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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양념에 버무리고 왜 또 확 뿌리나

참깨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양념에 버무리고 왜 또 확 뿌리나

양념에 버무리고 왜 또 확 뿌리나

무침 요리에 잔뜩 뿌린 참깨. 맛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소화가 잘되는 것도 아닌데, 한국음식에 참깨를 참 많이들 뿌려댄다.

필자는 갖은 양념에 ‘원한’이 있다. 오래전 모 월간지 편집장 노릇을 할 때였다. 기자들이 요리선생에게서 받아온 조리법을 보면 꼭 이런 구절이 있었다. “갖은 양념을 한다.” 도대체 이 갖은 양념의 정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요리선생에게 묻지 못하고 조리법을 그대로 받아온 애꿎은 기자에게만 닦달을 해댔다. “이 갖은 양념이 대체 무엇이냐. 시장에서 파는 것이냐. 간장과 마늘만 넣어도 갖은 양념이냐. 참기름, 파, 깨소금까지 들어가느냐. 생강에 청주, 사이다가 들어가면 또 뭐라 해야 하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그럼 기자는 요리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답을 받아오는데, 그 답이란 게 보통 이랬다. “입맛에 따라 간장,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파 따위를 적당히 섞은 것이고, 그리 써놓으면 독자들은 자기 입맛에 따라 음식을 만드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짜고 달고 맵고 고소한 양념 몇 가지를 섞어 대충 버무리면 맛이 나니 그리 알라는 뜻이었다.

필자는 이 ‘갖은 양념’의 두루뭉술함에 기가 찼다. 간장,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파, 생강, 깨는 각각의 맛이 강하다. 그중에 하나 또는 둘 또는 셋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에 따른 맛 차이를 무시하라니, 음식을 대충 만들어 먹으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한국음식 표준화에 대한 필요성을 얘기할 때면 필자는 g 따지고 ℓ 따지고 하는 ‘과학적 계량’보다 한국음식 조리법에 나오는 이 ‘갖은 양념’의 기준을 정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여겼다. 다행히 최근 요리책은 ‘갖은 양념’이라는 표현이 많이 줄었다. 한국음식을 조리하는 일이 조금 섬세해졌다는 증거인데,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리책은 요리책이고, 현장에서는 맛의 얼버무림이 여전하다. ‘갖은 양념’ 요리법이 여전하다는 말이다. 한국인은 늘 먹는 음식이라 ‘갖은 양념’ 폐해에 둔감한 편이다. 한국과 조리법이 비슷한 일본인에게 한국음식에 대한 평을 들으면 그 폐해가 곧바로 드러난다. 특히 반찬을 쫙 까는 한정식 상차림이 있으면 그들에게서 틀림없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상에 오르는 음식은 참 다양한데 맛은 다 비슷비슷해요.” 장아찌, 나물 양념, 조림 양념, 김치 양념 비슷비슷…. 재료가 아니라 양념을 기준으로 재배치한다면 수십 종의 한정식 반찬을 서너 종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음식은 유독 손맛을 강조한다. 손으로 ‘조물조물’하는 것이 많다는 뜻으로, 조물조물하는 과정에서 양념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손맛이 좋다’는 것은 ‘양념을 잘한다’는 말과 통한다. 양념을 잘한다는 것은 없다. 양념은 대충 해도 먹을 만한 맛이 생긴다. 주재료의 질이 어떻든, 짜고 달고 맵고 시고 고소한 맛의 양념을 버무리면 맛은 비슷비슷해지게 마련이다.

한 예로 막국숫집 양념 같은 것이다. 막국숫집 중에는 주방에서 아예 양념을 하지 않고 내놓는 곳이 흔하다. 식탁에는 설탕, 참기름, 간장, 소금, 식초, 고추장 등등이 놓였다. 손님이 이들 양념으로 대충 버무려 먹으라는 것이다. 식당이 가정집과 다른 것은 주방에 전문 요리사가 있다는 점인데, 막국수를 처음 먹는 손님에게조차 양념을 다 맡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식탁 위 양념으로 막국수를 대충 버무려도 먹을 만하다. ‘갖은 양념’의 신비다. 하지만 그게 과연 맛있는 막국수일까. 먹을 만하게 만든 것이 정말 맛있는 음식일 수 있을까.



대충 먹을 만하게 버무리는 음식에는 꼭 참깨를 잔뜩 뿌려놓는다(막국수의 그 참깨를 생각해보라). 혹시 요리사의 이런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 음식재료에 어울리는 요리법을 몰라. 그냥 대강대강 ‘갖은 양념’으로 버무리니 먹을 만은 한데, 요리라고 하기는 좀 그래. 이런 음식 내고 돈 받는 것도 좀 그렇고. 그렇다면 정성이라도 들인 것처럼 보여야 할 텐데…. 아, 여기 참깨가 있네. 참깨는 비싸다고들 생각하겠지. 이거라도 확 뿌려주자.”

요리사님들, 저 참깨는 소화도 안 되고 그냥 다 나와요.



주간동아 838호 (p64~64)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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