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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건강에 답하다

공자는 까칠한 식품위생주의자

‘논어(論語)’와 공자의 건강 ①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공자는 까칠한 식품위생주의자

유교 비조(鼻祖)로 추앙받는 공자(孔子, 이름은 구(丘), BC 551~BC 479)가 살아생전 건강관리에 무척 신경 썼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논어’(論語)에 나온다. 73세에 세상을 뜬 공자는 당시로서는 장수를 누렸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에 의하면 공자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볼 만큼 키가 컸다고 한다. 기골이 장대한 풍모를 가졌던 듯하다.

공자는 활동 배경인 춘추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받아주고 펼칠 수 있는 나라를 찾아 생의 대부분을 유랑객으로 보냈다.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고생길’이라는 속언도 있듯이 그가 이국 타향에서 의식주에 걸쳐 갖은 고생을 했음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자는 말년까지 건강한 삶을 누렸다. 공자의 건강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핵심적으로 말하자면 “군자는 음식을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거처함에 있어 편안함을 구하지 않는다(君子食無求飽居無求安)”는 것이다. 이 구절은 ‘논어’ 학이(學而)편에 등장하는데,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담은 일종의 어록집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공자의 후인이 기록한 ‘논어’에는 공자가 먹거리에 관한 한 꼼꼼히 따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여럿 보인다. 공자의 평소 생활하는 모습을 문인들이 살피고 기록한 향당(鄕黨)편을 보면 공자의 식성이 매우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공자는 음식을 매우 가려 먹었던 듯하다. 공자는 잘 찧은(도정한) 쌀밥을 싫어하지 않았고, 잘고 가늘게 저민 회(膾)를 싫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가의 가르침은 지나침을 경계하기에 ‘좋아했다’는 말을 ‘싫어하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반면 쉰밥이나 상한 생선, 오래된 고기는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에는 나라에서 제사를 지낸 후 그 고기를 정부 관리급인 대부(大夫)에게 하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공자는 나라 제사에 오른 고기는 그날 밤을 넘기지 않았고, 집에서 제사 지낸 고기 역시 사흘 이상 놔두지 않았다. 장시간 보관한 고기는 부패할 가능성이 크므로 위생관리를 철저히 했다는 뜻이다.

공자는 또 빛깔이 좋지 않거나 냄새가 고약한 음식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잘 익히지 않은 것과 제때가 아닌 음식도 먹지 않았다. 심지어 반듯하게 썰어놓지 않은 음식은 먹지 않았고, 그 음식에 간을 치는 장(醬)이 없어도 들지 않았다. 장을 친 음식을 고집했다는 것은 자연산 조미료로 소독되지 않은 음식물을 경계했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춘추시대에는 사람들의 위생관념이 지금처럼 철저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옛사람의 수명이 짧았던 것도 상당 부분 위생처리 시설과 위생관념이 부족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의학사가들의 얘기도 있다. 그런 점에서 공자는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먹거리의 위생관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체득했을 터이다.

그래서 공자는 자신이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음식에 대해서는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냈다. 길에서 파는 술과 시장에서 사온 육포는 손도 대지 않았으며, 친지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챙겨 보낸 약재도 무슨 성분이 들어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를 갖추어 정중히 거절하기도 했다.

공자는 음식을 가려먹으면서 또한 적절한 양을 넘기는 법이 없었다. 찬으로 나온 맛난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주식보다 더 먹는 법이 없었다. 음식은 배부르지 않게, 간결하게 먹어야 한다는 게 공자의 식습관이었다. 술을 마실 때도 일정하게 정해놓은 양은 없었으나 취해서 어지러운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먼저 경건하게 제를 지내는 절차를 밟았다고 한다. 그만큼 공자는 정성껏 만든 음식을 정성껏 먹었던 것이다(공자의 생활건강법은 다음 호에 이어짐).



주간동아 854호 (p80~80)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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