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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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둘이 버는데도 쪼들리며 살까?

맞벌이의 함정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2-01-02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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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벌어 어떻게 삽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등 신붓감이라 하면 집에서 살림하며 자식 잘 키우고 남편 내조를 잘하는 ‘현모양처’형 전업주부를 떠올렸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혼자 벌어서는 자식 교육을 시키면서 내 집을 마련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마당에 노후준비는 언감생심이다. 차라리 결혼을 안 하면 안 했지 혼자 벌어서는 못살겠다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맞벌이 가정 통계를 보면, 이런 의식 변화가 확연히 드러난다. 통계청이 2011년 결혼관계를 유지하는 전국 1162만 가구를 조사한 결과, 맞벌이 가정(507만 가구) 수가 외벌이 가정(491만 가구) 수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샐러리맨 남편-전업주부 아내’라는 가계구조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자녀 때문에 전업주부가 일터로

    왜 둘이 버는데도 쪼들리며 살까?
    그렇다면 전업주부를 일터로 내몬 것은 누구일까. 바로 자녀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면 명문 학군에 있는 집을 움켜잡아야 한다. 굳이 맹모삼천지교를 논하지 않더라도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라면 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미 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 진학률이 높은 중학교 인근으로 이사를 준비한다. 수요가 몰리면 집값이 오르게 마련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한보미도맨션 1차와 2차는 한 단지처럼 나란히 붙어 있다. 하지만 2011년 12월 초 기준으로 전용면적 113㎡인 아파트시세를 비교해보면, 1차(10억5000만~12억 원)가 2차(10억~11억5000만 원)보다 5000만 원가량 비싸다. 이런 시세 차이에 대해 주변 공인중개업소들은 ‘대청중학교 입학’ 가능 여부를 그 원인으로 들었다. 근거리 학교 배정원칙에 따라 한보미도맨션 1차는 대청중을 배정받지만 2차는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고와 외국어고에 한 해 30~40명씩 입학시키는 학교가 바로 대청중이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자리한 래미안 아파트도 학군 때문에 전셋값이 급등한 대표적 사례다. 2010년 9월 입주 당시만 해도 공급면적 143㎡ 아파트의 전셋값은 2억4000만 원 정도였지만, 2011년 말 4억 원~4억2000만 원으로 올랐다. 전셋값이 큰 폭으로 상승한 데는 인접한 영훈초교, 영훈국제중, 대일외고가 한몫했다.

    영훈초교는 영어몰입교육이 특징인 명문 사립초등학교다. 영훈국제중도 2009년부터 국제중학교로 전환돼 주목받고 있다. 대일외고는 전국 수위권에 드는 명문 특목고다. 부동산 업계에는 주택값을 결정하는 요소로 ‘첫째도 위치, 둘째도 위치, 셋째도 위치’라는 말이 나돈다. 하지만 요즘에는 ‘첫째도 학교, 둘째도 학교, 셋째도 학교’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전업주부가 일터로 내몰리는 또 다른 원인은 자녀의 안전문제다. 집단 따돌림, 집단 폭언 및 폭행, 협박, 금품 갈취 등으로부터 자녀를 지키기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좀 더 안전한 학교로 자녀를 전학시키는 일이다. “공부 잘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맞고 다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한 번이라도 학교폭력에 시달려본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자녀의 ‘성공’과 ‘안전’을 담보하는 명문 학군에 집을 마련하려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대출이자를 상환하고 사교육비를 대려면 전업주부가 일터로 나설 수밖에 없다. 자녀가 중고교에 다니는 40대 맞벌이 가정 비율이 절반(52.1%)을 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가 모두 일터로 나서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정 내 안전장치를 버리는 것과 같다. 외벌이 가정은 아이가 아프더라도 별도로 간병인을 고용하지 않고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다. 이처럼 외벌이 가정에서 소득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유사시 가정을 구원하는 만능보험증서 구실을 한다. 반면, 맞벌이 가정은 이런 안전장치가 없다.

    하버드대 법대교수이자 미국의회 파산조사위원회 고문을 지낸 엘리자베스 워런은 저서 ‘맞벌이의 함정’에서 맞벌이와 소비자 파산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최악의 재정난에 빠진 사람은 대부분 ‘자녀를 가진 맞벌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파산자 대부분은 자녀의 ‘성공’과 ‘안전’을 위해 좋은 학군에 집을 사려고 무리하게 대출받았다가 부채를 갚지 못한 사람이었다. 부부 두 사람의 소득에 맞게 대출 원리금 상환 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에 둘 중 한 명이라도 갑자기 소득이 없어지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한 채 파산에 이르는 것이다.

    반드시 부부가 함께 재무관리를

    왜 둘이 버는데도 쪼들리며 살까?
    맞벌이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부부 중 한 명의 소득은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위험에 대비해 저축해야 한다. 만약 자녀 교육과 대출 원리금 상환 때문에 저축이 여의치 않다면 차선책으로 보험을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정기보험이다. 자녀의 교육 기간이나 대출 상환 기간에 맞춰 가입하면 된다. 정기보험은 종신보험에 비해 보험료가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둘째, 재무관리는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맞벌이 부부는 각자 독립적으로 재무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부부라고 하지만 자기가 번 돈을 배우자에게 맡기는 것이 싫은 까닭이다. 이 경우 중복되거나 비효율적인 자산관리가 되기 쉽다. 예를 들어, 남편은 금리 6%짜리 신용대출을 받았는데 아내는 3%짜리 적금에 가입한 경우다. 가계 전체를 놓고 보면 금리 6% 자금을 빌려 3% 적금을 붓는 셈이다. 따라서 부부간 재정을 통합해 관리하지는 않더라도 재무계획만큼은 부부가 함께 짤 필요가 있다.

    셋째, 교육비 지출 계획은 자녀와 함께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 전문가들은 자녀가 6개월 이상 같은 학원에 다니면 매너리즘에 빠져 공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한 번 수강한 학원이라고 계속 다닐 것이 아니라, 자녀와 정기적으로 상담해 계속 다닐지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교육비 예산을 수립한 다음 그 범위 안에서 지출해야 한다. 주변에서 좋다는 말만 듣고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다 보면, 아이는 아이대로 지치고 돈은 돈대로 낭비하기 때문이다.

    왜 둘이 버는데도 쪼들리며 살까?
    마지막으로 부부 노후준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녀가 부모 품을 떠나면 결국 부부만 남는다. 부모가 자식에게 올인했다고, 자식 또한 부모에게 그렇게 해주길 바랄 수는 없다. 다행히 맞벌이 가정은 부부 모두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잘만 활용하면 외벌이 가정에 비해 노후준비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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