을 취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논란이 확대되자 9월 4일 천영우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해명했다. 여기서 나온 천 수석비서관의 발언.

“1986년부터 지금까지 26년 동안 독도 방어훈련을 해왔다. 처음엔 1년에 10여 차례 하다가 2003년부터 두 번씩 했다. 금년 훈련은 워낙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하는 것이라 평소와 달리 해석될 소지도 없지 않다. 지금까지 독도 방어훈련을 한 게 26년째인데, 해병대가 참여한 건 한두 번이다. 작년에도 지휘부 여섯 명이 헬기로 갔다 온 적이 있다. 올해는 모든 군사훈련 목표가 대통령 방문으로 달성됐는데 굳이 규모를 키워 평소보다 더 크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고민 끝에 기존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해경·해군 합동훈련으로 조정했다.”

‘자주국방’ 동작 그만?
이날 천 수석비서관은 해병대의 독도 상륙훈련이 마치 경솔한 행동인 것처럼 묘사했다. 그런데 이날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결정이 내려졌다. 공군은 내년부터 1조8000억 원이 투입되는 공중급유기 4대 도입사업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내년 예산에 착수금 550억 원을 반영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기획재정부는 이를 360억 원으로 조정한 후 청와대와 협의했다. 그런데 이날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기획경제부 예산실장에게 이 예산을 전액 삭감하라고 지시했다. 이튿날부터 성일환 공군 참모총장이 직접 기획재정부에 전화를 거는 등 사업을 살리려고 동분서주했지만 죽은 사업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전투기의 체공시간을 늘릴 수 있는 공증급유기 1대는 전투기 20대를 도입한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공군이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독도에서 한 번 작전할 수 있는 시간이 F-16은 4분, F-15K는 40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체공시간이 짧다. 따라서 공중급유기는 독도 같은 방어수역에서 항공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 장비다. 국방부와 기획재정부가 합의한 사업예산을 청와대가 나서서 삭감한 데는 정치 논리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바로 이날 또 하나의 놀라운 결정이 내려졌다. 국방부는 이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뒤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점을 감안해 한일 간 군사협력 문제를 재검토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9월 말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부산항에 입항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훈련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냐는 점이었다.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욱일승천기를 게양한 일본 함정이 들어와 우리 함정과 함께 기동하고 한일 양국 군 관계자가 악수하며 환담하는 것을 수용해야 할지 말이다. 독도 문제로 반일 감정이 고조된 8월 국방부는 이를 연기하거나 재검토하려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독도 문제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비상한 관심으로 PSI 훈련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해상자위대 함정 부산항 입항

그러나 청와대는 8월 30일 “예정대로 실시한다”고 결정했다. 2년 전에도 이미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부산항에 입항한 전례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제는 외국 함정의 경우 치외법권이 관철되는 그 나라 영토나 다름없기 때문에 우리가 “제국주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게양하지 마라”고 일본 측에 요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욱일승천기는 이미 일본 군기로 사용되기 때문에 일본 함정이 이를 게양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이렇듯 올여름 한반도 정세는 한국 민족주의와 자주적 방위정책을 견제하면서 한미일 군사협력을 달성하려는 국제세력과 어떻게든 자주적 방위태세를 확립하려는 민족주의 세력의 충돌로 숨 가쁘게 흘러왔다. 미국과 일본의 의도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억제’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국방정책이 설 자리가 없다. 2015년 전작권 전환을 앞두고 미국이 요구하는 미래 한반도 위기관리 체제에 편승하느냐, 아니면 한국 주도의 한반도 방위와 통일이라는 전통적 보수의 가치를 지키느냐. 국방부는 데드록에 걸려 있다.



주간동아 856호 (p100~102)

글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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