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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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것은 ‘정보 다이어트’

비움의 미학

  •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입력2012-01-30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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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필요한 것은 ‘정보 다이어트’

    한 대형 서점에 전시된 법정 스님 저서.

    자면서도 휴대전화를 끼고 있다.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출근한 날은 하루 종일 좌불안석이다. 뭔가 긴급한 메시지를 놓칠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머릿속은 항상 인터넷과 반응하고 있다. 이메일은 금방 열어봐야 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댓글도 즉시 확인해야 안심된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즉각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손바닥만 한 휴대전화 화면과 대면하고 산다. 두 사람이 대화할 때도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은 채 각자의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겉핥기 말만 나눈다.

    자고 나면 첨단의 정보기술(IT) 신제품이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지식, 정보, 뉴스가 쓰나미처럼 쇄도한다. 검색엔진을 통한 즉각적 인터넷 서핑은 인간을 현명하게 만들었는가. 사람은 무지와 왜곡에서 해방되고 현대사회는 훨씬 살기 좋아졌는가. 예측 가능한 것이 늘었지만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것은 더 늘었다. 아는 게 많다는 현대인은 즉흥적이고 피상적일 뿐이다. 산란한 마음에 붕 뜬 헛똑똑이만 가득하다. 박학다식을 가장한 속물적 지식인만 늘었다.

    경박한 스마트시대, 우리는 어떻게 진지해질 수 있는가. 감각으로만 꾸역꾸역 채워 넣는 것을 멈추고 텅 비워야 한다. 바로 비움의 편집미학이 필요하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정보 다이어트’가 절실한 것이다. 무작정 쌓기만 한 것은 썩고 만다. 자고로 비우며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명상하는 시간을 확보할 때 우리는 잃어버린 삶의 탄력을 회복한다.

    2010년 입적한 법정(法頂) 스님은 ‘무소유’의 현인이다.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2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스님은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 학승이자 선승이었다. 스님 가르침의 밑바탕엔 “깨달음을 구하는 이는 일관되게 중생의 일상성을 수행의 생생한 텃밭으로 삼으라”라는 말씀이 깔렸다. 말씀의 뼈대는 ‘소유한 것의 소유’가 돼버리는 삶의 허상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다. 스님의 저서 가운데 비움의 미학이 배어나오는 몇몇 구절을 발췌해본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무소유’(범우사) 중에서

    홀가분하게 사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

    간소하고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한 해가 다 지나도록 손대지 않고 쓰지 않는 물건이 쌓여 있다면 그것은 내게 소용없는 것이니 아낌없이 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부자란 집이나 물건을 남보다 많이 차지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고 마음이 물건에 얽매이지 않아 홀가분하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라 할 수 있다.

    - ‘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숲) 중에서

    집착 없는 마음이 자유를 잉태한다

    연말이면 행사처럼 아궁이 앞에 앉아 편지도 태우고 사진도 불태워 없애고 불필요한 기록들도 불 속에 던져버린다. 태워버리고 나면 마치 삭발하고 목욕하고 난 뒤처럼 개운하고 홀가분해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은 의욕이 솟는다. 금강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과거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현재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다.” 찾을 수도 얻을 수도 없는 이 마음을 가지고 어디에 매어두어야 한단 말인가. 찾을 수 없는 마음이라면 텅텅 비워버려야 한다. 텅 빈 데서 비로소 메아리가 울린다. 어디에도 집착이 없는 빈 마음이 훨훨 날 수 있는 자유의 혼을 잉태한다.

    - ‘물소리 바람소리’(샘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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