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1

2012.06.11

음악은 제품이 아니라 ‘작품’이다

음원정액제 유감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2-06-11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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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은 제품이 아니라 ‘작품’이다
    음악계는 좀처럼 뭉치지 않는다. 시장과 미디어에서의 영향력에 따라 같은 사안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SM, YG 등 굴지의 기획사는 물론 인디 레이블까지 한목소리를 냈다. 디지털 음원가격 정책 때문이다. 5월 23일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와 서교음악자치회, 주식회사 KMP홀딩스 등 음악 관련 단체가 음원전송사용료 징수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에 제출했다. 1인 시위 등 후속 움직임도 이어졌다. 제작자뿐 아니라 뮤지션, 작곡가도 트위터 등에서 음원정액제를 폐지하고 음원종량제를 정착시키자는 운동을 벌였다.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한 달에 일정액을 내고 무제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원정액제가 그대로 유지됐다. 개별 곡을 내려받는 데 드는 비용이 60원에서 120원으로 올랐을 뿐이다. 과정은 씁쓸했다. 대형 음원 유통 사이트 두 곳이 가격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 이탈을 우려해 음악계와 대립각을 세웠다. YMCA는 성명을 내고 “종량제 중심으로 시장을 재편할 경우 대폭적인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논의 과정에서 문광부 담당자가 했다는 “디지털 음원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소비자를 위한 마인드로 접근하겠다”는 말은 음악계 사람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음원이 공공재라니, 국가에서 음악을 생산하나? 음악이 공기나 물처럼 애초에 존재하는 것인가? 문광부가 최종안을 발표하기까지 정부와 플랫폼 사업자, 소비자 단체가 보인 태도는 결국 음악인에게 무조건 희생하라는 요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음악을 ‘소비재’로 대하는 한국 사회의 단적인 면이다.

    또 하나의 풍경이 있다. 6월 2∼3일,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레코드페어를 열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여러 레이블과 판매업체가 세계 각국의 CD, LP를 내놓고 판매한다. 지난해와 달리 개인 판매자도 참여해 소중한 컬렉션을 다른 이들과 나눴다.

    ‘디지털 음원은 공공재’라든지 ‘대폭적인 가격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부담’ 같은 건 여기서 찾아볼 수 없었다. 신중현의 희귀 앨범이 수십만 원대에 거래되고, 비틀스와 롤링스톤스의 초판 앨범에 수십만 원대 가격을 매겼다. 집에 턴테이블이 없는데도 1만 원에 몇 장씩 파는 중고 LP를 뒤적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미 CD가 있는데도 아날로그를 느끼고 싶어 한정 음반으로 발매 수입된 LP를 구매하는 이들도 있었다. 판매자의 친절한 설명과 추천에 따라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제3세계 음반을 사려고 선뜻 지갑을 여는 이도 있었다.



    이번 레코드페어의 백미는 ‘하나음악 특별전’이었다. 조동진, 조동익, 장필순, 한동준, 이규호, 그리고 오소영까지 1980∼90년대 하나음악에서 발매한 앨범을 재발매해 레코드페어에서 첫선을 보인 것. 조동진, 조동익 형제를 제외한 아티스트들은 직접 공연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 앨범을 사려고 줄이 길게 이어졌고, 몇몇 한정 음반은 금세 매진되기도 했다. ‘소비재’가 아닌 ‘소장재’로서의 음악이 그곳에 있었다.

    두 개의 대비되는 풍경은 음악산업의 미래를 묻게 한다. 음악은 산업이기도 하고 예술이기도 하다. 산업은 제품을 생산하고 예술은 작품을 낳는다. 1990년대 아이돌 시대가 열린 후 엄청난 물량과 홍보력을 동원해 최단기간에 유행가를 만들어내고 이내 시장에서 사라져버리는 풍조가 일반화했다. 디지털 음원의 보편화는 그런 풍조에 날개를 달았다. 현대 자본주의 산업의 미덕인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그러한 ‘제품’으로서 음악을 듣기 시작한 이들이 있을까. 레코드페어에 모인 많은 이와 레코드페어에서 재조명한 하나음악의 음반이 의미하는 건 무엇인가. 사라져버릴 줄 알았던 LP 판매량이 다시 늘어나는 건 어떤 의미인가. 지금도 여전히 음악이 ‘작품’으로서 가치를 지닌다는 뜻일 것이다.

    음악을 공공재나 수출 상품으로 바라보는 정책을 재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예술로서의 음악에 많은 지원과 배려가 따라야 한다. 대중음악 역사에서 세계를 석권한, 즉 가장 많이 수출된 음악은 대체로 예술적 혁신을 이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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