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5

2012.07.09

“내 삶과 예술” 솔직 담백한 거장의 속삭임

자화상展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2-07-09 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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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과 예술” 솔직 담백한 거장의 속삭임

    천빈 지음/ 정유희 옮김/ 어바웃어북/ 435쪽/ 2만 원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고흐의 자화상을 보라고 한다. 고흐의 자화상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고통’이다. 실제 고흐는 서른일곱 살에 권총 자살을 하기 전 “고통은 영원하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짧은 생애 동안 자화상 40여 점을 남겼는데 그중 대부분을 죽기 얼마 전인 1885~89년에 그렸다.

    1887년 작품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은 고흐의 광기 어린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노란색 모자는 곤궁한 생활을, 거친 얼굴과 붉은 왼쪽 귀, 핏발이 잔뜩 선 눈은 불안과 외로움을 담고 있다. 귀까지 잘랐지만 고통은 여전히 그를 괴롭혔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는 고통에서 벗어났다.

    “고흐는 자책감과 자학적인 행위로 내면의 고독과 불안을 쏟아냈다. 그의 열정은 흥분과 무모한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자아를 해부하고 탐색했는데 그럴수록 불안과 고독은 더욱 깊어졌다.”

    저자는 ‘자화상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뒤러에서부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이끈 다빈치와 라파엘로를 거쳐 홀바인, 틴토레토, 루벤스, 피카소, 달리까지 거장 111명의 자화상 200여 점을 통해 그들이 지나온 삶과 예술의 궤적을 좇는다.

    다빈치는 자화상을 거의 그리지 않은 화가로 유명하다. 유화 자화상은 한 점도 없고 소묘 자화상이 유일하다. 이런 다빈치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은밀한 방법으로 그림 속에 자신을 그려 넣었다. 1481년 완성한 제단화 ‘동방박사의 경배’에는 스물아홉 살 다빈치 모습이 담겼다. 다빈치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이끌었던 라파엘로 역시 ‘아테네 학당’에서 고대 유명인사들의 초상을 형상화하면서 자기 얼굴도 그려 넣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출신 화가 렘브란트는 평생 수많은 자화상을 그렸다. 그가 남긴 자화상 100여 점은 렘브란트 인생을 영화처럼 이어간다. 20대 중반부터 부와 명예를 얻기 시작한 렘브란트는 30대를 넘어서면서 최고의 화가가 됐다. 상공업으로 큰돈을 번 신흥부자들에게 렘브란트가 그린 초상화는 필수품이었다. 초상화를 그려주고 부를 얻었지만 렘브란트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힘들어했다. 말년엔 ‘저주받은 거장’으로 취급받았지만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그림을 그리며 허전한 영혼을 채워나갔다.

    최고의 정물화로 꼽히는 ‘사과와 오렌지’를 그린 세잔의 인상은 마치 심술궂은 고리대금업자나 감옥 교도관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세잔은 비호감형인 자기 얼굴을 30여 점 그렸다. 그는 험상궂은 인상만큼 성격도 괴팍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래서 모델을 구할 수 없었고, 그는 틈나는 대로 자기를 모델 삼아 자화상을 그리며 다양한 실험을 이어갔다. 세잔은 비교적 젊은 시절부터 머리가 벗어져 인상이 더 험악해 보였다.

    “화가의 삶이 가장 잘 투영된 작품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화상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각도나 표정을 지어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거울 안에 서 있는 자신의 낯선 모습을 만나게 된다. 자화상은 자기애가 아니라 화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그림이다.”

    바쁜 현대인 가운데 거울을 보면서 자기 눈을 응시하고, 내면의 모습을 만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거장들의 자화상을 통해 저자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자화상을 그려나가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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