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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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소설이 뭐 어떤가, 막 돼먹은 세상이 문제지…”

장편소설 ‘솔섬’ 출간 소설가 안정효 “변신 아니라 상상력 날개 펼친 것”

  • 백경선 객원기자 sudaqueen@daum.net

    입력2012-01-16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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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소설이 뭐 어떤가, 막 돼먹은 세상이 문제지…”
    “환갑이 돼서야 깨달은 게 있어요. 회사원이 승진하듯 소설가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란 거죠. 과거에 썼던 것보다 더 나은 작품을 써야 한다고 욕심을 부렸는데, 어쩌면 내 생애에서 가장 좋은 작품은 이미 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욕심의 굴레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즐겁게 쓴 소설입니다.”

    소설가 안정효(71) 씨가 장편소설 ‘솔섬’(전 3권·나남)을 펴냈다. 장편소설로는 ‘실종’ 이후 16년 만이다. 그런데 그 설정이 흥미롭다. 인천 앞바다의 작은 섬 솔섬이 통째로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제주도만 한 커다란 섬이 됐다가 47만 마리 문어 떼의 습격으로 다시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2007년에서 1945년으로 거슬러 가는 역행 구조도 새롭다.

    이 소설에는 두 가지 가상공간이 등장한다. 솔섬(황송공화국)과 인터넷 속 나라인 환탁나라다.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통해 안씨는 한국 현대정치사를 비트는 한편,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요즘의 인터넷 문화를 비판하기도 한다. ‘솔섬’ 앞에는 갖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판타지 소설, 역사 소설, 정치 풍자 소설, 세태 소설, 마술적 사실주의 소설…. 정작 그는 이 소설을 ‘막소설’이라 명명했다. 이때의 ‘막’은 방종이 아니라 자유를 뜻한다. 소설의 기본이 전제된 후에야 ‘막’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상상력에 자유를 주고 싶었어요. 이것저것 구애받지 않고 쓰고 싶은 대로 ‘막’ 해보자고 생각해서 썼어요.”

    ‘말도 안 되는 설정’ 통해 현실 비판



    그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말이 싫어 ‘막소설’이라 부른다고 덧붙였다. 판타지라는 영어 단어보다 ‘막’이라는 우리말이 좋단다. 또한 “판타지라고 하면 공주나 괴물이 나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생각”하는데 “이 소설은 판타지적 요소가 결합돼 상황이나 배경이 황당하기는 해도 분명 그 안에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떡값 2억 원을 받은 정치인들에게 떡 2억 원어치를 먹게 하고, 정치인 수련학교를 세운 조폭은 격투기장으로 변모한 국회에서 싸울 파이터를 키운다는 설정이 황당하다. 그런데도 왠지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 속에서 현실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막소설을 쓰기로 작정한 까닭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그리 논리적이지를 않기 때문이다. 워낙 이상한 세상에서는 정상적인 논리가 힘을 잃는다.”

    그가 ‘문학적 변신’을 했다고 말하는 이도 더러 있다. ‘하얀 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같은 대표작을 보면, 그는 체험을 통한 사실적 묘사에 힘써왔다. 그것들과 비교하면 ‘솔섬’은 확실히 스타일이 다르긴 하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은 갑자기 내가 변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실종’이란 장편소설과 몇몇 중편에서도 시도는 했었다. 다만, 그것들이 대표작들처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며 그는 웃었다.

    돌아보면 그는 일찍부터 글쓰기의 자유를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2007년부터 쓰기 시작한 이 소설은 그가 대학 때 쓴 두 편의 미완성 소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서강대 영문과 재학 시절, 그는 7편의 영문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그중 하나가 ‘은마는 오지 않는다’라고 한다).

    하나는 1960년대 독도 문제가 한창 화제로 떠올랐을 때 문득 “독도가 떠올라 제주도만큼 커지면 한국과 일본 간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 한다. 또 하나는 무신론자였던 그가 종교에 회의를 품고 썼던, 구세주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사람들에 의해 구세주가 된 인물의 이야기란다.

    “막소설이 뭐 어떤가, 막 돼먹은 세상이 문제지…”
    “쓰다 보니 황당하다고 생각해 포기했다”는 두 편의 미완성 소설을 바탕으로 애초에 그가 쓴 ‘솔섬’에는 솔섬에 사는, 세상을 구원할 의지가 전혀 없는 구세주의 이야기와 한국 현대정치사가 함께 담겨 있었다. 하지만 전자를 잘라내고 후자만 엮어 세상에 내놓은 것. 잘라낸 부분은 이후 또 다른 장편소설로 엮어낼 계획이라며, 그 준비가 한창이라고 귀띔했다.

    “사람들은 나이 들면 다 변해요. 저 또한 그렇죠. 젊었을 땐 정통적인 소설,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황당하고 말도 안 된다 싶은 것은 안 썼는데, 지금은 달라요.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글쓰기가 즐거워요.”

    그는 변신이자 발전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열심히 기초를 쌓았고, 이제는 그 위에 묘기를 부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정치 비판 세게 해 2년간 썩어”

    그가 ‘솔섬’을 쓰기 시작한 것은 한 출판사로부터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정작 탈고가 되자 그 출판사는 “부담스럽다”며 출간을 포기했다. 분량이 원고지 6000매에 이르고, 무엇보다 정치 비판의 강도가 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설은 2년 가까이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냥 썩고” 있었다.

    “풍자의 대상이 소설을 읽고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게 어렵죠. 특히 시간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힘든 것 같아요.”

    소설은 이승만 시대, 군사정권 시대, 진보 시대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각 시대를 풍자한다. 그는 “특정 시대를 두둔하기보다 잘못된 우리 정치와 정치인의 모습을 다양하게 풍자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나이가 있다 보니 보수적 성향이 어느 정도 있어요. 하지만 정치에서는 좌파 우파 그 어느 쪽도 아니죠. 지금 시대는 저처럼 ‘아무 쪽도 아닌 사람’이 가장 많지 않을까요. 아무 쪽도 아닌 제가 보기엔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어도, 지나고 보면 그 행태는 별반 차이 없는 것 같아요.”

    그는 “이쪽저쪽 다 기회를 줬는데 다 거기서 거기더라”며 “그래서 국민은 지금 새로운 구세주를 바라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안철수 현상은 그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정치가들은 권력을 쥐고 국민을 다스리는 줄 알지만 실은 반대죠. 노무현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국민이 정권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다른 쪽에 권력을 줬다가 다시 빼앗았다가 하는 것이 반복되고 있어요. 말하자면 국민이 정치권을 뒤흔들면서 훈련하는 중인데, 국민도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정치권은 더더욱 모르죠.”

    또한 그는 “지금 우리는 정치적 중병을 앓고 있지만 결국은 지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우리의 정치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모든 사람이 정치를 개탄하지만, 가만히 보면 과거와 차이는 있어요. 이승만 정권이 막 끝난 1960년대에 기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엔 대통령만 읽는 신문을 따로 만들었죠. 게다가 박정희 시대엔 기자들이 고문을 당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진 않잖아요.”

    총선과 대선이 줄줄이 기다리는 2012년, 천성적으로 세상에 관심이 많다는 노(老)작가는 새해 소망을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세상 돌아가는 것이 내 소설과 같으니까 사람들이 내 소설을 읽겠지만, 세상이 좋아져 이런 소설이 읽히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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