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3

2012.09.03

뮤지션 과잉소비 욕망만 남을라

음악+예능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2-09-03 11: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뮤지션 과잉소비 욕망만 남을라
    음악만 나오는 음악 프로그램은 경쟁력을 상실했다. 이제 음악은 예능 포맷과 결합할 때 비로소 편성된다. ‘슈퍼스타K’로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은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로 정점을 찍었다. 심지어 밴드를 상대로 한 ‘TOP 밴드’가 있고, 보컬 트레이너들도 참가한 ‘보이스 코리아’가 있었으며, 그 밖에도 ‘오페라스타’를 비롯한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오고 사라진다. 아이돌과 인디밴드, 그리고 지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이 어울려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아이돌 일색이던 TV에 이렇게라도 다양한 가수와 음악지망생들의 설 자리가 마련됐다는 긍정적 의견, 또 하나는 음악을 콘텐츠 사냥의 수단으로 삼을 뿐이라는 부정적 의견. 둘 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계속 아이돌‘만’ 보면서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 좋은 음악인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상황을 한탄하고 있지 않을까.

    찬반은 그렇다 치고, 예능과 음악이 결합한 덕에 음악 플랫폼이 바뀌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한국은 엄청난 사교육과 야근, 그리고 수도권 집중 개발로 공연 관람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기 어렵다. 동네 펍에서 동네 밴드가 공연하고, 뮤지션이 앨범을 내면 전국을 돌면서 공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공연은 복제가 불가능한, 실시간 예술이지만 이런 환경 탓에 대중은 복제물, 즉 음원과 방송으로 음악을 듣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스포츠나 천하제일 무도회를 방불케 하는, 경쟁이라는 포맷을 갖춘 음악 프로그램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저 공을 던지고 치고 뛰는 야구가 재미있는 이유는 승부와 순위라는 요인 때문인데, 음악 프로그램이 그렇게 변한 덕이다. 게다가 복제 음악이 아닌, 진본 음악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공연을 접하기 힘든 환경에서 시청자는 ‘나가수’를 보면서 공연을 보고 싶다는 욕망을 대리 만족하는 것이다.

    여기에 시청자가 당락을 결정짓는다는 요소는 대중에게 스스로를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즉, 시청자로 하여금 기획사에서 생산한 스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실력 있는 스타를 발굴하거나 쟁쟁한 가수에게 탈락의 고배를 안기는 권능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갑’ 처지에 서고 싶은 수많은 ‘을’의 욕망을 충족해주는 것이다. 이런 욕망의 장치들과 결합해 음악은 다시 일반 대중과 만난다.



    뮤지션 과잉소비 욕망만 남을라
    여기서 예능의 역기능이 우려된다. 예능이란 그 파급력이 필연적으로 과잉소비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당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고유성은 사라지고 보편성만 남는 결과를 초래한다. 1995년 영국 글래스턴베리에 대타 헤드라이너로 서서 하루아침에 브릿팝(britpop) 최후의 승자가 된 펄프가 그 과잉소비 탓에 브릿팝의 종말, 즉 계급문화의 소멸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홍대앞이 걷고 있는, 무분별한 상업자본의 잠식으로 문화 고유성이 사라지는 현상과도 유사하다. 거의 모든 영역이 예능이라는 플랫폼의 콘텐츠로 확산된 지금, 개성과 고유성을 갖춘 뮤지션들의 과잉소비가 걱정되는 이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