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6

..

‘대공황 재현’ 불길한 그림자 덮쳤다

글로벌 경제위기 확산, 1929년 전후와 너무 닮아

  • 손명석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 sonms211@posri.re.kr

    입력2012-02-27 13:3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유럽발(發) 재정위기로 심화한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폭이 심상치 않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로존 국가의 재정위기가 이미 금융 부문을 넘어서 실물 부문으로 전이됐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들 국가의 마이너스 경제성장, 신흥국의 내수 및 수출 위축과 해외자금 이탈 위험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해 4분기 내수와 수출의 가파른 감소로 경제성장률이 0.4%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처럼 비관론을 대표하는 석학은 현재의 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여파가 향후 10여 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다. 지금이야말로 ‘1929년 대공황의 재현’에 해당하는 최악의 경제위기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앞으로 진행될 경제위기의 방향을 가늠하려면 먼저 대공황 당시의 상황을 다시 살펴보고 이를 현재의 위기와 꼼꼼히 비교해봐야 하는 이유다.

    시장 기능에 개입 ‘큰 정부’의 출현

    사전적인 정의부터 살펴보자면, 대공황은 1929년 10월 미국의 주가폭락이 촉발한 글로벌 경제위기를 뜻한다. 미국은 대공황이 발생한 이후 초기 3년간 국민총생산(GNP) 50%, 민간소비 40%, 기업투자 82%가 하락했고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숫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이후 미국이 1929년 이전 수준의 GNP를 회복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 특수(特需)를 누린 1941년이었다.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대공황이 발생한 근본적 원인이다. 우연찮게도 결정적 고리는 바로 미국 내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의 버블 형성과 함께 급속히 증가한 해외 대출에 따라 미국과 글로벌 경제 사이의 연계성이 심화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주식 및 부동산 시장의 버블은 미국 정부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0년여 동안 이어진 호황기에 확대통화 정책을 추진한 것에서 비롯했다. 이 때문에 유동성이 넘쳐난 미국 사회에는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생생히 묘사한 대로 과소비와 한탕주의가 만연했고, 민간은 신용에 기대어 주식과 부동산 투기에 몰두했다. 1921년부터 29년까지 미국 주식시장의 주가가 4배 이상 상승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복구자금이 절실했던 유럽 국가나 신천지로 부상한 남미 국가에 막대한 대출을 해줬다. 이 또한 당시 미국의 저금리 정책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24년부터 30년까지 이동한 국제자본 총액 가운데 유럽으로 흘러간 돈이 60%, 남미로 유입된 돈이 20%에 달했다. 이처럼 과도하게 형성된 자산 버블을 통제하려고 미국 정부는 금리 인상을 단행하기에 이르렀고, 때마침 발표된 주요 기업의 실적 부진이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면서 대공황이 시작됐다. 그러나 대공황의 상처가 더 깊어진 이유는 민간의 소비 및 투자 심리가 급격히 냉각됐을 뿐 아니라, 회복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대공황 재현’ 불길한 그림자 덮쳤다
    대공황 여파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됐다. 다급해진 미국 금융기관이 대출금을 회수하고 나선 데다, 경기침체에 따라 글로벌 교역량 역시 급감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산업생산이 47.4%까지 하락했고 아르헨티나, 브라질 같은 남미 국가의 농업생산 기반도 붕괴했다.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일본도 800개 이상의 기업이 도산하면서 대규모 실업사태를 겪어야 했다.

    한편 대공황은 정치사회와 국제경제 질서 전체의 패러다임을 극적으로 전환시켰다. 미국을 중심으로 시장만능주의 반대 시위가 확산하면서 미국과 스웨덴에서는 민주당과 사민당이라는 진보정권이 집권한 반면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에서는 극우정권이 득세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국제경제 질서 측면에서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관세 전쟁과 블록경제화 같은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됐다. 대공황이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직간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또한 대공황은 결과적으로 루스벨트식 정책 기조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13년간 집권한 미국 민주당의 루스벨트 정부는 대공황 초기에 공화당 후버 대통령의 정책적 무능으로 악화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테네시 강 개발공사 등 대규모 공공사업을 시행했다. 시장 기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이른바 ‘큰 정부’의 출현이었다.

    눈 밝은 독자라면 지금까지 살펴본 대공황의 전개 상황이 현재의 위기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정부의 확대금융 정책과 이에 따른 자산 버블이 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의 글로벌 위기는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이후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추진해온 저금리 정책이 최근까지 이어져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버블이 커진 데서 시작됐다. 이에 편승한 금융자본의 모럴해저드가 더해지면서 위기의 심각성이 커졌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각국 정부의 부채 훨씬 더 심각

    파급 경로 측면에서도 꼭 닮았다. 현재의 위기는 대공황 때와 마찬가지로 2008년 주식시장 붕괴에서 시작돼 이후 순차적으로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실물경제를 침체로 몰아가고 있다. 특히 최근 민간의 기대심리가 급랭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은 대공황 당시를 반추해볼 때 매우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가 글로벌 자본시장을 지렛대 삼아 유럽으로 번지고 신흥국으로 확산하는 추세도 대공황 당시와 흡사하다.

    현재의 위기가 대공황 때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진단하는 이유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려고 추진한 확대재정 정책으로 미국과 유럽 주요국이 심각한 정부부채 문제를 떠안았기 때문이다. 이는 위기를 풀어나가야 할 각국 정부가 추가적인 경기부양에 나설 여력이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각 나라가 빠른 시일 안에 해법을 찾지 못하고 위기가 장기화할 경우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등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는 대공황 때처럼 신(新)보호주의 발흥 같은 글로벌 정치 및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놓고 보면 대공황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먼저 각국 정부는 상호공조를 통해 위기의 글로벌 확산을 방지하고, 민간의 기대심리 급랭을 억제하는 작업을 최우선임무로 삼아야 한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과 그 정책적 스케줄을 제시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이런 뜻에서 유럽 재정위기 극복의 열쇠를 쥔 독일, 프랑스와 주변국 사이의 갈등은 앞으로 위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미리 들여다볼 수 있는 주요 관전 포인트다.

    다음으로는 나라 안팎으로 최대 화두로 떠오른 양극화 문제다. 이를 해소하는 정책을 추진해나가되, 그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를 우선시해 자칫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거나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훈은 기업에도 마찬가지여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투자전략을 꼼꼼히 짚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이 태동하는 지금 시점에서 ‘공생발전’이라는 개념이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해나갈 필요가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