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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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권 직무유기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1-11-04 17: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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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가 자유무역협정(FTA) 합의 때문에 실질적으로 가동이 전면 중단됐습니다. 여당은 어떻게든 연내에 처리하려 하고, 야당은 내년 총선 이후 19대 국회의원에게 미루려 합니다. 온 언론이 FTA만 주목하다 보니 국민은 국회의원이 지금 논의해야 할 법안이 그것밖에 없는 줄 압니다. 하지만 정말 서민에게 필요할지도 모를 법안 수천 건이 국회 사물함 속에서 잠자고 있다면? 놀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국회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 의안정보 통계에 따르면, 2011년 11월 3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7316건에 달합니다. 법안 제출건수 대비 본회의를 통과한 비율로 살펴보면, 18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 가결률은 전체 45%에 불과하죠. 이 가운데 정부 제출 법안 가결률은 70%, 의원 발의 법안 가결률은 41.5%에 그쳤습니다.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면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집니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1만1354건 가운데 정작 자신들이 발의해놓고도 처리하지 않아 계류 중인 법안만 6641건입니다.

    이제 18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일이 8개월 남짓 남았습니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어느 정도 통과할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 국회 행태로 보면 내년 6월까지 얼마나 많은 법안이 올라갈지 얼추 답이 나옵니다. 더욱이 해가 바뀌면 국회의원들은 총선 준비로 의사당을 비우기 일쑤일 겁니다. 정말 더 큰 문제는 이런 기조로 나가면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인 7316건의 법안 가운데 대부분이 18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운명에 놓인다는 점입니다.

    입법권 직무유기
    ‘고비용 저효율.’ 국회를 비판할 때 흔히 등장하는 말입니다. 국회가 욕을 얻어먹는 이유 가운데 이런 비효율적 입법행위도 한몫합니다.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명시합니다. 헌법 조항대로라면 국회가 정쟁을 일삼고, 걸핏하면 상임위원회나 본회의를 보이콧하는 행태는 엄밀히 따져 ‘직무유기’나 마찬가집니다. 오죽하면 국회의원 세비를 의정활동 정도에 따라 차등 지급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겠습니까. 국회의원은 장관, 대통령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정거장이 아닙니다. 입법권을 가진 헌법기관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할 때 국민과 유권자가 더 큰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국회의원‘님’들은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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