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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사이판·팔라우 현지 취재-위안부 그 생생한 증거들 03

“패전 후 그녀들의 삶에 주목하라”

윤정옥 전 정대협 대표의 위안부 추모비 방문기

  • 윤정옥 전 이화여대 교수·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패전 후 그녀들의 삶에 주목하라”

윤정옥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가 9월 초 여든여덟의 나이로 홀로 일본 미야코지마시(市)를 찾았다. 태평양전쟁 당시 위안소 17곳에 조선인 위안부 120여 명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그곳에서 위안부 위령비(아리랑비) 제막 4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윤 전 대표는 “일본에서 조선인 위안부를 기리는 비석은 이곳에만 있고, 내년에는 (건강 때문에) 갈 수 없을지도 몰라 기를 쓰고 갈 수밖에 없었다”며 방문기를 들려줬다.

“패전 후 그녀들의 삶에 주목하라”

일본 미야코지마시에 있는 조선인 위안부 위령비 건립 4주년 행사 모습. 아리랑비는 일본에 있는 유일한 위안부 위령비다.

일본 오키나와현(縣) 미야코지마시(市)에 요나하 히로토시라는 남자가 살아요. 그분은 일곱 살 때 우리 위안부들을 봤는데 무척 아름다웠다고 기억해요. 아마도 오키나와인보다 피부가 희고 먹지 못해 날씬했기 때문일 테지요.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고, 천녀(天女)라고 표현하더군요. 군대 막사 주변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여자들이 나무 아래에 앉아 아리랑을 구슬프게 불렀는데 그것이 소년의 뇌리에 박혔다고 해요. 요나하 씨는 위안부가 뭔지, 아리랑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대요. 하지만 나중에야 이들이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 알았고 그들을 기리는 비를 세우겠다고 다짐했다고 해요.

그러던 차에 6년여 전 와세다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과 박사과정에 있던 홍윤신 씨(현 아오야마가쿠인대학 한국사 강사)가 ‘오키나와 전쟁(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에서 전개된 지상전)에서 오키나와인과 조선인의 관계-일본군 위안소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논문을 쓰려고 현지 조사를 갔다가 요나하 씨를 만났고 저에게 소개해줬어요. 당시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곤 한일 위안부 위령비 건립위원회를 만들었고, 미야코지마시 위안소 조사활동과 추모비 건립모금을 하면서 2년을 보낸 뒤 2008년 9월 아리랑비를 세웠어요. 추모비를 세우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미야코지마 시장이 위안부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요나하 씨가 자기 집 앞에 있는 터를 기증하고 아리랑비 비문까지 썼죠.

“진정한 사과 없이는 恨 안 풀려”

우리는 위안부를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옆에 세계평화기원비도 세웠어요. 위안부라는 가엾은 여자들이 생긴 것은 전쟁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세계평화기원비 뒤에 일본군 때문에 여성 성폭력을 경험한 12개국의 언어로 ‘지구촌에 평화를 기원한다’는 말을 썼어요. 거기에는 베트남어도 포함했죠. 우리는 우리나라 군인이 베트남전쟁 중에 현지 여성을 범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아리랑비 제막 4주년을 맞아 9월 1~3일 그곳에 머물렀어요. 한국 측에서는 저 혼자 갔는데, VAW-RAC(Violence Against Women-Research Action Center) 나카하라 미치코 대표 등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모임’에 참석해 ‘아리랑비 주변을 평화의 숲으로 조성하자’고 제안했죠.

저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수요집회를 1000번 넘게 지속하는 걸 보면서 한이 뭔지 알았어요. 할머니들은 위안소 생활을 설명하면서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한을 풀지 못해 죽을 수도 없다”고 말씀하시거든요. 제가 지금껏 이 일을 하는 것도 할머니들의 한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요즘 일본 정치인들이 위안부의 강제 동원 여부를 두고 말이 많은데, 저는 위안부들이 전쟁이 끝난 뒤 하나의 인간으로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에 관심을 두라고 말하고 싶어요. 대부분 이들은 패전 뒤 버려졌고, 현지에 정착했다고 해도 상당수가 아이를 낳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생각해보세요. 한 집안에서 시집 안 간 딸이 성적으로 유린당했다는 사실은 그 집의 가장 큰 수치잖아요. 그것이 국가 전체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모욕이죠. 일본 사람은 물론, 한국 사람도 민족적으로 가장 큰 고통을 짊어진 소녀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리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주간동아 855호 (p18~18)

윤정옥 전 이화여대 교수·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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