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8

2011.10.17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10-14 1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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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싱가포르에 출장을 다녀왔다. 직항을 타지 않아 베트남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자정이 다 돼서야 비행기에 올랐다. 베트남에서 인천공항까지는 4시간 반 남짓 걸리기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아침이겠구나’ 생각하며 서둘러 눈을 붙였다.

    선잠이 들었을까, 갑자기 아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한 아이가 울기 시작하자 주위에 있는 모든 아이가 마치 합창하듯 울기 시작했다. 문득 비행기에 아이가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놀랍게도 갓난아기와 단 둘이서 비행기에 탄 여성이 어림잡아도 열 명은 넘어 보였다.

    업무상 베트남을 자주 오간다는 옆자리 승객이 “결혼이민을 한 베트남 여성이 한국에서 낳은 애를 데리고 친정을 오가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고 보니 서툰 한국말로 승무원에게 말을 건네고 아이를 달래는 모습이 영락없는 우리 어머니 모습이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한국과 베트남의 가교 구실을 하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봤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쉽지 않아 보이는 현실에 남모를 한숨이 나왔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로부터 백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호감의 대상이지만, 동남아시아 출신 어머니를 둔 아이는 따돌림 당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재혼 이주여성이 현지에서 낳아 데려온 자녀를 일컫는 ‘제2의 코시안’까지 고려한다면 고민의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이들도 엄연한 한국인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말한 다문화가정 자원봉사자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두 달 전 베트남국립정치행정연구원 응오 티 응옥 안 박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베트남 여성의 결혼이민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다문화가정의 가정폭력 문제 등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 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의 2세 문제를 본격적으로 의제화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7세 때 한인 고아로 프랑스에 입양된 장 뱅상 플라세 씨는 프랑스 상원의원이 됐다. 인종이 전혀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를 활짝 열어놓는 프랑스처럼 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차별받지 않고 당당한 한국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어머니 품에서 잠든 아이가 훗날 좌절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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