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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기업의 꽃 or 임시직원 닥치고! 임원 01

임원, 임시직이라도 괜찮아?

화려한 ‘기업의 꽃’으로 피었지만 직급만큼 큰 애환

  • 손영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scud2007@donga.com

임원, 임시직이라도 괜찮아?

임원, 임시직이라도 괜찮아?
지난해 말 인사철이 다가오면서 남모르게 가슴앓이했던 중견기업 임원 K씨. 이번에 승진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했기에 처음 임원 승진을 앞뒀을 때보다 더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그는 이번 인사에서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이번에도 승진할 때만 기분이 좋았습니다(웃음).”

여러 곳에서 축하전화가 걸려오는 승진 당일은 기쁘지만, 당장 다음 날부터 더 큰 책임감을 안고 업무에 임해야 하는 부담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K전무는 “일단 이번에는 살아남았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며 “이제 기쁨은 접어두고 다시 치열한 경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입사 이후 임원이 될 확률 0.8%

K전무는 6년 전 부장에서 상무로 승진해 ‘기업의 꽃’이라는 임원이 됐을 때를 잊지 못한다. 훌쩍 뛰어오른 연봉은 말할 것도 없고, 넓어진 자신만의 사무공간을 비롯해 골프회원권과 법인카드도 제공받았다. 시골 고향에선 부모가 동네 사람을 모아놓고 잔치까지 벌였다. K전무는 “아내가 사모님 소리를 듣고 좋아하고 아이들이 뿌듯해하는 모습에 그동안 가정에 소홀했던 미안함을 털어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가 전국 250여 개 기업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는 데는 평균 21.2년이 걸리고, 임원이 될 확률은 0.8%인 것으로 나타났다. 100명이 입사하면 1명도 임원이 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물론 기업 오너의 자녀들은 입사한 지 4년이 채 안 돼 임원 자리에 앉기도 하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든 과정을 통과해 임원이 됐기에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대우를 받는 임원 처지에서는 그만한 실적을 내라는 ‘압박’으로 다가온다. 3년 전 퇴임한 한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퇴임 직후 은행에서 계좌를 새로 만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CEO로 재직할 때 비서가 전부 알아서 처리해주던 일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는 CEO가 오직 경영에만 신경 쓰도록 지원한다. 그러니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CEO나 임원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재계 관계자들은 “임원이 될 사람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임원이 되는 자질은 분명히 따로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꼽는 임원 자질 가운데 첫 번째는 강한 의지다. 이는 곧 성과로 이어진다. 2011년 말 삼성전자의 임원 인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30대 ‘젊은 피’의 약진이었다. 이들은 스마트시대를 맞아 삼성전자가 초반에는 고전했으나 나중에 반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갤럭시 시리즈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애플이라는 절대 강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각오로 밀어붙인 ‘젊은 피’가 존재했기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직장 상사, 부하,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유연함과 친화력을 발휘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외유내강 리더십도 중요한 임원 자질 가운데 하나다. 오랫동안 인사팀에 근무했던 전직 임원은 “성격이 외골수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임원이 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회사도 다 사람이 생활하는 곳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스타일은 기업문화를 해치고, 반목을 낳는다. 1명에게 나머지 99명이 맞추기보다 1명이 99명에게 맞추는 것이 아직까지 우리 기업문화다.”

최근 들어서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 더 직접적으로는 기업 오너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재벌 총수들이 검찰 수사나 법원 재판을 받는 경우가 늘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현상이다.

임원, 임시직이라도 괜찮아?

2011년 1월 3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년하례회에서 이건희 회장(가운데)이 임원들과 술잔을 들고 있다.

‘강한 의지’ 임원의 첫 번째 자질

유통업체 한 임원은 “사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려면 맡은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한마디로 ‘만능맨’이 돼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을 숙지하는 것은 기본이다. 사생활과 건강을 비롯해 철저한 자기관리도 필수다. 영어 외에 중국어나 일본어 등 외국어 2~3개는 기본으로 해야 유능하다고 인정받는다. 현재 국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려고 매일 신문도 꼼꼼히 챙겨 읽는다. 대내외적으로 인맥을 넓히려면 상당한 수준의 골프실력도 갖춰야 한다. 술자리에서 ‘술상무’ 구실을 마다하지 않아야 하며, 그 자리를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유머 몇 가지도 준비해가는 센스까지 갖춰야 한다.”

능력 있는 임원은 중·장기적으로 기업 명운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국내 한 중견기업 대표는 CEO의 임원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기 경험에 빗대 설명했다.

“CEO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임원 자리에 앉히면 그 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만일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임원으로 쓰면 중간 정도 기업에 그친다. 하지만 자신보다 못난 사람을 임원으로 승진시키면 조그만 기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년을 보장받는 부장 때와 달리 초급 임원이 되면 계약제로 바뀐다. 계약기간이 만료됐는데 회사가 재계약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면 당장 짐을 싸야 한다. “임원은 비정규직”이라는 푸념처럼 언제든 퇴출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임원 승진 인사를 인사적체를 해소하려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국내 그룹의 한 부장은 “인사적체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부장들을 초급 임원으로 발령 내고 1~2년 후 계약만료를 이유로 퇴사시키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진 기업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다 보니 전체 임원 가운데 1~2년짜리 단명 임원이 30% 이상을 차지한다. 인사 및 조직문화 컨설팅 전문업체인 아인스파트너가 조사 및 분석한 ‘국내 100대 기업 퇴직임원 현황 분석’에 따르면, 임원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옷을 벗은 임원은 전체 퇴직 임원 가운데 17.35%였다. 2년간 재직한 뒤 퇴임한 임원도 15.48%로 나타나는 등 재임 기간이 1~2년에 불과한 퇴직 임원이 전체의 32.83%에 이르렀다. 한 건설사 임원은 “이런 점에서 임원은 기업의 꽃이 맞다”며 “단, 화려해서가 아니라 꺾기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퇴출 위험에 극도의 스트레스

임원, 임시직이라도 괜찮아?

2011년 10월 19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 상생 CEO 세미나’에 참석해 그룹의 공생발전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원은 이처럼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불안한 임기, 업무 가중, 성과 스트레스 등 3중고에 시달린다. 불면증과 두통은 임원이 달고 다니는 대표적인 잔병이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은 “상담 과정에서 실적에 대한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임원이 많았다”며 “예전에는 임원 임기를 마치고 다른 자리로 옮겨가는 경우가 흔했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아 퇴출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고 지적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은 때로는 임원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기도 한다. 지난해 말 한 유통업체의 상무급 임원이 자살했다. 회사와 가족은 조용히 수습했지만, 업계에선 그가 경쟁업체보다 실적이 뒤처져 회사에서 강한 질책과 압박을 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꽃’ 임원을 바라보는 젊은 직원의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 한 전자업체 대리는 “임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임원이 대단해 보였고, 나도 꼭 임원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모르겠다. 가정은 거의 돌보지 못한 채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진다. 한 번은 모시던 임원이 스트레스로 폭음해 그분의 차로 집까지 모셔다 드린 적도 있다. 문득 이렇게까지 하면서 임원이 돼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연말연초. 50, 60대의 임원은 30년 넘게 자기 청춘을 바쳐 일했던 정든 직장을 떠난다.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20대의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기업에 입사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임원이 된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주간동아 822호 (p22~24)

손영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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