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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독일 선거의 여왕 크라프트

주의회 선거에서 사민당 압승 이끌며 인기 행진

  • 브레멘=박성윤 통신원 bijoumay@daum.net

독일 선거의 여왕 크라프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독일컵 우승이 독일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 부활의 전조였을까. 사민당 심장부에서 노동자 축구클럽으로 태어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바이에른 뮌헨에 5대 2로 대승을 거둔 다음 날인 5월 13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에서 사민당이 압승했다. 투표율은 59.6%로 예년과 비슷했다. 사민당은 39.1%를 득표해 하넬로레 크라프트(51) 주지사와 녹색당을 연정 파트너로 하는 현행 체제를 2017년까지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반면 기독교민주당(이하 기민당)은 26.3%를 득표하는 데 그쳐 충격에 빠졌다. 2010년 선거 때 득표율 34.6%와 비교하면 8.3%포인트가 빠져나갔을 뿐 아니라, 1947년 이후 이 지역에서 얻은 최악의 성적이다. 녹색당은 11.3%로 현상유지를 했고,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8.6%로 선전했다. 해적당은 7.8%로 순항 중이며 좌파는 2.5%를 득표해 몰락했다.

독일 서부에 자리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주도(州都) 뒤셀도르프를 비롯해 쾰른, 본, 뮌스터, 도르트문트 등 독일 대도시의 3분의 1 이상이 몰린 곳이다. 인구도 1800만 명에 달하는 독일 최대 인구 밀집 지역이다(현재 독일 인구는 약 8200만 명). 한국에 잘 알려진 루르공업지대가 바로 이 주의 중심부를 이루며 독일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기도 하다.

2년 만에 적자 살림 흑자로

상대적으로 노동자와 이민자가 많아 전통적으로 사민당의 안방이었다. 그러나 2005년 5월 기민당이 승리한 후 이 분위기가 같은 해 9월 총선으로 이어져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퇴장하고 앙겔라 메르켈이 독일 역사상 첫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기민당이 예민하게 반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13년 가을 총선을 앞두고 치른 ‘미니 총선’이라고 할 만한 이번 선거의 다음 날 메르켈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패배”라고 인정했다. 이어 5월 16일에 기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패배한 노르베르트 뢰트겐(47) 연방환경 장관을 경질함으로써 당내 불만과 우려를 잠재웠다.



이번 선거는 독일 국민에게 메르켈과 비견될 또 하나의 슈퍼스타급 여성 정치인의 탄생을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바로 하넬로레 크라프트다. ‘친서민적 성향과 실리주의’를 내세운 그는 루르에서 태어난 이래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잔뼈가 굵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은행원 직업교육을 받고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가족 중에서 최초로 대학 문을 넘었을 정도로 평범한 집안 출신이다.

이후 회사에 취직했고, 전기설비 마이스터인 우도 크라프트와 결혼해 아들 하나를 뒀다. 직장생활을 하던 33세에 사민당에 가입하면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39세가 되던 해에 고향에서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삶을 시작했다. 차근차근 실력을 쌓으면서 사민당 주대표, 연방부대표를 거쳐 2010년에는 급기야 녹색당과의 연정을 통해 주지사가 됐다.

주지사로서 그가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룩한 성과는 놀랍다. 특히 부채삭감이 그렇다. 크라프트는 이번 선거 직전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첫해부터 예산에서 7억5000만 유로를 절약했고 다음 해에 10억 유로를 남겼다. 이전 기민당 정부가 추가 부채 발생으로 책정한 65억 유로를 크라프트 정부는 30억 유로까지 끌어내렸다. 2011년 1인당 추가 발생한 부채 수준은 165유로로 독일 평균 212유로보다 적다”고 밝혔다.

그는 지방자치단체 재정, 인프라 구축 등의 문제를 해결할 때 이념이나 당파를 가리지 않고 다른 정당과 협력하면서 조율하는 터라 ‘초빙 연정’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현장에서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그의 인간미를 짐작할 수 있다. 노르트팔렌베스트팔렌 주의 ‘국모’로 칭송받아온 만큼 그가 이끄는 사민당의 승리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소통 중시 현모양처형

메르켈이 소신을 굽히지 않는 냉철하고 단호한 카리스마형이라면 크라프트는 소통을 중시하는 따뜻한 현모양처형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이미지는 이번 선거 전략에 유효했다. 이번 선거에서 크라프트는 교육, 노동시장, 육아문제에 관한 정책을 제시했다. 그의 홍보 전략에서 정치는 쏙 빠졌다. ‘사랑하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과 ‘카레소시지는 사민당’이라는 선거 슬로건에서 전자는 정(情)에 호소하는 것이고, 후자는 삶을 좀 더 가볍게 살아보자는 생동감을 강조한 것이다. 카레소시지는 구운 소시지를 적당히 잘라 그 위에 카레가루와 케첩을 대충 뿌려서 파는 독일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출출할 때 배를 채우기에 제격이다. 지갑이 가벼운 국민의 일상을 파고들기에 이만큼 적당한 콘셉트도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로 크라프트에게는 숙제가 하나 남았다. 투표율이 60% 가깝긴 하지만 전체 유권자의 30%를 차지하는 18∼35세 청년층의 투표율은 30% 정도밖에 안 된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해적당으로 표가 몰렸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민당과 기민당이 얻은 표는 대부분 60세 이상의 노년층에서 나왔을 것이란 얘기다. 미래를 책임질 젊은 층의 참여를 유도해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드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현재 크라프트의 인기는 고(故)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에 맞먹는 수준이다. 라우는 네 번의 선거를 통해 20년 동안 이 주의 주지사를 지냈고 이후 연방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크라프트의 인기에서 탄력 받은 사민당 당수 지그마르 가브리엘은 “내년 총선거를 올해로 앞당기자”는 말로 제1당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연합과 자민당 연정에 도전하는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크라프트는 주지사 임무에 충실하고자 연방 정치에 나설 의향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의 그런 모습이 지지자에게 더욱 믿음을 준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크라프트는 ‘사민당 트리오’로 부르는 당수 지그마르 가브리엘, 원내대표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전 재무 장관 페어 슈타인브뤽을 제치고 사민당 차기 총리 후보 일순위로 뽑혔다.



주간동아 839호 (p48~49)

브레멘=박성윤 통신원 bijouma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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