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3

2012.02.06

말랑말랑 ‘로맨스’는 흥행 종결자

소설 콘텐츠 드라마·영화로 각색 대박 행진… 다양한 영역과 만나 색다른 매력 발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2-02-06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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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랑말랑 ‘로맨스’는 흥행 종결자

    정은궐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는 정은궐이다. 그의 소설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은 한국출판인회의가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차트에서 1월 셋째 주, 넷째 주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 9곳의 판매 부수를 더한 결과다. 출판사 파란미디어는 “지난해 10월 출간 이후 약 50만 부를 팔았다”며 “그중 올 1월 판매량이 35만 부”라고 밝혔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판매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설명이다.

    이 작품을 각색한 동명의 MBC 드라마도 인기몰이 중이다. 김수현, 한가인 주연의 사극 ‘해품달’은 1월 4일 첫 방송 후 줄곧 화제를 끌다가 1월 26일 8회에서 시청률 30%를 돌파했다(AGB닐슨 미디어리서치 집계).

    특이한 것은 지금 문화계 ‘미다스의 손’으로 한창 대중 환호에 취해 있어야 할 정 작가가 모습을 꽁꽁 감추고 있다는 점. 그에 대해 밝혀진 것은 ‘정은궐’이 필명이며 ‘은궐(銀厥)’은 은빛 대궐이라는 뜻으로 ‘달(月)’을 표현하려고 작가가 직접 만든 이름이라는 사실뿐이다. 이외엔 성별, 나이, 본명, 직업 등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임수진 파란미디어 편집장은 이에 대해 “작가 본인이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품달’ 원작자 정은궐 신드롬

    정 작가의 ‘은둔’은 2010년에도 이미 한 차례 화제였다. 당시 KBS는 그의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파란미디어, 이하 성균관)을 각색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하 성스)을 방송했다. ‘성스 폐인’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이 작품은 종영 이후 세계 각국에 수출돼 총액 400만 달러(약 45억 원) 수익을 올렸다. 원작 소설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2009년 출간한 ‘성균관’과 속편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파란미디어, 이하 규장각)은 드라마 방송 후 10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이들 두 작품의 누적 판매량은 계속 늘어 1월 말 현재 140만 부(‘성균관’ 80만 부, ‘규장각’ 60만 부)에 이른다.



    그러나 ‘밀리언셀러’ 축포 속에서도 정 작가는 모든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임 편집장은 “‘해품달’이 인기를 끌면서 언론의 관심이 다시 과열되고 있다. 한 기자가 ‘작가님이 못생겨서 인터뷰를 안 하는 것이냐’고 묻기에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바로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라는 기사를 쓰더라. 이후 여러 언론이 그 표현을 가져다 쓰면서 ‘정은궐은 미모의 여성’이라는 보도가 연달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정 작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는 2009년과 2010년 파란미디어 중개로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이뤄진 이메일 인터뷰 내용이 전부다. 당시 정 작가는 “왜 그렇게 숨으시나요?”라는 물음에 “수, 숨은 적 어, 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단지 걸오(‘성균관’과 ‘규장각’의 주인공)를 닮아서 낯가림이 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을 뿐입니다. …따로 밝힐 만큼 제 프로필이 남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라는 것. 재미있는 소설로만 독자와 교류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또 “저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로맨스 작가입니다”라며 “로맨스의, 로맨스에 의한, 로맨스 독자만을 위한 로맨스”를 계속 쓰겠다고 말했다. ‘해품달’ 후속 작품으로 조선 경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를 집필 중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출판계 관계자들은 정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로맨스 작가’로 규정하는 이상,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출판사 테라스북의 전주예 기획팀장은 “로맨스 작가 대부분은 로맨스 소설 애호가다. ‘나도 한번 써볼까’라는 마음으로 온라인 소설 사이트에 습작을 올리다 작가가 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필명을 쓰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정 작가 역시 2000년대 초반 ‘블루 플라워’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연재소설을 쓰다 그를 눈여겨본 출판사의 제안으로 첫 책을 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소설을 오프라인으로 가져오면서 실명을 밝히지 않는 것은 로맨스 출판업계의 관행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로맨스 소설은 일반 대중보다 고정 독자층, 더 정확히는 도서대여점 판매를 목표로 출간돼왔다. 도서대여점이 전국적으로 7000여 곳에 이를 만큼 호황이던 시절 로맨스 소설은 ‘망하지 않는 장르’로 여겨졌다. 출간만 하면 최소 판매부수가 보장된 상황에서 굳이 서점 영업에 뛰어들어 신규 독자를 창출하려는 출판사는 없었다. 이들은 고정 로맨스 독자층에게 익숙한 온라인 필명으로 책을 펴냈다.

    말랑말랑 ‘로맨스’는 흥행 종결자
    최근 일고 있는 ‘정은궐 신드롬’은 역설적으로 도서대여점 산업 몰락에 기인한 바 크다. 고정 판매처를 잃은 로맨스 출판사들이 생존을 위해 일반 서점 영업과 드라마 제작 등으로 눈을 돌렸고, 그 과정에서 ‘성균관’ ‘규장각’ ‘해품달’ 등의 ‘대박’ 콘텐츠가 일반에게 알려지며 대중적인 스타 작가를 탄생시킨 것이다.

    로맨스 소설이 드라마, 영화 등으로 각색돼 파괴력을 발휘하는 것은 국제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세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였던 스테프니 메이어는 2005년 자신의 꿈을 토대로 쓴 로맨스 소설을 발표했다. ‘뉴욕타임스’에서 130주 연속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우며 세계적인 화제를 뿌린 작품 ‘트와일라잇’이다. 흡혈귀 소년과 인간 소녀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동명 영화로 제작돼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고, 이후 시리즈로 이어져 매번 판매량 기록을 고쳐 썼다. 2011년 말 로맨스 마니아를 대상으로 하는 출판 브랜드 ‘블랙 로맨스 클럽’을 출범시킨 출판사 황금가지의 최고은 대리는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후 소녀층을 대상으로 하는 ‘YA(Young Adult) 로맨스’가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황금가지는 올 8월쯤 로맨스 소설 공모전을 열 계획이다.

    소녀층을 사로잡는 ‘YA 로맨스’

    로맨스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역량 있는 국내 작가의 작품을 선점하기 위한 드라마 및 영화 업계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임수진 파란미디어 편집장은 “‘성균관’ 성공 이후 지상파 3사에서 모두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출간 예정작의 시놉시스를 미리 받아보고 싶다고 연락해오는 제작사도 많다. 인기 작가의 작품은 거의 전부 영상물 판권 계약이 끝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제작 중인 로맨스 드라마는 김이령 작가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쓴 역사 로맨스 ‘왕은 사랑한다’, 신해영 작가의 현대 로맨스 ‘중매결혼’ 등 셀 수 없이 많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서누 작가의 역사 로맨스 ‘비차’와 이종호 작가의 코믹호러 로맨스 ‘누구세요, 당신’도 드라마와 영화용으로 각색 작업이 한창이다.

    테라스북의 전주예 기획팀장은 “로맨스의 기본 줄기는 보편적이지만 스릴러, 판타지, 역사 등 다양한 영역과 조우하며 색다른 결을 갖게 될 때 그 파괴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며 “앞으로도 로맨스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상 콘텐츠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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