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4

2012.02.13

그 한순간 세상 멈추고 인생이 변했다

‘키스’

  • 입력2012-02-13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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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한순간 세상 멈추고 인생이 변했다

    ‘키스’, 클림트, 1907∼08년, 캔버스에 유채, 180×180, 빈 오스트리아 미술관 소장.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연인이 되는 과정에서 첫 번째 통과의례는 키스다. 연인은 키스로 말미암아 새로운 행복에 눈뜨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불확실하던 감정이 단 한 번의 키스로 사랑의 확신을 심어준다.

    키스로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을 그린 작품이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키스’다. 연인은 절벽 위 꽃밭에서 열정적으로 키스를 한다. 연인이 입은 옷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검은색과 흰색의 직선이 그려진 남자 옷은 남성의 힘을, 적색 타원형 무늬의 여자 옷은 여성성을 강조한다. 옷의 모티프가 이렇게 대조적인 것은 남녀의 이질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남자가 두 손으로 여자의 얼굴을 감싼 것은 키스의 주도권이 남자에게 있음을 의미하고, 눈을 지그시 감은 여자의 얼굴은 키스의 성적 황홀감을 드러낸다. 남자가 머리에 쓴 담쟁이 덩굴은 사티로스(그리스 신화에서 음탕한 장난을 즐기던 반인반수의 괴물)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성으로 통제가 안 되는 사랑을 의미한다. 남자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별은 세속적인 후광을 상징하며, 중간에 끊어진 꽃밭은 사랑의 위태로움을 암시한다.

    전통적으로 금박은 종교화에서 성스러움을 나타내려고 사용하지만 클림트는 부와 남자의 매력을 극대화하려고 금박과 은박을 과도하게 사용했다. 연인이 포옹한 자세가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무릎을 꿇고 앉은 여자의 키가 지나치게 크다. 클림트는 화면 구성상 인체 비례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유럽과 비잔틴, 일본의 미술 요소를 절충해 장식을 극대화하면서 상징성을 높인 ‘키스’는 1906~09년에 빛을 발한 클림트 황금스타일의 정점에 있는 작품으로, 1908년 쿤스트샤우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됐다. 클림트는 금박을 과도하게 사용해 에로티시즘을 한층 강화했다.



    연인이 가장 애달플 때가 헤어지는 순간이다. 헤어지는 아픔을 잊으려고 연인은 뜨겁게 키스를 나눈다. 이별의 키스는 약속의 키스다. 내일의 사랑을 기약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일의 사랑을 기약하는 이별의 키스를 그린 작품이 프란체스코 하이에스(1791∼1882)의 ‘작별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키스를 통해 연인의 절제된 감정을 표현한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중 로미오와 줄리엣이 첫날밤이자 마지막 밤을 보내고 헤어지는 장면을 묘사했다.

    줄리엣과 애절한 이별의 키스를 나누는 로미오는 오른손이 밧줄이 묶인 기둥에 닿아 있으면서도 왼손으로는 줄리엣의 허리를 잡아 헤어지기 싫음을 표현한다. 기둥에 묶인 밧줄은 로미오가 타고 내려가는 도구다. 집안의 반대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줄리엣을 만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창문은 줄리엣의 집안이 귀족임을 상징하며, 열린 창문은 날이 밝아 아침이라는 의미다.

    그 한순간 세상 멈추고 인생이 변했다

    (왼쪽)‘작별하는 로미오와 줄리엣’, 하이에스, 1833년, 캔버스에 유채, 112×88, 밀라노 개인 소장. (오른쪽)‘스핑크스의 키스’, 슈투크, 1895년, 캔버스에 유채, 160×144, 부다페스트 국립미술관 소장.

    두 사람 뒤로 보이는 침대에는 흰색 시트가 흐트러져 있으며 화면 오른쪽 기둥에는 수녀 복장을 한 늙은 여인이 있다. 시트의 흰색은 순결을 의미하고, 시트가 흐트러진 것은 두 사람이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음을 암시한다. 수녀 복장의 늙은 여인은 줄리엣의 유모로 두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화면 중앙 벽장에 놓인 십자가는 두 사람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별의 엄숙한 분위기를 더한다. 하이에스의 작품은 인간 감성을 중요시한 낭만주의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키스가 꼭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때때로 키스는 유혹의 수단이 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감정을 속일 수도 있는 것이다. 목적을 위해 키스하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프란츠 폰 슈투크(1863∼1928)의 ‘스핑크스의 키스’다. 이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장면을 표현했다.

    바위에 누운 스핑크스는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채 남자 몸을 감싸며 키스하고, 남자는 무릎을 꿇은 채 열정적인 키스를 받아들인다. 스핑크스가 남자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남자가 여자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하고, 남자가 지그시 눈을 감은 것은 성적 황홀감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남자는 여자의 키스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19세기 말에는 남자를 여자의 유혹에 놀아나는 희생양으로 생각했다. 슈투크의 이 작품은 세기말 남자들이 여자에게 가졌던 공포심을 에로티시즘적으로 표현했다. 얼굴은 여자면서 사자의 몸을 한 스핑크스는 인어 사이렌과 마찬가지로 에로티시즘을 자극한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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