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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면 묘사한 순수詩 가슴으로 읽어주실래요”

5월에 새 시집 펴내는 ‘홀로서기’의 서정윤 시인

  • 이경달 매일신문 특집부 기자 sarang@msnet.co.kr

“인간 내면 묘사한 순수詩 가슴으로 읽어주실래요”

“인간 내면 묘사한 순수詩 가슴으로 읽어주실래요”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1987년 발간해 110만 부가 팔린 시집 ‘홀로서기’ 1집에 나오는 구절이다. 당시 ‘홀로서기’의 인기는 대단했다. 시집을 사려고 서점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을 정도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홀로서기’는 서정윤(57) 시인의 작품이다. 올해는 ‘홀로서기’ 1집을 출간한 지 25년 되는 해다. 서정윤을 대한민국 최고 서정시인 자리에 올려놨던 ‘홀로서기’ 열풍은 더는 불지 않는다. 하지만 ‘홀로서기’를 추억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시문학사에 불세출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홀로서기’의 주인공을 만나 근황을 들었다.

# 9번째 시집 ‘노을의 등뼈’

서정윤 시인은 대구 영신중 교사로 재직 중이다. 영신고에서 오랫동안 교편생활을 하다 2009년 영신중으로 자리를 옮겼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게 없다고 대답했다.

“인기만 사라졌을 뿐 시인이자 교사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 자체가 바뀐 건 없습니다. 평일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말엔 시를 쓰며 지냅니다.”



‘홀로서기’의 인기가 숙지면서 팬레터 역시 눈에 띄게 줄었다. 한창 때는 하루에 20통 넘는 팬레터가 답지했지만 지금은 1년에 서너 통만 온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섭섭하기는커녕 시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며 반가워했다.

“시인은 인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고뇌하는 생활인입니다. 인기가 사라지면서 생활을 성찰하며 작품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됐습니다.”

맞지 않는 옷처럼 행동을 제약하던 ‘홀로서기’의 인기에서 벗어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어느 때보다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5월에는 9번째 시집 ‘노을의 등뼈’가 나온다. ‘노을의 등뼈’는 2005년 펴낸 8번째 시집 ‘따옴표 속에’ 이후 7년여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라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

그는 3년 전 절판한 ‘홀로서기’를 다시 펴낼 준비도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홀로서기’ 시를 접한 뒤 “시집을 구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자주 들어와 시집을 재발간하기로 한 것. 또 신서정주의 시를 쓰려고 공부 중이다.

“신서정주의는 세밀한 내면 묘사가 특징입니다. 앞으로는 시를 통해 인간 내면을 좀 더 세밀히 형상화하는 신서정주의 시를 쓸 생각입니다. 9번째 시집에서 신서정주의적 경향을 어느 정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 ‘홀로서기’ 그리고 홀로 서기

그는 아직도 ‘홀로서기’ 시인으로 기억된다. 그에게 ‘홀로서기’는 분신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홀로서기’ 1집은 그가 낸 첫 시집이다. 그런데 무명 시인이 낸 첫 시집이 대박을 터뜨렸다. 초판 3000부만 팔려도 성공으로 평가받던 시절 ‘홀로서기’ 1집이 밀리언셀러가 된 것이다. ‘홀로서기’의 성공은 시인과 출판사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계약서도 쓰지 않았다가 인기를 끌자 뒤늦게 계약서를 작성했을 정도다.

자신을 하루아침에 스타로 만든 ‘홀로서기’ 1집의 인기 비결을 그는 어디서 찾을까.

“당시 사회가 어수선했습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분출하면서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탄압도 스스럼없이 자행했죠. 개인이 중심을 잡고 자아를 발견하며 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제 시가 추구하는 자아성찰 이미지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던 많은 사람에게서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이 인기를 끈 원인이 된 것 같습니다. 또 참여시가 유행하면서 순수시에 목말라하던 사람의 갈증을 해소해준 것도 한몫했습니다.”

‘홀로서기’는 시리즈로 6권이 출간돼 300만 부 이상 팔렸다. 하지만 그는 2006년 펴낸 에세이집 ‘홀로 이룰 수 없는 사랑’에서 글쓰기의 무서움을 토로했을 만큼 ‘홀로서기’의 인기를 부담스러워했다. 그에게 영광을 가져다준 ‘홀로서기’가 어느 순간 넘어야 할 벽이 돼버린 셈이다.

“시집도 많이 내고 시에 대한 고민도 더 많이 한 뒤 베스트셀러를 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인기가 글쓰기에 장애가 됐죠. 이름이 알려지면서 저도 모르게 독자를 의식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순간적인 감정에 빠져 중후하고 예술성 있는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좀 더 신중하게 시를 썼어야 했습니다.”

그는 ‘홀로서기’에 가려 시인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늘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했다. ‘홀로서기’ 인기에 편승해 과대평가된 시가 있는 반면, 그 인기에 묻혀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시도 있기 때문. 그는 세상이 냉정을 되찾은 지금, 9번째 시집을 통해 제대로 평가받고 싶다고 했다.

“‘노을의 등뼈’는 인기와 주위 시선을 무시한 채 순수시는 이래야 한다, 순수시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심정으로 쓴 시를 모은 시집입니다. 심혈을 기울인 만큼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 교육은 아날로그

“인간 내면 묘사한 순수詩 가슴으로 읽어주실래요”
그는 최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시 100선’을 펴냈다. 그가 시선집을 낸 이유는 시를 잊고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시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요즘 학생들은 시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머리로만 이해하려 듭니다. 입시 위주 교육이 낳은 폐단이죠. 게다가 교과서마저 실용 위주로 재편하면서 문학 비중이 크게 줄었습니다. 시 한 구절에 마음 아파 밤을 지새우던 청춘이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는 또 교육계에 부는 디지털 바람에 대한 우려감도 나타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감성을 심어주려면 공부는 디지털 방식이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인터넷을 통한 교육도 모자라 전자책까지 도입하려 하죠. 막대한 교육 예산을 디지털 사업에 허비하지 말고 아이들의 감성지수를 높이는 일에 투자해야 합니다.”

# “필요하면 시인도 정치에 참여해야”

‘홀로서기’ 1집을 출간한 1987년은 독재와 민주, 분단이라는 극한 주제가 사회 이슈였던 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의 시대이기도 했다. ‘홀로서기’ 1집과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시 시대를 주도했다. 이번 4·11 총선에서 도종환 시인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이 됐다.

서정윤 시인은 시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잘나가던 시절, 정치권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은 적은 없을까. 이에 대해 그는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 참여에 대한 생각은 감추지 않았다.

“평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인으로 구성한 정당을 만들면 참 깨끗한 정당이 될 것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살아가면서 불합리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으면 시인도 정치인이 돼 바꿀 수 있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 문제는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측면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개인적으로 반값등록금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간동아 835호 (p44~45)

이경달 매일신문 특집부 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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