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9

2012.01.02

125억 원 증발?…재개발 주민 ‘고소戰’

고척 제3구역 재개발사업지구 조합원 간 수익금 놓고 법정공방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2-01-02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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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억 원 증발?…재개발 주민 ‘고소戰’

    고척 제3구역 재개발사업지구는 조합 청산과정에서 수익금 사용처를 놓고 주민들 간에 법적분쟁이 발생했다.

    “모두 난감해해요. 한 동네에 다 같이 오래 산 이웃사촌인데….”

    2011년 12월 26일 서울 구로구 고척동 벽산블루밍아파트에서 만난 한 주민은 최근 재개발사업을 두고 벌어지는 주민 간 다툼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서울시와 구로구로부터 우수 시범사업지구로 인정받을 정도로 성공적인 사업이라고 평가받았던 ‘고척 제3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이 주민 간 고소전으로 시끄럽다. 일부 주민이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조직해 조합장과 집행부의 해임을 주도하고,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에 전 조합장을 배임죄로 고소했다. 이에 질세라 조합 측도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등으로 비대위를 고소했다.

    고척 제3구역은 1만7444㎡의 정비구역에 5동의 일반아파트와 1동의 임대아파트를 건축한 뒤 전체 339가구 중 43%에 이르는 147가구를 성공적으로 일반분양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곳이다. 하지만 입주가 마무리되고 조합이 청산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불거진 재개발 비리의혹으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청산 과정에 의혹 불거져

    사건의 발단은 5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1월 28일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 ‘고척 제3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은 2009년 1월 기초공사를 시작한 뒤 일반분양(2009년)과 조합원분양(2008년)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2011년 7월 29일 조합 정기총회에서 시공사인 벽산건설에 57여억 원의 공사비를 증액시켜줘야 한다는 안건이 올라오면서 분란이 시작됐다.



    일부 조합원이 “어느 정도의 물가변동이 있었기에 공사비를 얼마만큼 증액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며 조합장과 집행부 측에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설명이 부족하고 수차례에 걸친 자료 공개 요청을 거부하자 결국 일부 조합원이 비대위를 꾸렸다. 이후 비대위는 주택재개발정비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125억 원 상당의 수익금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확대됐다.

    비대위 측이 제시한 ‘고척 제3지구 주택재개발정비사업(자금 내역 및 공사비 증액 부분)’이라는 문건에 따르면, 2010년 12월 31일 현재 조합은 조합원 분담금, 일반분양 아파트 대금, 상가분양 대금 등을 통해 총 953억6000여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리고 외주비, 기타사업비, 감리비 등으로 총 828억2000만 원을 지출했다. 수입과 지출의 차액인 125억3700여만 원의 용처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김정순 비대위 총무는 “2010년 12월 기준 수입과 지출 명세를 비교해보면 125억 원가량의 수익금이 남아 있어야 함에도 전임 조합장 측에선 잔여금이 전혀 없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전임 조합장 측은 “비대위가 미완의 자료를 근거로 허위사실을 조작했다”고 반박했다. 김충신 전 조합장의 말이다.

    “매년 정기총회에서 전년도 결산보고를 통해 재무제표를 공개한다. 수익금이라는 것이 조합 청산 시점에 확정되는 것인데, 사업이 끝나지 않은 현재 시점에서 수익금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비대위가 제시하는 문건에 대해서도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조합과 정비업체가 만들다만 미완의 자료를 근거로 125억 원이라는 수치를 조작해냈으며, 수입이나 지출에서 빠진 부분이 많은 탓에 비대위가 제시한 수치에는 오류가 많다는 것. 김 전 조합장은 정비업체로부터 문건이 흘러나온 정황에 주목해, 정비업체가 용역비 인상을 거부당하자 앙심을 품고 조합을 음해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125억 증발 vs 자료 조작”

    125억 원 증발?…재개발 주민 ‘고소戰’

    비상대책위원회 측이 제시한 문건들.

    “2011년 7월 29일 조합 총회에서 정비업체가 예정에 없던 용역비 인상을 일방적으로 요청했다가 거부당했다. 이에 정비업체가 강한 불만을 표시했으며, 이후 일부 조합원에게 125억 원 증발설을 얘기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비대위는 이런 전임 조합장 측의 주장에 대해 “자료는 우리가 직접 조합에 요청해 받은 것”이라며 반박했다. 그러면서 공사비 증액 이유에 대한 전임 조합장 측의 해명을 요구했다. 비대위가 공개한 공사비 인상 요구 금액에 따르면, 공사가 진행되면서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 증액, 옹벽 가시설 및 옹벽골조 신설에 공사비 증액 등으로 77억가량의 공사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공사비 증액 이유를 놓고 조합원 사이에선 말이 무성했다. “조합장이 개발이익금 70억 원가량을 조합원에게 나눠주면 수익에 대해 세금이 70% 이상 나오니, 차라리 그 비용으로 아파트를 고급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얘기하면서 다녔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다. 한 조합원은 “4억 원 하는 아파트 한 채를 무료로 주면서까지 조합장을 절대적으로 믿었는데 배신당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77억 원가량의 공사비 증액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 증액’이다. 조합 집행부는 2007년 시공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2008년 3월 착공키로 합의한 후, 계약대로 착공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실제 착공 시 소비자물가상승지수를 반영해 비용이 100분의 3 이상 증가한 때부터 공사비를 인상키로 했다.

    계약 체결 후 조합은 2008년 1월 초 조합원으로부터 재개발 동의를 얻었지만 공사 착공 시일을 한 달이나 넘긴 그해 4월이 돼서야 동의서를 시공사에 전달했다. 이후 재개발에 반대하는 조합원으로 인해 2008년 11월에야 구로구청에 착공계를 제출했고 실제 기초공사는 2009년 1월에야 착수했다. 그 결과 시공사의 공사비가 52억 원가량 증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대위는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 증액’을 부풀렸다고 주장한다. 비대위가 공개한 자료에는 구체적으로 어느 항목에서 상승했는지 명확히 나와 있지 않다. 비대위 관계자는 “조합이 구체적인 항목을 밝히지 않아 우리도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아파트건설 기초공사의 경우 철근 같은 원자재 가격 등락이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 변동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기초공사에 착수해야 할 2008년 6월 철근 가격은 t당 103만6000원이었으나 실제 기초공사가 이뤄진 2009년 1월 철근 가격은 t당 84만5000원으로 20% 가까이 하락했다. 이후에도 철근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비대위 측은 착공이 지연됨에 따라 원자재(철근) 가격이 하락한 시점에 기초공사에 착수했으므로 시공사가 실질적 이익을 봤다고 주장한다. 비대위 관계자는 “도급공사 실제 계약일은 2008년 4월 23일인데 2008년 3월 기준 물가변동률을 적용해 공사비 52억 원 증액을 요청하는 것은 조합 측이 잘못된 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조합 측이 공개한 공사비 증액 사항에는 단지 고급화를 위한 건축물 특화, 조경특화, 민원 합의이행 비용 등이 있다. 비대위 측은 “이 또한 조합 측이 부당하게 이중으로 공사비 증액 계약을 맺은 것”이라며 반발했다.

    벽산건설은 “조합원 사이 문제”

    125억 원 증발?…재개발 주민 ‘고소戰’

    비대위 측은 조합 집행부가 단지 고급화를 위한 건축물 특화, 조경 특화 등의 명목으로 공사비를 이중으로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2006년 3월 8일 벽산건설의 ‘구로구 고척3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입찰제안서에는 도급공사비가 3.3㎡(1평)당 319만8000원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2008년 4월 23일 공사도급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도급공사비가 3.3㎡당 350만 원으로 올랐다. 이렇게 공사비가 오르면서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건축공사비, 토목공사비, 하자보수비, 공사 관련 민원처리비, 예술장식품 공사비가 포함됐다.

    그럼에도 또다시 수익금을 공사비 증액 명목으로 시공사에 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비대위 측 한 조합원은 “계약 당시 도급공사비가 3.3㎡당 319만 원에서 350만 원으로 오를 때 분명히 공사 관련 민원처리비와 예술장식품 공사비가 명시돼 있었다”며 “그런데 조경특화나 건축물 단지특화, 민원 합의이행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또다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공사비 증액 당사자인 벽산건설은 “조합원 사이의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특히 벽산건설이 워크아웃을 겪으면서 담당자가 회사를 퇴사한 까닭에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 벽산건설 관계자는 “마무리 과정에서 일처리가 썩 원활하게 되지 않았다”며 “우리는 시행사인 조합과 계약한 내용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고 공사비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비대위 측은 설령 조합의 얘기대로 공사비 증액으로 77억 원가량을 썼다고 하더라도 수익금 125억 원 가운데 잔여이익금인 50억 원가량을 어디에 썼는지 여전히 확인이 안 되는 만큼, 이에 대한 소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비대위 관계자는 “2010년 12월 31일 조합의 재무상태표를 보면 63억여 원이 보통예금으로 예치돼 있었다”며 “그 돈이 지금 어디로 갔는지도 전임 조합장 측에서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비대위는 시공사가 부담해야 할 예치금 30억 원을 조합비에서 지출한 행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구로구청은 2008년 12월 준공인가를 하면서 일부 도로공사가 완결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예치금을 요구했다. 이때 조합과 벽산건설은 벽산건설이 전액 예치하도록 공사도급변경계약을 맺었다. 비대위 관계자는 “계약과 달리 조합이 임의로 도로개설분담금 명목으로 조합비를 지출했다”며 “예치인 명의를 벽산건설로 함으로써 조합의 반환청구를 불가능케 해 30억 원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김 전 조합장은 “검찰 조사를 통해 명백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 측의 고소장을 접수한 검찰은 김 전 조합장과 비대위 관계자를 불러 조사를 했다. 최근에는 양쪽 대질심문도 했다. 김 전 조합장은 “총사업비가 1000억여 원인 사업장에서 125억 원이 사라졌다면 엄청난 사건이라 진작부터 문제가 되지 않았겠느냐”며 “검찰 조사를 충실히 받고 있는 만큼 조만간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125억 원 증발?…재개발 주민 ‘고소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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