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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타이타닉 추도인가, 재난 장사인가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 상업적 이벤트 논란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hyb430@hotmail.com

타이타닉 추도인가, 재난 장사인가

타이타닉 추도인가, 재난 장사인가

수많은 희생자를 낸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을 맞아 각국에서는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진정한 추도보다 장삿속이라는 성토의 목소리가 높다.

열일곱 살 소녀 로즈는 갑부 아들이긴 하나 징그럽게만 느껴지는 약혼자와 함께 여객선 1등실에 탑승한다. 결혼에 대해 수없이 고민한 끝에 바다에 뛰어내리기로 결심하고 갑판에 나온 그는 간신히 뱃삯을 마련해 3등실에 몸을 실은 떠돌이 화가 잭의 제지를 받고 생각을 바꾼다. 약혼자의 눈을 따돌린 로즈와 잭이 며칠간 불꽃같은 사랑을 나눈 공간이던 여객선이 불의의 사고로 서서히 침몰한다. 잭은 로즈가 구명정에 오르도록 도와준 뒤 숨을 거둔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1997년 개봉한 영화 ‘타이타닉’은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초대형 호화 여객선의 실제 재난에 허구의 러브 스토리를 끼워 넣었다.

4월 15일은 타이타닉 참사 100주년인 날이다. 1912년 4월 영국 사우샘프턴 항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이 여객선은 나흘 뒤 칠흑 같은 밤 캐나다 근해에서 거대한 빙산과 충돌한 뒤 선체에 물이 차면서 두 시간 남짓 만에 가라앉았다. 승객과 승무원 등 총 2200여 명 가운데 1500명 이상이 숨지고 700여 명만 인근 바다를 지나던 다른 대형 여객선에 의해 구조됐다.

‘타이타닉 기념 크루즈’ 상품

이 배의 출항지이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영국, 도착 예정지이자 역시 많은 희생자를 낸 미국, 그리고 사고가 일어난 뒤 바다에 떠다니던 시신을 수습하는 기지 구실을 한 캐나다에서 최근 몇 주일간 타이타닉 추념 열기가 뜨거웠다. 영국에서는 BBC 등 방송이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 특집을 내보냈고, 관련 연극과 오케스트라 공연도 이어진다. 영국과 미국 박물관은 침몰된 선체와 그 주변 바다 밑에서 건져 올린 각종 잔해, 유품을 모아 특별전을 열었다. 타이타닉 선체는 지금도 깊이 3000m가 넘는 해저에 가라앉아 있다. 선체를 통째로 인양하는 일은 엄두를 못 내지만 지난 20여 년간 배 안에 있던 집기와 비품, 희생자 유품은 꾸준히 건져냈다.

영국의 한 기업은 ‘타이타닉 기념 크루즈’라는 이름으로 고객을 모아 이 배가 출항했던 날 같은 항구에서 여객선을 띄워 침몰 현장을 다녀오는 상품을 개발했다. 승객들은 100년 전 의상을 입은 채 타이타닉에서 실제로 제공했던 메뉴대로 식사하고, 실제 연주됐던 음악을 들으며 100주년 당일에 현장에 이르렀다. 그 참가비가 1인당 미 달러화 기준으로 3등실 4400달러, 1등실 9500달러에 이른다. 미국의 한 기업도 비슷한 이벤트를 기획해 뉴욕에서 출발해 현장에 이르는 배를 띄웠다.



바다 밑에서 인양한 타이타닉 내 소품과 유품을 경매하는 이벤트도 여러 건이다. 영화 ‘타이타닉’을 3D로 리메이크한 작품도 4월 초 개봉했다.

이런 상업적 이벤트의 홍수를 두고 “도대체 희생자들을 추도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인지, 재난을 배경으로 장사를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성토도 나온다.

타이타닉 침몰은 당시로선 사상 최대의 해상 사고였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1987년 필리핀에서 일어난 여객선 도나파즈의 침몰사건은 타이타닉보다 2배 이상 많은 희생자를 냈고,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받은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의 침몰도 타이타닉에 버금가는 대형 재앙이었다. 그런데도 유독 타이타닉이 세인의 관심을 받는 까닭에 대해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4월 13일자)은 두 가지 설명을 내놓았다.

첫째는 첨단기술에 대한 인간의 교만이 빙산이라는 자연의 걸림돌 앞에서 무참히 유린당하는 모습이 교훈을 줬다는 점이다. 길이 269m에 4만6000t(GRT) 규모였던 타이타닉은 당시 군용 함정까지 포함해 세계 최대의 선박이었다. 덩치만 컸던 것이 아니라 해양 최강국이던 영국이 최첨단 기술과 가장 호화로운 자재를 동원해 타이타닉을 건조했다. 항공산업이 걸음마 단계라 선박을 통해서만 대양을 건널 수 있었던 그 시절 타이타닉을 진수하자 세계는 어떤 경우에도 가라앉지 않을 선박이라는 평가를 주저 없이 내렸지만, 공교롭게도 처녀 취항에서 참변을 당했다.

타이타닉 추도인가, 재난 장사인가

최근 3D로 재개봉한 영화 ‘타이타닉’.

둘째는 타이타닉 탑승자의 구조 과정에서 드러난 부자와 빈자 간 차별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그 뒤 긴 세월 세계를 요동치게 한 계급 갈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타이타닉의 선실은 1, 2, 3등실 세 등급으로 구분됐다. 등급별로 서비스가 다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재난 직후 구조 과정에서도 극명한 차별이 드러났다. 여객선 안에 구명정이 여러 척 있었지만 이것들이 모두 1등실과 2등실 부근에만 배치됐다. 수적으로 가장 많은 3등실 탑승자는 구명정에 접근하기까지 거리도 멀었을 뿐 아니라, 그 승선을 인도한 승무원으로부터 상급실 먼저, 어린이와 여성 먼저라는 원칙에 따른 통제를 받아야 했다. 1등실 여성 탑승자의 경우 144명 중 4명만 불귀의 객이 된 데 비해 3등실 남성의 경우 462명 중 387명이 숨졌다.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상급실 먼저라는 원칙을 적용했다.

8인조 전속 밴드의 추억

영화 ‘타이타닉’에서 허구가 아닌 사실(史實)에 근접한 것으로 전해지는 인상 깊은 대목도 있다. 바로 8인조 전속 밴드가 배가 가라앉기 직전까지 연주를 계속하는 장면이다. 이들은 구명정이 내려가는 출구 바로 옆에 자리잡아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하려 함은(Nearer My God to Thee)’ 등을 들려주며 패닉상태에 빠진 탑승자들을 진정시키고 위안을 주려 노력한다.

타이타닉의 여러 생존자는 탈출 직전 이들의 연주를 보고 들었다고 증언했다. 전속 밴드 8인은 전원 익사했다. 이 밴드의 악장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월러스 하틀리(당시 32세)는 약혼자를 두고 떠나기가 어려워 망설이던 끝에 타이타닉의 첫 항해에 동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동아 834호 (p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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