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4

2012.02.13

빼꼼 열렸다, 일본 안방 시장

지난해 수출 늘어 대일 적자 첫 감소…이제부터 공격적으로 소비시장 공략을

  • 박기임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 giimpark@kita.net

    입력2012-02-13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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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한국은 단 한 차례도 대일(對日) 무역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해마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뿐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수출구조가 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의 상당 부분을 대일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출 실적이 100억 달러, 1000억 달러의 능선을 넘을 때는 어김없이 대일 적자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해온 것이 그간의 패턴이다. 한국의 수출 성과를 두고 ‘빛 좋은 개살구’ ‘가마우지형(形) 수출’이라고 표현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나 2011년 처음으로 이변이 발생했다. 한국의 수출 실적은 유럽 재정위기 같은 다양한 악재 속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5000억 달러를 돌파했지만, 대일 적자는 전년에 비해 75억 달러 감소했다. 대일 수출 증가율이 40.9%를 기록하는 호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대일 적자가 전년에 비해 급감했던 적이 두 차례 있었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다. 하지만 이 시기는 한국의 수출 실적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던 때로, 국내 투자가 위축됨으로써 대일 수입 수요도 급감해 결과적으로 대일 적자가 감소한 경우다. 한국 경제 전체로 놓고 볼 때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적자 감소였던 셈. 반면 지난해는 대일 수출이 늘어남으로써 적자가 눈에 띄게 감소한 사상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이전과 달리 매우 고무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대지진 이전부터 이미 적자 감소세

    수출 통계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지난해의 이러한 적자 개선에는 특히 원자재 분야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과거 두 차례 위기 때 자본재 분야에서 대일 적자가 감소했던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특히 대일 수출 1위 품목인 석유 제품이 일등공신으로, 전년 대비 138.9% 급증해 대일 전체 수출에서 5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수년째 이어지는 고유가와 함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내 공급이 부족해지고, 한국 정유업계가 설비고도화를 통해 생산 능력을 증강한 것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대일 무역 적자 개선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반짝 효과라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데이터를 꼼꼼히 살펴보면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산업의 공급 사슬(supply chain)이 붕괴하면서 적자 개선의 도화선 구실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직 그것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분기별로 살펴보면 대지진 발생 6개월 전인 2010년 3분기부터 이미 대일 적자는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수출은 2009년 1분기 46억 달러에서 2011년 3분기 103억 달러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2010년 하반기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러한 변화가 시작된 것일까. 2008년 리먼 쇼크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일본 경제가 회복의 기지개를 편 시점이 바로 이 무렵이다. 당시 일본 수출기업 처지에선 중국, 인도 등 아시아의 내수 시장을 개척한다는 차원에서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 이 때문에 한국 등 아시아 제품에 대한 관심과 시범구매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과 태국 홍수를 겪으면서 일본 기업은 공급 사슬 다변화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했다. 더욱이 올해는 1달러 80엔대 이하의 슈퍼엔고 상황이 고착되고 전력난까지 예상되면서 일본 내에서도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이 우수한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높을 것으로 보인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난해 대일 수출을 견인했던 석유 제품과 철강 같은 원자재의 경우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동이 중단됐던 일본 내 설비가 올 상반기 정상화하면서 수출이 평년 수준으로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자본재의 경우에는 절전형 제품과 발전설비 장비, 자동차 부품을 중심으로 수출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재 분야의 경우 지난해 스마트폰, 막걸리 등 한국 대기업 제품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는 점차적으로 한국의 다른 중소형 소비재에 대해서도 일본인의 인식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류 열풍’과 함께 한국 소비재의 대일 수출 역시 양호한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하는 배경이다.

    빼꼼 열렸다, 일본 안방 시장
    정면승부 겨뤄 볼 시점

    그러나 일본 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독점 공급하는 부품소재의 경우, 올해도 변함없이 대일 수입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독점적 성격이 약한 품목의 경우에는 엔고로 인한 수입 가격 부담과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관세 효과 등으로 본격적인 수입국 전환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최근 도레이와 미츠비시레이온, 아사히카세이 케미컬즈 등 일본을 대표하는 소재기업이 한국에 대한 투자와 생산을 확대하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이러한 품목에서 대일 수입이 둔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2011년의 고무적인 결과는 앞으로 대일 적자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한국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수입을 줄여야 한다는 일종의 후퇴 전략을 고수했다. 수출을 늘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일본 기업의 까다로운 기술 요건이나 자국 제품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 수입산(産)이 발붙이기 어려운 유통구조 등으로 한국 중소기업 제품이 일본 시장의 벽을 넘기란 말 그대로 달걀로 바위 치기 격이었다. 그런데 2011년 실적은 이제 상황이 달라졌고, 일본 안방 시장에서 정면승부를 겨뤄볼 시점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대일 적자 개선에 대한 초점을 수입 감소가 아닌 수출 확대로 재설정하는 공격적인 전략에 무게중심을 둘 필요가 있다. 이는 두 나라 사이에 진정한 파트너 관계를 정립하는 데서도 바람직하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 내 산업구조가 지금까지의 부품소재 중심에서 친환경, 절전,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점차 바뀔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으로선 이들 분야에 초점을 맞춰 대일 진출 기회를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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