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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Ⅰ패러디 전성시대

유쾌 통쾌 ‘패러디 공화국’

기막힌 풍자와 조롱 팍팍한 현실 한 방에 날려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유쾌 통쾌 ‘패러디 공화국’

유쾌 통쾌 ‘패러디 공화국’

패러디 포스터인 ‘돈을 품은 말보로’와 ‘강용석 저격수 패러디’. 현대백화점의 ‘팥을 품은 빵’ 이벤트(맨 오른쪽).

#1 “MB-내곡동 사저 매입? 난 몰라! 경호처장이 했다. 이상득-뭉칫돈 발견? 난 몰라! 비서가 받았다! 최구식-디도스 공격? 난 몰라! 비서가 했다! 박희태-돈봉투? 난 몰라! 비서가 줬다! 차라리 선거로 비서를 뽑자!”

1월 중순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퍼진 패러디 하나. 그 대상은 당시 ‘돈봉투 사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다. 트위터러들은 그를 ‘치매 걸린 국회의장’이라 칭했다.

#2 “말보로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뒤돌아 서 있으라!”

“전하께서 뭐라 하시든 신첩은 못 끊사옵니다.”

전국 시청률 40%를 넘기며 ‘국민 드라마’로 등극한 MBC 수목 미니시리즈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 이 드라마 포스터에 등장한 주인공 이훤(김수현 분)과 중전인 윤보경(김민서 분)의 대사가 색다르다. 이 합성 포스터의 제목은 ‘돈을 품은 말보로’. 외국산 담배 가격 인상을 절묘하게 풍자한 패러디물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패러디 공화국’이다. 그리 유쾌할 것 없는 세상사에 대한 재치 있고 통렬한 비틀기의 ‘향연’이 고전적인 패러디 공간인 각 방송사 개그프로그램을 넘어 인터넷, SNS 등으로 무대를 확장하면서 가히 패러디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것. 패러디 대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분야를 가릴 것 없이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단골 소재는 역시 정치 및 사회 이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비꼬는 패러디는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무소속 강용석 의원도 자주 등장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 씨가 징병신체검사 4급 판정을 받을 당시 제출했다는 MRI 필름을 공개하면서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거짓으로 드러나자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그는 누리꾼의 ‘집중 타깃’이 됐다. 박 시장의 ‘저격수’를 자처했던 그가 ‘자기 총에 자기가 맞은’ 격이라는 패러디물이 봇물처럼 쏟아진 것이다.

정치 및 사회 이슈가 단골 소재

한 트위터러가 그동안 언론에 보도됐던 사진에 누리꾼이 흔히 쓰는 ‘음슴체’를 사용해 강 의원과 박 시장 둘의 심정을 희화(畵)한 일명 ‘강용석 사건 정리’ 이미지 모음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저격수 강용석이 사용하는 특수 총’도 등장했는데, 이 패러디물에 나온 총은 일반 총과 달리 총구 방향이 거꾸로여서 방아쇠를 당기면 본인에게 총을 겨누게 된다. 그러니 보는 이들이 실소를 금치 못할 수밖에 없다. 최근엔 ‘제발 한 대만 맞아라!! KYS 나는 저격수다’라는 패러디 포스터까지 등장했다. 여대생 성희롱 발언의 후폭풍으로 옛 한나라당으로부터 제명당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후속타’를 날린 강 의원은 패러디물 양산에 혁혁히 기여(?)한 정치인으로 회자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빼놓으면 섭섭할 정도다. 지난해 12월 남양주소방서 소방관 2명에 대한 과잉징계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른바 ‘119상황실 전화 응대 사건’ 이후 인터넷과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수많은 패러디물이 전파되면서 그는 일약 패러디계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MBC 인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빗댄 ‘나는 도지사다’ 포스터가 등장한 것을 비롯해 ‘119 전화 패러디 웹툰’, 아이폰의 ‘밀어서 잠금해제’에서 착안한 ‘관등성명을 대서 잠금해제’ 버전 등 각종 패러디 합성 사진과 동영상이 일파만파 번졌다. 심지어 구글의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해 사용자가 가상의 김 지사에게 말을 걸면 김 지사가 “이름을 말해달라”는 답변만 반복하는 스마트폰용 패러디 애플리케이션 게임마저 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김 지사에 대한 패러디 중 압권은 ‘주어 없는 분노’라는 누리꾼이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패러디해 지은 ‘경기돼지사 119 긴급전화時’라고 할 만하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소방교가 이름을 말하는 날까지 한 점 권위에 구겨짐이 없기를 내 목소리 못 알아듣는 소방교 태도에도 나는 꾹꾹 눌러 참았다….”

정치인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현상도 패러디의 인기 아이템이다. 게임과 패딩 점퍼가 학교폭력의 한 원인으로 지목돼 관계부처의 규제가 잇따르자 이를 패러디한 글과 동영상이 인터넷을 달궜다. 이를테면 “패딩 관련 업체에서 수익금 1%를 걷어 패딩 중독 치료 기금으로 쓰겠다”고 억지 부리는 정치인이 등장하면 “이런 패딩족기 같은 경우가…”라며 씩씩거리는 사람이 나타나고, 정치인은 3시간이 지나면 패딩을 벗어야 하는 ‘패딩 쿨타임’ 제도까지 도입한 후에야 비로소 학교폭력이 해결됐다며 웃는 식이다.

이처럼 정부가 내놓은 실효성 없는 규제책이 이내 누리꾼의 기발한 발상으로 번번이 깨지는 현상은 패러디가 지닌 촌철살인의 메시지가 결코 무디거나 약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패러디물 범람에 대중은 통쾌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맛본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패러디는 한 사회의 전형적인 틀이나 규범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즐기기 위한’ 현상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패러디의 주가가 날로 치솟으면서 아예 한 발짝 더 나아가 패러디물을 홍보 및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사례도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홍보와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

구자춘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예비후보(인천 남구을)의 경우 영화 ‘달콤한 인생’의 포스터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달콤한 자춘’ 포스터를 만들어 인터넷 블로그와 카카오톡을 통해 주민에게 알리고 있다. 구 예비후보 측의 한 자원봉사자는 “아이디어는 많지만,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20~30대 젊은 유권자와 어르신 모두가 부담 없이 가볍게 보고 웃을 수 있는 패러디물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다”며 “그래도 딱딱하고 무거운 내용 일색인 기존 홍보물보다 공감대 형성이 쉬워 그 나름대로 홍보효과가 좋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도 최근 카카오톡 등을 통해 자사와 ‘친구 추가’를 한 스마트폰 이용자에게 무료 쿠폰을 발급한 뒤 이를 백화점별 해당 매장에 제시하면 팥빵 1개씩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벌여 누리꾼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이른바 ‘팥을 품은 빵’. ‘대세 해품달’의 높은 인기를 새삼 실감케 한 이벤트였다.

인터넷과 SNS라는 양 날개를 달고 한층 강력한 파급력을 지니게 된 패러디. 패러디를 즐기는 누구나 패러디를 직접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패러디스트(parodist·패러디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 패러디를 하나의 문화이자 놀이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칫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이는’ 덜 떨어진 사람쯤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는 세상이다.

문득 ‘쌀국수 UCC’로 화제를 모았던 로버트 할리의 대사를 패러디하고 싶어진다. 봄이 와도 찬바람 느껴지는 팍팍한 세상, 우리 같이 한 패러디 하실래예?

유쾌 통쾌 ‘패러디 공화국’

패러디물은 풍자는 물론 홍보 수단으로도 적극 활용된다.





주간동아 827호 (p30~31)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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