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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 “못 살겠다, 갈아엎자”

재정 파탄·무능 정치 ‘리밸런싱의 해’…각국 주요 선거 앞두고 벌써 회오리바람

  • 윤상하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shyoon@lgeri.com

지구촌 곳곳 “못 살겠다, 갈아엎자”

2102년 세계는 ‘터널의 끝’을 볼 수 있을까. 세계 금융위기와 그로 인한 경기침체가 지속된 지 3년을 넘어섰다. 금융위기를 초래한 글로벌 불균형은 오랫동안 누적된 모순이 폭발한 결과다. 그만큼 균형을 되찾는 과정(리밸런싱·rebalancing)이 지난하다. 사실상 모든 영역에서 대전환기를 맞은 지금, 불균형 해소가 소리 없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특히 계층이나 세대 간 소득 분배의 몫을 조정하는 과정이 올해 예정된 주요국들의 선거와 맞물리면서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정치와 경제가 한 몸으로 뒤엉키는 소용돌이가 2012년 세계를 읽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이유다.

대중의 희생 요구에 민심 폭발

먼저 2011년을 돌아보자. 정치가 국민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거센 저항에 직면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2011년처럼 전 지구적 현상이 된 경우도 드물다. 유럽 각국에서는 재정위기에 따른 복지예산 감축, 공무원 임금 삭감과 고용 축소, 세금 인상 등에 반발해 봄부터 긴축 반대 시위가 빈발했다. 가을 미국 뉴욕에서는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두 달 넘게 이어졌다.

신흥국의 민심도 격렬하게 분출됐다. 2010년 말 노점상을 하던 한 청년의 분신으로 촉발된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들불처럼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번져나갔다. 수십 년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 독재자가 비참하게 물러났으며, 예멘과 시리아 등 주변국도 성난 시민의 저항물결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선진국 대중의 분노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배경으로 한다. 그중 하나는 2008년 금융위기와 이후 정책 대응이다. 위기를 극복하려고 막대한 재정을 풀었는데 이것이 가뜩이나 심각했던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정부 부채를 급격히 늘리는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각국은 재정 지출을 크게 줄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는데, 긴축 방안 가운데 복지 및 연금 혜택 축소 등 대중의 희생을 요구하는 부분이 극심한 반발을 산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급등한 실업률도 사회불안의 주요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실업률 상승을 지적한 바 있다. 선진국의 실업률은 2007년 5.5%에서 2011년 7.9%까지 상승했으며, 유로존은 같은 기간 7.6%에서 9.9%로 높아졌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현재 20%를 넘나들고, 미국도 8∼9%대의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 및 재정 위기의 여파와 그에 대한 정책 대응이 대중의 분노를 야기한 단기적인 배경이라면, 지난 30여 년간 규제 완화와 감세, 금융자유화 등으로 꾸준히 악화한 소득 분배 구조는 민의(民意) 폭발의 장기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동안 기업의 부가 크게 늘어났지만 일반 대중의 삶은 개선 속도가 더뎠을 뿐 아니라 되레 중산층이 몰락했다.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기준으로 1970년대 중반 0.30 미만이던 것이 2008년에는 0.32까지 확대됐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북유럽에서도 악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경우 상위 0.01% 계층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초반 1%대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면서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는 5%를 넘어서기도 했다.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평균 소득 수준이 꾸준히 상승했음에도 그 혜택을 모든 계층이 골고루 누리지 못해, 성장에서 소외된 이들의 불만이 누적됐다.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시민 분노의 장·단기적 배경이 신흥국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된다. 다만 높은 실업률과 소득 불평등이 독재에서 기인했다는 점이 다르다. 오랜 기간 수탈과 압제를 겪은 탓에 중동과 북아프리카 경제의 기초 체력은 매우 취약해졌다. 경제적 부를 누리는 것이 독재자와 그 일가에게만 허용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금융위기로 이전부터 높았던 실업률이 더 치솟고, 2010년 말 이후 물가까지 폭등하면서 독재와 경제적 곤궁에 신물이 난 서민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스웨덴이 평화로운 이유

가장 큰 변화가 있을 지역은 재정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이탈리아 등 남유럽이다. 이 지역의 위기 원인이 과도한 복지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위기의 결과로 복지지출 및 재정 시스템이 재조정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탈리아 의회는 예산 삭감 및 감세, 연금 개혁을 포함한 300억 유로(약 45조 원) 규모의 긴축안을 2011년 말 승인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 반발이 만만치 않지만, 유럽연합(EU) 차원의 지원을 얻으려면 강도 높은 재정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벼랑 끝에 몰린 그리스 정부도 유럽중앙은행(ECB)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얻어내려고 긴축 예산안을 마련해 의회 승인을 받았다.

사실 그동안 남유럽은 유로화 편입에 따라 과잉 복지와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리면서 복지 개혁과 증세에는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19∼2009년 유럽 각국에서 예산 삭감 사례가 나타난 경우 사회불안이 크게 늘었다는 보고가 있다. 현재의 재정위기 탓에 예산 증액이 어렵다는 점을 유럽 국민이 인식하고는 있지만, 위기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데 대해 불만이 큰 상황이다. 남유럽 정치권은 예산 총액을 줄이는 가운데, 국민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려는 정책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시일을 소비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달러를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은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재정긴축 및 증세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2011년 11월 여야 동수로 구성된 슈퍼 위원회(Super Committee)는 공화당 측이 증세를 일부 받아들이고 민주당 측이 지출 삭감을 부분 수용하는 방식을 놓고 토론을 진행했으나, 향후 10년간 1조2000억 달러 적자 감축안에 대해선 끝내 합의에 실패했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고조된 것도 이 무렵이다. 일반 시민들이 금융위기의 책임은 지지 않고 부담만 국민에게 전가하려는 월 스트리트와 정부의 개혁 난항을 거세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시민사회의 요구가 거세짐에 따라 규제완화와 감세, 막대한 재정적자, 상대적으로 빈약한 복지체계 등으로 상징되던 미국식 경제 모델 또한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자유주의 게릴라’시대 예견

반면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변화의 압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인다. 1990년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일찍이 재정개혁을 실시해 ‘복지 리밸런싱’을 이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한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12%를 넘기도 했던 스웨덴은 근로자들의 퇴직연령 상향 및 연금지급 축소, 공기업 민영화 등을 단행했다. 조세 수입도 꾸준히 늘렸다. 독일도 2007년 증세와 노인연금 수령 개시 연령 상향을 통해 지속가능한 복지와 재정건전성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양국 모두 국민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재정과 복지 개혁에 일정한 성과를 냈기 때문에 남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변화 압박을 덜 받는 상황이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는 민주화로의 여정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불과 1년 만에 급격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맞았으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과 반혁명 세력의 충돌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튀니지는 민주주의로의 개혁이 비교적 잘 진행되고 있지만, 이집트에서는 여성시위대를 군부가 강경 진압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여성과 야권의 반발이 거세졌다.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리비아는 각 부족의 이해관계가 얽혀 좀처럼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각국의 경제적 곤궁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민 봉기로 일단 민주화의 첫 단추를 끼웠으니 외견상 결실을 보긴 하겠지만, 제도적으로 정착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세계 각국 정부는 대중의 분노에 직면한 채 2012년을 맞이했다. 여러 나라가 눈앞에 닥친 부도사태를 막으려면 재정지출을 줄여야 하지만, 국민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시민사회의 여론화 과정 및 확산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빨라진 것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정당정치가 힘을 잃고 특정 의제마다 사람의 이합집산이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는 ‘자유주의 게릴라’ 시대를 예견하는 이도 있다.

2012년은 주요국들에서 선거가 예정돼 있다. 우리나라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다. 어떤 복지 모델이 좋은지, 향후 고령화 등으로 불거질 재정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사회적 토론과 각 정당의 공약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적합하고 지속가능한 복지모델과 재정 정책을 한두 번의 선거로 완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정적으로 아직 여유 있고 위기가 닥치지 않은 시점에서 충분한 토론과 갈등 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주요국 사례를 통해 배웠으면 한다. 어쨌든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 없이 일반 대중의 정치적 요구가 거세게 밀려오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주간동아 822호 (p43~45)

윤상하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shyoon@lge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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