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8

2011.12.26

김정은과 평양 흔들 최대 위협 세력은 누구냐

‘고난의 행군’ 사생아 지역토호와 평양의 갈등이 가장 큰 불안 요인

  •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dpblue@kinu.or.kr

    입력2011-12-26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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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과 평양 흔들 최대 위협 세력은 누구냐

    2009년 4월 촬영한 북한 양강도 혜산의 마을 풍경.

    2009년 1월부터 시작된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 중앙권력뿐 아니라 지방권력 엘리트까지 대대적으로 교체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함께 2010년 9월부터는 김정은의 주도로 1년이 넘도록 중국 접경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비사(비사회주의 현상)’검열을 진행했다. 아마도 접경지역 주민은 대부분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존재를 이때 처음 실감했을 것이다. 2010년 9월 공식 무대에 등장한 이래 김정은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책임을 지면서 실질적으로 진행한 일은 당시의 검열이 유일하다.

    이제 막 전면에 등장한 김정은에게 맡겨진 핵심 업무가 왜 하필 접경지역에 대한 대대적 비사검열이었을까. 어쩌면 김정은 본인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모두 평양의 권력 엘리트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만큼이나 지방, 특히 접경지역의 어지러운 상황을 평정하는 게 후계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첩경이라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앙에서 벌어지는 기관 간 혹은 엘리트 간 갈등은 기득권자 사이의 내부다툼이지만, 정권과 주민 혹은 중앙과 지방 간 갈등은 기득권 계층과 소외계층 사이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판 관경(官經)유착 ‘알쌈’

    사실 이러한 중앙과 지방의 갈등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미 1990년대부터 가시적으로 표출됐다. 1990년대 경제 붕괴에 따라 중앙재정은 피폐해졌고, 그에 따라 북한의 거의 모든 당·정 기관과 간부들은 ‘자력갱생’하도록 권고받거나 방임됐다. 자력갱생이란 쉽게 말해 기관이나 간부가 자기에게 주어진 공적 특권을 남용해 스스로 운영자금과 월급을 벌어 생존하라는 뜻이다. 김정일 위원장을 포함한 상부에 대한 상납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각종·각급 공공기관이 장사판에 뛰어들었고, 간부는 부패를 본업으로 삼아 생존하는 구조가 정착했다. 이것이 경제난에도 북한체제가 무너지지 않은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문제는 이러한 메커니즘이 정착되면서 평양 수뇌부가 원치 않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중앙 권력기관과 고위간부들은 직접 시야에 두고 통제할 수 있었지만, 지방기관과 간부까지는 능력이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지방 곳곳에서는 부패한 간부가 시장 세력과 결탁했고, 이들은 권력과 재부를 교환하며 서로 감싸주고 보호하면서 이득을 챙기는 상호 공생의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갔다. 주민들이 흔히 ‘알쌈’이라 부르는 북한판 관경(官經)유착 관계의 등장이다. 드러난 몇몇 사건을 분석해보면, ‘알쌈’은 하나의 군이나 시에서 당과 행정의 거의 모든 간부를 연루시키는 형태로 발전하기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지방 곳곳에서 중앙으로부터 비교적 독립적인 토호 세력이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기는 접경지역에서 온다

    김정은과 평양 흔들 최대 위협 세력은 누구냐

    2011년 7월 압록강 유람선에서 촬영한 신의주 지역 북한 주민들.

    김정일 위원장은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는 것을 오랜 기간 묵인해왔다. 중앙재정의 붕괴 속에서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과도하게 불거지거나 정치적으로 필요한 경우를 골라 본보기 식으로 개입했을 뿐이다. 1996년 함경북도 청진에 주둔했던 6군단이 고위 장교들의 상업행위 개입 및 비리사건과 관련해 해체됐다. 1998년 8월에는 황해북도 송림제철소 폭동 무력진압 사건이 있었다. 2000년에는 보위사령부의 비사검열로 양강도 혜산시의 당정기구가 해체됐다. 당시 국경도시 혜산은 ‘고난의 행군’ 와중에도 중국과의 무역이 확대된 덕택에 북한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2007년에는 거의 한 해 내내 전국 규모의 강력한 비사검열이 진행됐다. 2002년 시장 확대조치 이후의 ‘여독’을 청산한다는 명분하에 처형 바람도 불었다. 평안북도 문덕군의 당정체계가 해체되고 군당책임비서 등 여러 명의 연루자가 공개 총살됐다. 평남 순천의 기업가 박기원, 함북 청진의 상인 이홍춘, 함북 연사군의 외화벌이 책임자도 공개 처형됐다. 2008년 초반에는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직접 세 달 동안 신의주 등 국경지역에 내려가 무역회사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검열을 진행했다.

    이어 2010년 9월부터는 앞서 언급한 대로 후계자 김정은의 주도하에 중국 접경지역에 대한 비사검열이 1년 넘게 진행됐다. 이 비사검열은 그 기간이나 횟수, 강도, 참여기관의 규모 등에서 유례가 없는 수준이었다. 원래 민간 검열기관 구실을 하는 중앙당과 검찰소, 인민보안부, 국가안전보위부뿐 아니라, 군 경찰에 해당하는 보위사령부와 김정일 경호기관인 호위사령부도 참여했다. 마약, 탈북, 간부 비리가 주요 대상이던 검열의 와중에 평안북도 도당이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러한 중앙과 지방의 갈등양상이 김정은 시대에도 크게 개선될 수 없다는 점이다. 먼저 중앙권력이 지방에 대해, 특히 접경지역에 대해 선택적인 공격을 가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하므로, 평양 시각에서 볼 때 지방에서 이어지는 관경유착 토호 발호와 마약, 탈북, 외부와의 통신 등 접경지역 문제는 더욱 위협적으로 인식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놓고 보면 김정은 시대에 북한 체제의 정치적 불안정은 현존 체제의 기득권층인 중앙 엘리트 내부 분열보다 정권 대 주민 사이의 갈등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고착화된 빈부격차와 노골화된 평양 우대 혹은 지방 차별 정책이 체제 불안의 배경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요 같은 불안요인도 평양이 아니라 접경지역 도시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의 상태가 이어질 경우 지역 도시, 특히 접경지역 도시는 평양과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될 수도 있다. 부와 권력이 집중한 평양에는 자본주의 국가의 도시 중산층이 향유하는 각종 시설과 소비 기회가 점점 더 증가할 테고, 도시의 품격도 높아질 것이다. 반면 지방은 탈공업화와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며 사실상 중국 위안화가 지배하는 경제로 전락할 수도 있다. 빈곤과 마약, 성매매와 부랑자 증가, 부정부패, 간부의 주민수탈 같은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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