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5

2011.12.05

소통에 목마른 사회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1-12-02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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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아이가 웁니다. 왜 우느냐고 물어도 울기만 할 뿐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눈길은 자연스럽게 큰아이에게로 향합니다. “너 또 동생 때렸지?” 몇 번의 경험이 있던 터라 큰아이가 함께 놀다 동생을 때렸으리라 지레짐작합니다. 큰아이는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작은아이를 달래려 큰아이를 야단칩니다. “동생을 울리면 너도 혼난다”고 으름장도 놓습니다. “안 때렸다”고 항변하는 큰아이의 눈에 이슬이 맺힙니다. 어느새 온 집 안이 울음바다가 됩니다. 이쯤 되면 집에 머무는 게 고통입니다.

    기분 전환도 할 겸 산책을 가자고 합니다. 아이들도 울음을 그치고 따라나섭니다. 한참을 걷다 큰아이에게 다시 묻습니다. “너 동생 진짜 안 때렸어?” “응. 뛰다가 의자에 걸려 아파서 운 거야.” 큰아이가 대답합니다. 작은아이에게 묻습니다. “진짜 의자에 걸려 운 거야?” “응.” 큰아이에게 말합니다. “아까 얘기하지 그랬어.” “그때는 아빠가 내 얘기를 들으려고 안 했잖아.” 누명을 씌웠다는 생각에 큰아이에게 미안해집니다. 말없이 큰아이를 안아줍니다. ‘아빠가 죄 없는 너를 혼내서 미안하다’고 속으로 사과합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오해가 싹틉니다. 오해가 쌓이면 불신으로 이어지고, 심하면 상대를 혐오하게 됩니다. 오해 단계에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이후 나라 전체가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합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시위대는 시위대대로. 이명박 정부 초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을 연상시킵니다. 불신이 증폭되고 정부와 국민 간 갈등이 이어지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소통에 목마른 사회
    일차적으로 정부가 그동안 국민과의 소통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들을 만합니다. 그렇지만 ‘소통’은 어느 일방이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자기주장만 고수하지 않는 태도가 전제돼야 합니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괴담’만 생산하는 것은 소통을 원하는 태도가 아닐 겁니다. 주장과 주장이 부딪친 서울 한복판에는 말없이 물대포만 덩그러니 놓였습니다. 참 쓸쓸한 연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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