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2

2012.01.30

창작의 이름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다

뮤지컬 ‘광화문연가’ 재공연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2-01-30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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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의 이름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다
    2011년 국내 뮤지컬 시장 규모가 2000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8월 막을 내린 ‘지킬 앤 하이드’는 관객 35만여 명을 동원해 순이익 100억 원을 돌파했다. ‘맘마미아’는 초연 7년 11개월 만에 대극장 1000회 공연 기록을 달성했다. 조승우, 박건형, 김수용 같은 뮤지컬 배우는 아이돌 가수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초연 이후 급속히 성장한 한국 뮤지컬 시장은 바야흐로 르네상스 시대라 할 만하다.

    그러나 한국 뮤지컬 시장의 비약적 성장에 감춰진 내면을 들여다보면 박수를 보낼 수만은 없다. 창작뮤지컬은 고전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가 조사한 2011년 뮤지컬 흥행 순위 5위까지 ‘맘마미아’ ‘조로’ ‘지킬 앤 하이드’ ‘태양의 서커스 바레카이’ ‘아이다’ 등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이 장악했다. 2012년 가장 기대되는 뮤지컬 역시 ‘엘리자벳’ ‘닥터 지바고’ 등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 일색이다. 뮤지컬 티켓파워 1위 배우 조승우는 “창작뮤지컬 중에는 내 마음을 뛰게 한 작품이 없다”고 말했다.

    좋은 해외 뮤지컬을 한국에서 본다는 것은 관객으로선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한국 뮤지컬 시장에는 독이 될 수 있다. 프로덕션 간 라이선스 획득 경쟁이 심해지면서 라이선스 가격이 높아지고, 그것이 고스란히 티켓 가격에 반영돼 관객에게 부담으로 전가된다. ‘돈 되는 라이선스 뮤지컬’에만 관심이 쏠리면서 창작뮤지컬에 대한 투자와 관심도 줄어든다.

    2011년 무대에 오른 창작뮤지컬을 보면 이것이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먼저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지난해 뮤지컬 흥행 순위 6위를 기록하고, 한국뮤지컬대상시상식 작품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선전했다. 하지만 작품성 논란이 이어졌다. 학생운동과 삼각관계, 뒤늦게 깨달은 사랑 등 일일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진부한 구성이 문제였던 것이다. 작곡가 고(故) 이영훈의 음악이 극 내용과 어우러지지 못해 빛을 잃었다. 그럼에도 윤도현, 송창의, 양요섭(그룹 ‘비스트’ 멤버) 등 스타 캐스팅과 중년 관객을 추억에 빠뜨린 이영훈의 음악 덕에 흥행 가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창작뮤지컬 ‘투란도트’ 역시 해외 뮤지컬 페스티벌에서 특별대상을 수상하고 해외에 수출되는 등 큰 화제를 모았지만 완성도는 기대 이하다. 원작인 푸치니의 오페라보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데다, 복잡한 내용과 인물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발을 내디딘 창작뮤지컬이 해외 라이선스 작품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것이 가혹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자기비판이 없다는 것이다. 한 뮤지컬 전문가는 ‘대작 창작뮤지컬’의 작품성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는데도 창작뮤지컬이라는 이유로 주목이나 지원을 받고 상을 받는 현실을 비판했다. 그는 “명성만 듣고 창작뮤지컬을 보러 온 관객은 분명 실망할 테고, 장기적으로 창작뮤지컬을 응원하는 관객을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2월 7일부터 한 달간 ‘광화문연가’가 재공연에 들어간다. 이번 공연에도 조성모, 윤도현, 서인국 등 유명 가수가 총출동한다. 세부 장면을 제외하고는 큰 수정 없이 공연한다. 창대한 개막을 앞두고 조바심이 나는 것은 왜일까. 창작뮤지컬 ‘댄싱 섀도우’ 초연 이후 “처음부터 다시, 정말 질 높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의상과 장비를 태워버렸다는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의 강단이 새삼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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