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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Ⅰ패러디 전성시대

내 맘대로 거침없이 비틀어주마!

원본 권위를 넘어 패러디는 대중의 일상 언어로 자리매김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thekian1@paran.com

내 맘대로 거침없이 비틀어주마!

내 맘대로 거침없이 비틀어주마!

KBS 2TV ‘개그콘서트’의 ‘이기적인 특허소’(왼쪽)와‘비상대책위원회’.

요즘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뜬다 싶은 것치고 패러디(parody)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다. 어떤 정치인이 던진 논쟁적인 이야기는 개그맨에게 패러디 대상이 되고, 그렇게 패러디된 개그는 또 일반인에게 패러디 대상이 된다. 문화적으로 하나의 아이콘이 생기면, 그 아이콘을 여지없이 패러디해 다른 프로그램에서 활용하고 대중은 그것을 UCC 소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젠 거의 공기처럼 일상화한 패러디. 도대체 패러디란 무엇이고 지금의 이 열풍은 왜 생겨난 걸까.

패러디란 ‘전통적인 사상이나 관념, 특정 작가의 문체를 모방해 익살스럽게 변형하거나 개작하는 수법’으로 ‘흔히 당대 가치관의 허위를 풍자하고 폭로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좁게 보면 패러디는 20세기 말 디지털 시대에 생겨난 영상 일상화의 한 경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넓게 보면 예부터 누군가를 따라함으로써 그 권위를 해체해온 풍자에 닿아 있다. 즉 광대가 탈을 쓰고 양반의 허위의식을 풍자하거나, 심지어 왕의 실정(失政)을 광대놀음으로 신랄하게 비판할 때 쓰는 전략도 패러디였던 셈이다. 대중을 짓누르는 바뀌지 않는 답답한 권위에 작은 바늘구멍 하나를 내는 것, 패러디 전략은 아주 오래전부터 큰 힘을 발휘해왔다.

디지털시대 영상 일상화의 한 경향

그 전략은 복제를 만들어냄으로써 원본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패러디는 기본적으로 원본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MBC ‘우리들의 일밤-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임재범이 있어야 MBC ‘웃고 또 웃고-나도 가수다’에서 개그맨 정성호가 하는 패러디가 가능하다. 정성호가 농담 삼아 “레퍼토리가 떨어져 간다”는 푸념을 했던 건 바로 이 패러디할 원본이 몇 개 없었기 때문이다. 임재범은 ‘나가수’에서 단 몇 곡을 부르고 맹장수술 탓에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하지만 임재범처럼 원본(‘나가수’에서 했던 노래)의 힘이 워낙 강하다면 원본이 단 몇 개밖에 없어도 패러디가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패러디는 근본적으로 원본의 권위를 빌려 새로운 관점으로 비트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가수’의 경우처럼 모든 콘텐츠의 패러디물이 원본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즉 SBS ‘짝’의 남자 ○호, 여자 ○호 같은 호칭을 MBC ‘무한도전’에서 패러디할 때 그것은 비판이라기보다 재미를 부가하려는 차원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도 그 작동 방식을 들여다보면 ‘권위의 해체’라는 면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나가수’는 심지어 ‘신들의 무대’라고 추앙받았기 때문에 ‘나도 가수다’ 같은 권위 해체의 패러디를 통해 웃음을 줄 수 있었다. 권위가 갖는 긴장감을 따라 하기와 흉내 내기를 통해 이완시킨 점이 웃음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패러디가 더 큰 힘을 발휘할 때는 독특한 작동방식으로 현실 권력과 대적할 때다. KBS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는 누군가를 정확히 지목하는 대신 막연하게 정부의 한 관료를 패러디한다. 당장 테러가 일어날 상황을 긴박하게 브리핑하지만, 거기에 대해 뭐든 “안 돼~”만을 반복하는 상황. 사건을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안 되는 이유만 줄줄이 늘어놓음으로써 결국 위기에 대처할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무능력. 즉, ‘비상대책위원회’는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한 관료를 패러디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한 관료주의와 무능력한 위기대처능력을 사정없이 꼬집는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또 다른 코너 ‘이기적인 특허소’ 역시 애플과 삼성의 특허전쟁을 패러디한다. 개그맨 박영진은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을 패러디한 ‘파인애플사 스티브 박스’로, 박성광은 이건희 삼성 회장을 패러디한 ‘S그룹 박 회장’으로 등장한다.

바로 이 현실과 맞닿은 지점은 작금의 패러디 열풍이 어디서 비롯했는지를 잘 말해준다. 그만큼 답답한 현실 속에서 대중은 패러디가 주는 순간적인 권위 해체의 경험을 통해 잠시나마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다.

내 맘대로 거침없이 비틀어주마!

임재범

패러디가 권위 해체의 성격을 띤다는 것은 그 주요 생산자가 누구인지를 잘 말해준다. 즉, 패러디는 예나 지금이나 ‘낮은 자’의 전술이다. 여기에서 ‘낮은 자’란 다른 말로 바꾸면 권위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패러디가 인터넷이 막 생기던 시점에 폭발적으로 생겨난 것은 여러모로 이 탈권위적 특성을 지닌 매체와 관련 있다. 사실 인터넷 이전까지의 매체, 예를 들어 신문이나 방송 같은 매체는 그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이 권위적이었다. 몇몇 매체가 정보를 일방향적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평범한 사람도 자신만의 생각과 정보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서 정보의 역류가 이뤄졌다. 과거에는 특정 기술과 자격을 지닌 사람만 다루고 제시할 수 있었던 정보가 이제는 누구나 만들고 배포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됐다. 패러디 열풍은 바로 이런 매체 환경 변화를 텃밭으로 해 생겨났다.

인터넷 패러디의 초창기 버전은 주로 정치인이 대상이었다. 그들의 사진과 영화 포스터를 결합한 형태가 대표적이다. 이것은 기존 매체에서 주로 일방향적으로 제시하던 정치인의 이미지에 대한 평범한 사람의 쌍방향적 답변에 가까웠으며, 그 안에 권위적인 어떤 것(정치, 정치인)과 대중적인 어떤 것(영화 같은)을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점만으로도 큰 힘을 발휘했다. 그동안 권위적인 매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보통 사람의 눈높이를 담아낸 패러디에 대중이 열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외부 영상물 자기화 욕구 표현

그리고 이러한 패러디 열풍은 정보를 다루는 기술의 대중화와 함께 점점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즉, 초창기 패러디의 바탕을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샵 같은 기술이 열어줬다면 UCC처럼 좀 더 고도화된 패러디는 디지털 캠코더와 더 쉬워진 동영상 편집기술을 통해 대중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패러디는 이제 인터넷을 넘어 기존의 권위적인 매체(신문이나 방송) 속으로도 자연스럽게 들어왔고, 그 대상 또한 정치인만이 아니라 연예인, 심지어 일반인까지 아우르게 됐다.

한때 예술의 한 기법을 지칭하던 용어였지만, 최근 들어 이 패러디는 문화 전반에서 사용할 만큼 일상적인 개념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는 이제 언제 어디서나 공기처럼 떠다니는 패러디를 발견할 수 있다. TV 채널을 돌리다가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도,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도, 하다못해 길거리 여기저기 걸린 광고 플래카드 속에서도 패러디는 넘쳐난다. 이러한 패러디 현상은 원본 오라가 휘발된 복제 가능한 시대, 정보 변화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정보(이를테면 영상물 같은)는 과거 기술적, 물적 한계 탓에 전문가가 독점해 제공했지만, 이제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누구나 복제, 편집이 가능해져 일상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정보에 대한 소유의식이 생겨났고, 이는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수용하던 시대의 종언을 고했다. 영상물을 예로 들면, 이제 누구나 자기 손안에 영상물을 쥘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따라서 기존 사진과 영상물에 대한 패러디물은 그 외부 영상물을 자기화하려는 대중의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패러디 전성시대가 말해주는 것은 이제 그 권위 해체의 단계를 넘어 저마다 자기 식의 정보를 스스로 갖고 공유하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이기도 할 것이다.



주간동아 827호 (p32~33)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thekian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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