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4

2012.04.23

‘우향우’ 광풍에 사쿠라(극우주의)가 겁 없이 핀다

일본 이시하라 도쿄도지사 등 3인방 핵무기 보유 등 거침없는 발언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2-04-23 1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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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향우’ 광풍에 사쿠라(극우주의)가 겁 없이 핀다
    일본의 봄은 벚꽃(사쿠라)이 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본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꽃인 사쿠라는 과거 태평양전쟁 때 군국주의를 상징했다.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 대원은 군복에 사쿠라를 꽂고 출정했다.

    사쿠라가 일본에서 다시 피고 있다. 지난해 3·11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 등 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에서 요즘 피고 있는 사쿠라는 극우주의를 의미한다. 극우주의는 민족, 국가 등을 극단적으로 우선시하는 이념으로 광적인 애국주의, 군국주의, 전체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극우주의 세력이 부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일본 경제력이 쇠퇴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일본은 현재 중국에 이어 세계 경제 3위로 밀려났다. 특히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일본은 국가의 역동성을 상실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자존심이던 무역수지가 31년 만에 흑자에서 적자로 바뀌었고, 재정 적자에 따른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늘면서 자칫하면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될 위기에 빠졌다. 정치적으로도 자민당의 55년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정치를 약속했던 민주당 정부도 일본 국민의 무력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대변해주지 못한다. 당쟁과 정쟁으로 총리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평균 1년 만에 줄줄이 물러나면서 국민을 결집할 리더십마저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극우주의 세력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과거 영광 재현 목소리 키워



    일본 극우주의 세력을 대변하는 인물들은 공교롭게도 현재 지방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의 제1 도시인 도쿄도의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 제2 도시인 오사카시의 하시모토 도루 시장, 제3 도시인 나고야의 가와무라 다카시 시장 등이다. ‘극우 삼총사’라 불리는 이들은 일본의 재무장이나 핵무기 보유 등 과거에 금기시했던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시하라 지사는 그동안 ‘극우의 원조’라는 말을 들어왔다. 실제로 그는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이면 늘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대표적 극우파다. 올해 80세인 이시하라는 지난해 4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당선하며 4회 연속 지사직을 맡았다.

    그는 5월 말 극우 신당을 창당할 계획을 적극 추진 중이다. 이시하라가 신당을 만들려는 이유는 자민당이 2009년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이후 극우 세력을 대변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지키지 않는 민족은 번영한 적이 없다”며 자위대 활동을 제한하는 현재의 평화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이시하라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점령 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헌법이 지속되면서 국가를 지키는 군대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다”면서 “이런 헌법은 무효인 만큼 파기하고 새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하시모토 시장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자 차기 총리 물망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실시한 오사카시장 선거에서 민주당과 자민당 후보를 제치고 압승을 거뒀다. 올해 43세인 그는 와세다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변호사 생활을 해왔다. TV 법률·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은 그는 2007년 38세에 오사카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일본 역사상 최연소 지사가 됐다. 특히 공무원 감원과 봉급 삭감, 지방의원 세비 삭감, 산하단체 통폐합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등 개혁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하시모토의 정치이념은 상당히 극우적이다. 중국의 위협에 맞서려면 일본의 핵무기 보유는 필수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공립학교 행사 때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인 기미가요를 기립 제창하게 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교사나 학생을 처벌하는 조례까지 제정했다. 그는 또한 “지금 일본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독재”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하시모토와 파시즘을 합친 ‘하시즘’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하시모토가 창당한 지역 정당도 일본 정치권에서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하시모토는 2010년 8월 ‘오사카 유신회’라는 지역 정당을 창당하고 대표가 됐다. 오사카 유신회는 앞으로 실시될 총선에서 중의원 200명 당선을 목표로, 400여 명을 입후보시키기로 했다. 하시모토는 이를 위해 지난 3월 ‘유신정치숙’이라는 정치학교를 만들어 총선에 출마할 정치 지망생을 교육하고 있다.

    3인 연대하면 양당 구도 깨지나

    ‘우향우’ 광풍에 사쿠라(극우주의)가 겁 없이 핀다

    2009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왼쪽). 난징대학살 망언으로 중국의 분노를 산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시장.

    일본 정계에서는 오사카 유신회가 중의원 선거에서 전국적 지지를 받기는 쉽지 않지만, 오사카를 중심으로 최소 20~30석을 당선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시모토는 4월 14일 민주당의 원전 재가동 추진에 반발해 차기 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민주당과 정면 대결을 선언했다. 그는 안전을 이유로 원전에는 반대하면서 핵 무장을 주장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와무라 시장은 난징대학살 망언으로 중국에서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다. 그는 2월 20일 자매도시인 중국 난징시의 공산당 간부 방문단을 만난 자리에서 “난징에서 통상적인 전투행위는 있었지만 대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12월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자행한 학살사건으로, 당시 30만 명 이상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고야시와 난징시는 1978년 자매도시 협약을 맺고 그동안 우호관계를 쌓아왔다.

    가와무라의 망언은 실수가 아니라 신념이라는 점에서 중국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가와무라는 ‘위안부 문제와 난징사건의 진상을 검정하는 모임’의 회원으로 활동해왔고, 중의원 시절인 2006년 당시 정부에 ‘난징대학살의 재검정에 관한 질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가와무라는 2007년 7월 미국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켰을 때 이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와무라가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역사관을 갖게 된 것은 중일전쟁에 참전한 부친의 영향 때문이다. 그는 2010년 4월 창당한 지역 정당인 ‘감세 일본’의 대표이기도 하다. 민주당 중의원 5선 의원 출신인 그는 지난해 2월 치른 나고야시장 선거에서 당선한 이후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하면서 나고야 시민은 물론 일본 국민의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일본 정치권은 이들 3명이 연대할 경우 기존의 민주-자민당 양당 구도가 깨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일각에선 이들이 일본을 극우주의의 광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이들이 득세할 경우 독도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 영토 및 역사 문제를 놓고 일본이 우리나라와 중국에 대해 공세를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일본의 돌파구가 극우주의라면 동북아 정세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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