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7

2011.12.19

“내가 눈감기 전에 일본의 사과 꼭 받아낼 것”

위안부 피해자 ‘수요집회’1000회… 숭고한 정신과 역사 ‘평화비’에 새겨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s.com

    입력2011-12-19 10:3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내가 눈감기 전에 일본의 사과 꼭 받아낼 것”

    12월 14일 ‘수요집회’에 참석한 시민들.

    ‘미안하다’ ‘잘못했다’ 말 한마디 하기가 그리 어려운 걸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가 1000회를 맞았다. 단일 사안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계속한 집회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긴 세월 한결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수요일을 맞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간 한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 일본군 위안부 234명 중 171명이 고인이 됐다(밝혀지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숫자는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1000번째 수요집회를 하루 앞둔 12월 13일에도 또 한 분이 세상을 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눈감는 그날까지 일본의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침묵’이다. 남은 63명의 위안부 할머니는 시간이 얼마 없다고 애끓는 목소리로 호소한다. ‘내가 눈감기 전에….’ 눈감기 전에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고 싶다는, 전쟁 악몽에서 벗어나 평화가 깃든 세상을 보고 싶다는 그들의 낮은 목소리는 여전히 계속된다.

    12월 14일 아침부터 찌뿌드드하던 하늘이 눈물을 터뜨렸다. 일본대사관(서울 종로구 중학동) 앞 평화로에도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차가운 날씨에도 1000번째 수요집회에 참여하려 대오에 합류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만 갔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부터 교복에 책가방을 메고 온 여고생, 그리고 백발성성한 노인, 노란 머리 외국인까지 있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데 뜻을 같이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았다.

    부축을 받지 않고는 거동조차 힘들어진 위안부 할머니들도 궂은 날씨를 마다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집회에 참석한 길원옥, 김복동, 박옥선, 김순옥, 강일출 5명의 위안부 피해자 중 단상에 오른 김복동(86) 할머니는 “청년들은 강제 징용으로, 학도병으로, 소녀들은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전쟁터에 끌려갔다. 백발 늙은이들의 아우성을 이명박 대통령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소극적인 대처에 호소하는 한편, “일본 정부에 고하라. 일본은 늙은이들이 다 죽기 전에 하루빨리 사죄하라고. 알겠는가, 대사!”라고 일본대사관을 향해 외쳤다. 등은 굽고, 어깨는 한없이 작았지만 일생을 고통 속에 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싸워온 그들의 모습은 진정한 투사였다. 할머니의 외침과 함께 굵어지던 빗방울도 잦아들었다. 하지만 일본대사관은 여전히 굳게 문을 닫은 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20년간 집회… 63명 할머니만 남아

    이날 하얀 저고리 까만 치마를 입은 소녀가 일본대사관을 향해 앉아 있는 모습을 담은 ‘평화비’가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뜻을 담아 십시일반 마련한 성금으로 건립한 동상이다. 평화비에는 한글과 영어, 일본어로 ‘1992년 1월 8일부터 이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가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우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지금껏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에 침묵과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일본은 이례적으로 이 평화비 건립을 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65년에 맺은 한일국교정상회담에서 청구권 협정을 통해 해결했으니 기념비를 철거하라는 것이었다. 1000회 수요집회의 사회를 맡은 배우 권해효 씨는 “평화비는 아픔만이 아닌 평화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담았다”고 의미를 설명하며 1000회까지 오지 말았어야 할 수요집회에 참석한 소감을 “1000회인 오늘이 기쁜 날인지, 슬픈 날인지, 답답한 날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는 “분명한 사실은 부끄러운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결심하고 20년을 보낸 이 자리가 뜨겁다는 것”이라고 덧붙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1000회 수요집회에는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 정동영 민주당 의원, 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등 정치권 인사와 배우 김여진, ‘나는 꼼수다’의 정봉주 전 의원도 동참했다. 1992년 1월 수요집회의 시작을 함께했던 이정희 대표는 “당시만 해도 20년 가까이 수요집회를 계속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감회를 밝히며 “일본이 여전히 무시하고 외면하는 동안 꿋꿋이 싸워온 할머님들과 시민 여러분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책임회피 한·일 정부엔 부끄러운 날

    “내가 눈감기 전에 일본의 사과 꼭 받아낼 것”
    무대 발언은 경기 운천고 이다미 양에게로 이어졌다. 그는 ‘초등학생의 86%, 중학생의 63%가 위안부를 모른다’는 통계치를 인용해 한국 역사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고 “참석자 모두 위안부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김여진은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배우들과 함께 ‘이브앤슬러’의 시를 낭송했다. 이브앤슬러가 직접 위안부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지은 시의 내용은 정신적 피해와 육체적 고통만을 남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생생히 전하고 있었다. 담담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수요집회를 이끌어온 할머니들은 시를 낭송하자 눈물을 보였다. 참석자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행사장 한쪽에는 빨간 종이꽃을 일일이 손으로 접어 만든 ‘수요시위 1000회’ 현수막을 세웠다. 경기 양서고 동아리 ‘햇담’ 학생들이 만든 것이다. 햇담은 700회 수요집회와 위안부 문제 관련 특별수업을 계기로 결성된 봉사 동아리로, 매주 토요일 ‘나눔의 집’을 방문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말벗이 돼드리고 역사관을 방문하는 이들이게 안내 자원봉사 등을 하고 있다. 방학 때는 중학생 대상의 1박2일 캠프 ‘피스 로드(Peace Road)’를 운영해 위안부 문제를 알린다. 이 학교 1학년 홍정수 양은 “햇담이라는 동아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면서 ‘일제강점기에 위안부가 있었다’는 정도의 교과 내용만으로는 역사 인식을 제대로 갖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는 “1000회가 되도록 위안부 피해자를 방치하고 책임을 회피한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는 오늘이 부끄러운 날이겠지만 할머니들에게는 승리의 역사”라고 평했다. 그의 말처럼 1000회라는 숫자는 완성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 수요집회는 앞으로 1001회, 1002회 계속될 것이다. 이 땅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세계인의 평화염원을 담은 수요집회는 전쟁이 남긴 무한한 상처를 회복하려는 작은 첫 단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