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6

2012.09.24

예절 교육, 스파, 장난감 유치원…개 팔자가 ‘상팔자’

반려동물 산업 급성장, 사람보다 더 좋은 대우도

  • 글 | 이채강 인턴기자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lck0728@naver.com

    입력2012-09-24 11:0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예절 교육, 스파, 장난감 유치원…개 팔자가 ‘상팔자’

    1. 강아지 유치원.

    내 이름은 뽀미. 요크셔테리어예요. 언니가 분주하게 출근 준비하는 소리에 잠이 깼어요. 지금은 아침을 먹고 언니 발뒤꿈치를 총총거리며 따라다니고 있어요. 어, 밖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나요. 오늘도 유치원 선생님이 저를 데리러 왔나 봐요. 저는 유치원이 정말 좋아요. 아무도 없는 캄캄한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긴 싫거든요. 유치원에 가면 포메라니안과 푸들, 퍼그 친구랑 공놀이도 하고 선생님이 주시는 맛난 수제 간식도 먹을 수 있어요.

    유치원에서 TV도 시청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 반려(伴侶)동물.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반려동물 유치원, 호텔 등 관련 산업이 팽창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1995년 5000억 원이던 반려동물 관련 산업 규모는 2010년 1조8000억 원에 달했다.

    이에 따라 반려동물 팔자가 ‘진짜 상팔자’가 됐다. 집 지키기는 더는 이들의 임무가 아니다. 반려동물은 차를 타고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과 놀거나 예절 교육을 받는다. 몸이 아프면 언제든 CT검사를 받을 수 있고, 아래위 이빨이 어긋난 경우 100만 원이 넘는 교정 치료를 받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반려동물 복합문화공간은 의료원, 미용실, 유치원, 카페 등을 갖춰 사람이 이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24시간 운영하는 의료원에는 수의사 약 20명이 전문 분야별로 나눠 상주하고 있다. 이 의료원을 찾는 반려동물은 하루 평균 30마리. 강희경 대리는 “야간 진료시간에는 급체나 추락사고로 병원을 찾는 고객이 많다”며 “중한 수술의 경우 보호자는 수술이 끝날 때까지 마음 졸이며 기다리곤 한다”고 말했다.



    온돌 바닥이 깔린 유치원에서는 배변 학습과 예절 교육 등을 진행한다. 유치원에는 반려동물이 하루 15~20마리 출석한다. 교실에는 미끄럼틀을 타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반려견도 있다. 친구가 많아 즐거워서인지 잠을 자거나 기운 없이 처져 있는 반려견은 눈에 띄지 않는다. 15마리 정도 되는 강아지들이 쉴 새 없이 깡충깡충 뛴다.

    동물들은 다른 동물과 함께 어울리며 사회화 교육을 받고, 유치원 선생님은 반려동물의 일과와 특이사항 등을 알림장에 적어 보호자에게 전달한다. 보호자는 알림장을 통해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말썽을 부리진 않았는지를 확인한다. 보호자 한향이(29) 씨는 “우리 강아지가 사람하고만 지내니까 다른 강아지랑 어울리지 못하고 이기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유치원에 맡겨봤다”며 “강아지가 외로움도 덜고 친구도 사귀고 와서 좋았다”고 말했다.

    유치원 옆에 위치한 미용실에는 작은 상담실이 있다. 그곳에서 보호자와 반려동물은 다른 강아지의 사진을 보면서 원하는 미용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다. 상담이 끝난 후 미용실로 가면 반려동물 전용 드라이기를 비롯해 각질제거까지 가능한 스파 시설도 준비돼 있다.

    언니가 휴가를 떠나서 오늘부턴 호텔에 묵게 됐어요. 언니는 지금쯤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제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저는 사실 냄새나고 칙칙한 언니 방보다 이곳이 더 좋아요. 여긴 공기청정기도 있고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오거든요. 간호사 언니들이 매일 산책을 하게 해주고, 의사 선생님이 회진도 오세요. 2박3일 동안 호강하다 가겠네요. 야호!

    자식 같은 반려동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고액을 지불하는 주인도 있다. 반려견과 보호자가 함께 참석해 강아지 이해하기, 사회화 교육, 올바른 산책법 등을 배우는 퍼피클래스는 4회(1회 40분)에 약 30만 원. 40분에 7만5000원꼴이다. 반려동물 용품 가격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 가격에 버금간다. 한 명품 브랜드 우비는 12만5000원이고, 머리가 좋아진다는 장난감은 7만~8만 원대이다.

    예절 교육, 스파, 장난감 유치원…개 팔자가 ‘상팔자’

    2. 반려동물 의료원의 진료 스케줄. 3. 드라이어로 강아지 털을 손질하는 모습. 4. 강아지 유치원에서 ‘학부모’에게 보내는 알림장.

    기꺼이 지갑을 여는 주인들

    예절 교육, 스파, 장난감 유치원…개 팔자가 ‘상팔자’

    다쳐서 입원 중인 강아지.

    해외 반려동물 산업 시장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초기 단계로, 앞으로 더 큰 성장이 기대된다. 미국에는 반려동물 전문 변호사라는 직업이 생겼는가 하면 반려동물 전용 비행기도 있다. 이탈리아에는 반려동물이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갖춘 해수욕장도 있다.

    반려동물의 호강은 죽은 후에도 계속된다. 주인은 반려동물이 죽으면 반려동물 장묘업체에 연락해 전문적인 장례식을 치를 수 있다. 장례식, 화장, 납골, 제사 등의 과정은 식의 종류와 동물 크기에 따라 30만~500만 원선에서 진행된다. 160만 원 상당의 순금 금장수의를 판매하는 온라인 장묘업체도 있다. 2007년 반려동물 장묘업을 제도적으로 도입한 이후 현재 전국에는 약 270개 애완동물 장묘 및 보호 서비스업체가 등록돼 있다.

    매년 장례식 400건 이상을 대행하는 A장묘업체는 등급에 따라 20만, 50만, 100만, 300만 원을 받고 식을 준비한다. 유골단지가 포함된 20만 원짜리 개별 장례식의 경우 보호자 참관만 가능하지만, 가장 비싼 VIP장의 경우 VIP예식실 사용, 염습, 최고급 수의, VIP실 납골, 장례전용 대형 리무진 등이 추가된다.

    납골 비용 역시 조건에 따라 1년에 10만, 40만, 100만 원 단위로 나뉘며, 100만 원짜리 납골당에는 냉난방 시스템이 가동된다. 하지만 납골당을 이용하는 고객은 거의 없다. A장묘업체 대표는 “납골당 비용이 부담돼서라기보다 유골을 가까이 두고 싶어서 집에 가져가는 고객이 많다”며 “고객 중 90%가 유골을 집에서 보관한다”고 말했다.

    죽어서까지 호강은 계속

    유골을 스톤 형태로 제작해 목에 걸고 다니는 고객도 있다. 스톤은 화장 후 남은 순수 유골분을 초고온으로 용융해 만든 물체다. 비록 반려동물은 죽었지만 유골이라도 곁에 두고 싶은 주인의 마음이다. 스톤을 자갈 크기로 만들어 보관할 수 있고, 그보다 더 작게 제작해 펜던트, 휴대전화 고리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고객들은 각자의 종교에 따라 장례식을 진행하기도 하며 사이버분향소에 비문을 새기고 추모 글을 남기기도 한다.

    연 10만 마리 동물 유기…상상 초월 학대도 비일비재
    예절 교육, 스파, 장난감 유치원…개 팔자가 ‘상팔자’
    노인정 뒷마당. 한 노인이 마당에서 키우던 개를 들어올렸다. “마땅한 막걸리 안줏거리가 없던 차에 잘됐다.” 개는 줄에 묶여 벽에 대롱대롱 매달릴 때까지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곧 이어지는 거센 망치질. 깨갱! 외마디 비명이 길 건너 유치원까지 퍼져나갔다. “선생님, 저기 좀 보세요!” 유치원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유치원 선생님이 재빨리 동물자유연대에 구조를 요청했고, 노인정 뒷마당에 있던 개는 가까스로 구조됐다. 구조 당시 개는 두개골과 턱뼈가 함몰됐으며, 한쪽 눈이 일그러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

    호의호식하는 반려동물이 증가하는 이면에는 버려지고 학대당하는 동물도 많다. 농림수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버려지는 유기 동물은 평균 10만 마리다. 윤정임 동물자유연대 국장은 “사설 센터나 민간에서 구조돼 집계되지 않은 유기 동물까지 포함하면 20만 마리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자유연대는 학대당하는 동물을 구조하는 단체로, 서울 성동구 행당동 2층짜리 작은 빌라에서 개와 고양이 약 100마리를 보호하고 있다(사진). 1동물 1실인 고급 반려동물 호텔과는 달리 방마다 6~7마리 개가 모여서 생활한다. 붕대를 감고 있거나 눈이 한쪽 이상 실명된 동물도 많다. 깔끔하게 미용돼 있고 제법 예쁜 강아지도 눈에 띈다. 이런 강아지는 작년 정부가 반려동물 진료비에 부가가치세 10%를 부과하면서 버려지기 시작했다. 사랑하던 반려동물이라도 치료에 100만 원 이상 드는 중증질환을 앓으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버려진 강아지와 고양이의 질병을 치료해 재입양 보내는 것이 동물자유연대가 하는 일이다. 발견 당시 눈 양쪽에 고름이 가득 차 앞을 보지 못하던 복순이는 치료를 통해 한쪽 시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꽉 조인 목줄이 목을 파고들어서 생긴 상처를 3개월이나 치료받은 진돌이도 새 가족을 기다린다.

    현재 동물자유연대 같은 사단법인은 정부의 투자와 도움이 절실하다. 시민 후원금만으로는 동물 보호에 충분한 설비를 갖추기 힘들 뿐 아니라, 동물자유연대처럼 주택가에 위치한 단체의 경우 소음 탓에 이웃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물리적 동물 학대는 처벌이 가능하지만 방치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어 관련 제도가 필요한 상태다. 동물을 땡볕 아래 방치해두거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짧은 목줄에 묶어놓는 방식의 학대도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찬한 서정대 애완동물과 겸임교수는 “반려동물을 적당히 훈련시키는 것도 주인 책임”이라면서 “그러지 않고 말을 안 듣는다며 학대한다면 반려동물이 정서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괴로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