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7

2012.03.05

보수안정형 한국인 ‘꼴통’ 강용석을 키웠다

적(敵)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 확인하는 리얼리스트

  •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swhang@yonsei.ac.kr

    입력2012-03-05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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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안정형 한국인 ‘꼴통’ 강용석을 키웠다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의원 강용석은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한나라당에서 제명되면서 정치생명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죽은 듯 조용하던 그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야권 후보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저격수를 자처한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행동은 개그맨 최효종에 대한 고소로 이어졌고, 최효종이 출연하는 KBS ‘개그콘서트’가 그런 자신을 풍자하자 “이건 뭐 거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트위터를 통해 “슬램덩크 정대만의 맥을 잇는 불꽃남자 강용석의 무리수, 강용석의 활약상을 그린 다양한 신문만평을 한데 모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이후 강용석의 정체성은 뚜렷해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잠재적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등 소위 ‘잘나간다’는 정치권 인사를 무차별적으로 걸고넘어지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이다.

    그러더니 급기야 박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에 자신의 국회의원직을 걸었다. 결국 그가 제기한 의혹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지면서 의원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후 인터넷 팟캐스트 ‘저격수다’ 공개방송에 출연한 그는 “박 시장이 저를 ‘용서한다’고 했는데, 이런 표현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 말했다.

    강용석에 대해 대중은 흔히 ‘또라이’니 ‘꼴통’이니 하는 표현을 쓴다. 놀라운 것은 이미 이 단어를 선점한 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보수꼴통’이다. 우리 사회의 원로 혹은 보수지도자라고 하는 분들이다. 소위 ‘진보’라 일컬어지는 정치인이나 그와 유사한 성향의 사람을 적으로 삼는 이들은 심리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강용석을 생각하는 마음은 마치 아버지의 자식 사랑 같다.



    꼴통을 전폭 지지하는 ‘보수꼴통’

    “사실 그동안 언론이 성인군자처럼 미화했던 박원순, 안철수 씨의 문제점을 많이 폭로했고 상당 부분이 사실로 확인됐다. 국민이 아는 두 사람에 대한 부정적 정보는 대부분 강용석 씨의 폭로에 의한 것이다. …이런 사람이 국회에 남아 있어야 보수의 반종북 구국투쟁에 힘이 붙는다. …새누리당이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강 의원 지역구(서울 마포을)엔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 전 대표의 지지에 화답하듯, 강용석은 4·11 총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런 행동의 밑바탕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욕구가 깔려 있다.

    대중은 이처럼 행동하는 그를 ‘관심에 굶주린 사람’ ‘인정에 목마른 사람’ ‘꼼수의 사돈다운 행동’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젊은 보수의 대표주자’ ‘이제 이 나라의 미래를 맡길 만한 정치인이 나타났다’고 환호하기도 한다. 최고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리얼리스트’나 이미 이 사회에서 주류로 자리 잡은 ‘보수안정형’의 심리코드를 가진 이들이 대체로 후자에 속한다.

    강용석에게서 뚜렷하게 보이는 심리코드는 리얼리스트 성향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고 들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가 무척 중요하다. 주어진 상황이나 주변 사람에게 자신을 맞추려 한다. ‘대세’를 따르려는 것이다. 현실적인 삶의 논리에 충실하며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부화뇌동한다. 무엇보다 ‘왕따’를 두려워한다. 사실 이런 모습은 이 사회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직장인 대부분에게서 볼 수 있다.

    보수안정형 한국인 ‘꼴통’ 강용석을 키웠다

    2월 22일 강용석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비리 의혹 제기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약속대로 의원직을 버린다고 말했다.

    자신의 성취를 위해 전력투구

    리얼리스트 성향이 부각될 때는 조직에서 인정을 못 받거나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다. 감정적인 모습을 보일 뿐 아니라 아랫사람이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안하무인이기 쉽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며, 대세가 불분명하면 불안하고 부정적인 행동을 보인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성찰하는 데 인색하고,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듯 과도한 반응을 보인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무조건 견디면서 자신을 희생자나 피해자로 여긴다.

    대중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때 리얼리스트가 보이는 행태를 ‘미친 놈’ ‘또라이’가 하는 짓이라며 욕하고 비난한다.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다가 리얼리스트가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고 호기심을 보인다. 강용석의 불행이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하는 이유다. 강용석의 리얼리스트적 심리코드는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이라 할 수 있는 보수안정형과 통하는 면이 있다.

    보수안정형은 번듯하고 멋지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유난히 세상 걱정을 많이 한다. ‘한국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상황에서 벗어나 잘살게 됐다’는 것을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자기 삶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가정의 화목과 행복, 건강 등 보편적 가치를 언급한다. 자기 삶의 진정한 핵심이라기보다 공자님 말씀처럼 의례적으로 하는 멋진 이야기다.

    이념적인 측면에서 북한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유일한 경우다.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자세, 이념적인 선명성은 이들에게 삶의 정답과 같고,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세계 경찰과도 같다. 자기중심적이어서 남 일에는 매사 비판적이고 평가적이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냉혹하다. 남의 부정부패를 비난하지만, 정작 자신이 관여돼 있으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강조한다. 속으로는 ‘잘난 사람’을 열망하지만, 상황에 따라 쉽게 좌절하고 체념한다.

    이러한 심리코드는 젊은 세대에게도 있다. 특히 소비 행태에서 잘 드러난다. 선물을 주면서도 “이거 ·#51931;·#51931;짜리야” “·#51931;·#51931;에서 구한 거야”라면서 명품임을 강조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소통하고 교감을 나누기보다 ‘내가 뭘 해주고, 어떻게 해줬는데 지금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식이다. 결혼 조건으로 돈과 집안 배경을 내세운다. 정치나 경영에 관심이 많고, 자신의 권력과 우월함을 추구한다. 돈은 곧 권력이며, 돈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심결에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보수안정형이나 리얼리스트 성향을 지닌 사람 모두 자신의 성취를 위해 전력투구한다. 현재보다 더 나아지려고 아등바등한다. 외부 시선에 민감하고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려 한다. 세계 최고, 세계 몇 위 같은 평가를 중요시한다. 자기 생각을 내보이기보다 이상적이고 규범적인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처럼 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하면 핵심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들은 적(敵)이 같으면 누구나 한편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성향을 스스로 성찰해 파악하기보다 적이 누구인지를 통해 확인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에게는 드라마 속 고위 공직자나 재벌의 주변 인물로 많이 비친다.

    최효종이 ‘시사개그’라는 영역을 대중에게 부각했다면, 강용석은 ‘개그정치’의 진수를 보여준다. 극과 극이 ‘꼴통’으로 통하는 것이거나, 한국사회의 다양한 심리코드가 결국 ‘꼴통’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엮이는 것 둘 중 하나일 터다. 우리 사회가 ‘꼴통’이 아니면 잘 살기 어려운 사회라 한다면, 무척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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