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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길의 놀라운 편집의 힘

나누고 쪼개고…이분법은 미몽의 함정

  •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나누고 쪼개고…이분법은 미몽의 함정

정치의 계절로 가는 환절기인가. 낡은 이분법이 판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회의원 총선거,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지니 한국 사회에 이분법으로 판을 쪼개는 담론이 넘쳐난다. 진보와 보수, 우파와 좌파, 수구꼴통과 친북좌익, 통일과 반통일, 시장과 복지, 자본과 노동, 성장과 분배, 재벌과 착취, 착한 ○○과 나쁜 ○○, 정규직과 비정규직, 부자와 서민 등 이분법적 구분 논리는 특히 선거철에 잘 먹힌다. ‘안정이냐 혼란이냐’ ‘민주냐 독재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정치 구호가 유행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양자택일 논법은 너그러운 태평성대보다 절체절명의 위기 때 성행한다.

이분법은 상대방을 악으로 몰고 자신을 지고지선의 존재로 자처한다. 그와 동시에 제3자에게 악의 세력과 야합할지, 착한 우리 진영에 협조할지를 다그친다. 이분법은 상황을 단도직입적으로 구분하니 속 시원하게 다가온다. 당장 내게 이익을 줄 것 같은 포퓰리즘 공약은 달콤하기만 하다. 선과 악, 친구와 적, 천사와 악마, 상식과 몰상식, 양심과 비양심, 순수와 타락, 원칙과 변절로 나누니 내 편과 네 편이 분명해진다. 이해가 쉽고 헷갈리지 않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상대주의는 역지사지하느라 헤아리기 힘겹고, 절대주의는 칼로 무 자르듯 시시비비가 분명하니 쉽게 혹한다.

이분법은 이념적 대의명분에서 우위를 점한다. 누가 그 지고지순한 개념 앞에 이의를 달 것인가. 모두를 위한 모두의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니 아름답지 아니한가. 추상적 어휘는 듣기엔 참 좋다. 똑 부러진 진영 나누기는 동시에 물리쳐야 할 적을 상정한다. 아름다운 대의명분에 대드는 진영을 악마적 캐릭터로 몰아붙인다.

이분법 주창자는 선전선동으로 먹고사는 정치인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이분법적 흑백 나누기가 정치적 흥행에서 최고 무기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들의 이분법은 세상을 위한 분류법이 아니라, 제 잇속을 챙기려는 혹세무민의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상황을 둘로 나눠 단순화하고 선과 악의 프레임을 드리운다. 달콤한 복지를 약속하지만 그 꿈같은 복지세상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예산은 책임지지 않는다. ‘소는 누가 키우나’에 대해서는 얼버무리는 것이다. 세상만사는 누군가 땀을 흘려야 돌아간다. 목소리만 돋우는 독설가는 나라를 움직이는 동력장치인 ‘성장엔진’의 안정적 작동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선동자가 말하는 국고(國庫)는 언제나 현금으로 철철 넘쳐난다. 나라 빚은 다음 세대로 떠넘기면 된다. 오늘을 고발한다지만 내일을 위한 주도면밀한 설계도를 그릴 능력은 없다.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국민’ ‘서민대중’이란 단어는 입에 발린 소리다. 그 국민은 쥐꼬리 월급을 받을 때마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 하는 근로자고, 자녀교육비에 끙끙 앓는 학부모며, 치솟는 물가에 전전긍긍하는 소비자다. 더 깊이 파고들면 전전하는 청년실업자, 구조조정에 불안한 중년 가장, 노후생계비가 막막한 노인이다. 구체적 삶의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이들의 일상 앞에서 추상적인 이분법은 얼마나 요망하고 허망한가. 세상을 둘로 나눠 재단하는 이분법은 수상할 뿐이다. 추상적인 것은 무력하다.



다분법(多分法)에 따른 중간지대가 필요하다. 이분법은 대결이지만 다분법은 타협 조정이다. 흑과 백 사이에 드넓은 회색지대가 있어야 현실의 복잡함을 감당할 수 있다. 독선에 빠진 수직적 사고로는 현실의 디테일을 파악하지 못한다. 세상은 다층적으로 편집된 세계기 때문이다. 수천 년 역사가 축적된 세상은 요리조리 이모저모 각양각색 편집의 총체다. 좌파적 편견, 우파적 아집 하나로는 복잡다단한 세상을 이끌고 가지 못한다. 변화무쌍한 현실을 포용하며 고루한 것을 털어내고 역량을 재편성하려면 종합적 편집력이 먼저다. 대안 제시 능력과 돌파력을 갖춘 편집력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이분법은 미몽에 빠뜨리는 함정이다. 세상은 극단이 아니라 절충의 편집미학으로 작동한다는 이치를 알면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나누고 쪼개고…이분법은 미몽의 함정




주간동아 806호 (p65~65)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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