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3

2011.11.21

점입가경‘LED조명’ 갈등

중소기업 적합 지정에 대기업 강력 반발…LED산업포럼도 좌초 위기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11-21 0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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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입가경‘LED조명’ 갈등

    전남 나주시 영산강 죽산보의 LED조명이 만든 야경.

    “지금껏 재벌그룹이 램프를 가지고 아귀다툼을 벌인 일은 없었다.”

    37년간 조명산업 외길을 걸어온 노(老)경영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중소기업의 먹을거리에까지 손을 뻗치면서 여론까지 호도하는 대기업의 행태에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11월 14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협중앙회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강영식 한국조명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한국 조명산업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이건 아니다”라며 “양측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 이사장이 목소리를 높였던 이유는 발광다이오드(Light Emitting Diode·이하 LED)조명 때문이다. LED조명은 종래 광원에 비해 소형인 데다 가볍고, 전기에너지를 빛에너지로 바꾸는 전력 효율이 좋아 차세대 광원으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초기 LED조명 산업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전 세계 LED조명 시장이 연평균 50%의 고성장을 구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삼성, LG 등 대기업이 앞다퉈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대기업은 가격 후려치기 공세 등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을 서슴지 않아 중소기업의 반발을 샀다. 한 예로, 중소 조명업체인 A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지하주차장 일반형광등 조명을 LED 형광등으로 교체하기로 하면서 500만 원에 계약을 맺었다. LED 형광등 1개 단가를 7만 원 남짓으로 하고 거기에 얼마간의 이윤을 붙인 금액이었다. 하지만 대기업 B사가 에이전트를 통해 개당 5만 원에 해주겠다고 하면서 상황은 꼬이기 시작했다. 이 업체는 갖은 방법을 찾아봤지만 도저히 그 가격으로는 이윤을 남길 수 없어 계약을 포기해야 했다.

    이렇듯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이 끊이지 않자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성장위)는 11월 4일 LED조명 품목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했다. 동반성장위의 결정에 따르면, 재벌기업은 칩, 패키지 등 광원 부분과 함께 벌브형 LED, MR(할로겐 가스를 사용한 램프), PAR(아르곤가스를 사용한 램프) 등 3개 품목에 한해 민간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공공기관이 구매하는 시장에는 참여할 수 없다. LED조명 산업에서 사실상 중소기업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대기업 “국내 시장 다 내줄 판”

    그러자 대기업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공공부문 시장 사업 전면 철수 조치를 내리면서 향후 일반 형광등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직관형 LED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한 것은 사실상 대기업이 관련 사업을 접으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는 주장이다. 당장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많은 대기업이 LED조명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선정하고 많은 투자를 진행하는데, (LED조명의) 중소기업 업종 지정이 산업 발전을 크게 저해할 수 있다”며 우려의 반응을 보였다.

    해당 기업 역시 공식적으로는 동반성장위의 조치에 말을 아끼면서도 불편한 속내를 내보였다.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면 국내 시장에서 체력을 길러야 하는데 LED조명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공부문 시장 사업 전면 철수’ 조치는 너무하다는 것. 자칫 해외 진출은커녕 GE, 필립스, 오스람 같은 글로벌 외국기업에 국내 시장을 내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요즘은 광원부터 조명기구까지 수직 계열화를 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동반성장위 결정으로 3년간 쉬어버리면 세계 시장은 물론 국내 시장까지 이들 업체에 전부 내주고 만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중소기업 측은 “전혀 근거 없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동반성장위가 민간시장의 단서조항에서 ‘대기업이 자사와 계열사 수용 물량을 자사 제품으로 채워넣을 수 있도록 틈새를 열어둔 것’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다.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시장에서 대기업이 제조사로부터 직접 구매하는 완제품 비중을 30% 이하로 제한하는 ‘MRO 동반성장 가이드라인’에 위배된다는 설명.

    노시청 한국전등기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국내 시장을 외국계 기업이 장악하는 일이 정말 우려스럽다면 지금부터라도 대기업이 LED광원 분야에서 집중 투자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외국계 기업은 국내 중소기업에 광원 등 모듈을 제공해 OEM 생산을 한다. 국내 기업이 광원을 해외에 의존하다 보니 국내 LED광원의 기술경쟁력은 해외 선도업체 대비 70~80% 수준에 그친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기업이 정말 투자가 필요한 광원 부분은 등한시하고 오히려 LED모듈 같은 패키징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해외에서 광원을 수입한 뒤 국내에서 조립해 판매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점입가경‘LED조명’ 갈등

    LG전자의 가정용 LED조명. 대기업이 LED조명 제품을 앞다퉈 출시하며 시장진입에 박차를 가하자 중소기업과의 갈등이 커졌다(왼쪽). 동반성장위원회는 9월 27일 중소기업 적합업종 1차 선정 품목을 발표했다.

    중소기업 “근거 없이 왜곡 마라”

    업계 관계자들은 동반성장위가 직관형 LED를 다품종 소량생산 품목으로 결정한 것에 반발하는 대기업의 주장도 허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일반 형광등을 대체하는 교체형의 경우, 크기로 따지면 큰 것과 작은 것 두 종류지만, 색깔과 와트 수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반 조명회사에서 직관형 LED를 생산할 때 그 가짓수가 적게는 10개 안팎에서 많게는 60개가 넘는 실정이다.

    하물며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야 하는 직관형 LED는 필연적으로 주문자 맞춤형으로 소량 생산할 수밖에 없다. 은희문 한국LED조명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학자들은 한 개 아이템을 연간 300만 개 이상 생산해야 양산체제를 갖췄다고 평가한다”면서 “직관형 LED는 지난 3년간 일본에 수출한 것이 5000개에 지나지 않는데, 어떻게 소품종 대량생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동반성장위의 LED조명 산업에 대한 권고는 시행 기간이 권고일로부터 3년이다. 하지만 동반성장위의 권고는 법적 강제력이 없어 위반 시 벌금이나 과징금 부과가 없다. 이에 분위기를 반전하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여론에 호소하는 홍보전이 치열하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 LED조명 산업과 LED산업을 혼동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LED조명 산업은 LED산업의 한 종류로, 국내 LED조명 산업 규모는 4580억 원 정도다. 전체 LED산업에서 5% 남짓을 차지할 뿐이다. 은희문 이사장은 “대기업이 LED조명 산업에 투자만 해놓고 철수해야 하는 피해자인 양 여론을 호도하는데, 실질적으로 이 분야에 투자를 주도해온 것은 중소기업이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대기업이 정말 LED조명 산업에 투자했는지 되돌아봤으면 한다. 국내 중소기업을 시녀처럼 부리면서 OED, OEM 방식으로 생산해 제품을 내놓지 않았는가. 동반성장위의 결정으로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하는데 과연 철수할 시설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다.”

    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대기업, 중소기업, 학계 및 연구소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해 LED 산업의 발전을 모색하려 했던 ‘LED산업포럼’도 좌초위기에 놓였다. 동반성장위 발표 직후 LED산업포럼이 동반성장위 결정을 비판하며 관련 안을 유보할 것을 요구하자, 중소기업 쪽에서 “대기업 편향 주장을 하는 저의가 의심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중소기업 측에서 포럼 탈퇴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LED조명을 둘러싼 양측의 대립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점입가경‘LED조명’ 갈등

    LED조명이 환상적인 경관을 선사하는 부산 센텀시티 영화의 전당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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