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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러 가스관 프로젝트 이미 通했나

‘북한 통과 리스크’ 관리 방안 靑 보고 완료…합의 성사 땐 한반도 정세 전환 신호탄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러 가스관 프로젝트 이미 通했나

러 가스관 프로젝트 이미 通했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연안의 루스키 섬에서 이뤄지고 있는 가스관 매립 공사 현장. 이곳에서는 내년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9월 15일 러시아 모스크바. 이날 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남북한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가스관 사업에 관해 러시아 측 파트너인 알렉세이 밀레르 가즈프롬 사장을 면담하고 사업 로드맵에 서명했다. 눈여겨볼 것은 같은 날 밀레르 사장이 김희영 북한 원유공업상과도 회담하고 가스관의 북한 통과 방안에 관해 실무 협상을 진행했다는 사실. 3국 대표가 한 테이블에 앉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인 3자 협상을 이미 시작한 셈이다.

이 무렵 청와대 당국자들 또한 사석에서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한껏 강조하고 나섰다. 북한 땅을 통과하는 가스관을 건설해 러시아 극동·시베리아 지역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2015년부터 30년 동안 연간 750만t씩 도입한다는 이른바 ‘PNG(가스관 천연가스) 프로젝트’다. 성사되면 한국은 싼값에 가스를 들여올 수 있고, 러시아 역시 경제적인 수출 방법을 얻게 되며, 북한은 연 1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통과 비용을 챙길 것이라는 ‘장밋빛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안보 당국 일각과 언론을 중심으로 이른바 ‘북한 통과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것.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가스관을 건설했다가 유사시 북한 당국이 이를 임의로 차단하거나 파괴하면 한국은 급격한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는 염려였다. 때마침 평양이 현대아산 대신 새로운 금강산 관광사업자를 선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힘을 얻기도 했다.

쏟아지는 우려에도 느긋한 청와대

하지만 청와대는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9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남·북·러 가스관 사업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는가 하면 방미 중이던 9월 23일에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회견에서 “경제·산업적 측면에서 남과 북, 러시아 모두가 동참하는 윈윈(win-win) 사업이 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힘을 실었다. 이 대통령은 1990년대 초 현대건설 회장 재직 시절 구(舊) 소련 정부와 가스관 사업과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주강수 사장은 당시 현대종합상사 임원으로 실무를 맡았다.



‘북한 통과 리스크’를 의식하지 않는 듯한 청와대의 행보는 과연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주간동아’는 7월 중순 이미 청와대가 실무부처로부터 이에 대한 대비 방안을 보고받은 사실을 복수의 안보 당국 고위관계자에게서 확인했다. 지식경제부와 가스공사가 함께 참여한 당시 보고는 외국에서의 선례를 통한 의무 강제나 국내 에너지 소비 패턴을 고려한 배분 포트폴리오 구성, 대안 운송수단 검토를 포함해 폭넓은 내용을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과 수송, 최종 사용에 이르기까지 단계마다 안정적인 활용을 유지할 로드맵을 그려놓은 셈이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에너지 공급시설이 국경을 통과할 경우 통과국의 의무를 규정한 국제 체제(regime)로, 1991년 발족한 ECT(Energy Charter Treaty·에너지헌장조약) 체제가 가장 대표적이다. 국가 간 에너지 거래와 투자, 통과의 제반 사항에 대해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이 협약은 원래 구 소련이나 동유럽 국가가 서유럽 국가의 자유로운 에너지 투자를 보장하려고 고안한 것이었지만, 현재는 중앙아시아나 중동국가까지 확대됐다.

ECT는 에너지 공급·투자·수송과 관련해 나라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나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스톡홀름 국제상사중재법원의 중재 가운데 하나를 택해 따르도록 규정했다. 중재절차를 거부하거나 그 결과에 불복할 경우 이후 무역거래나 대외결제에서 구조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북한은 ECT 가입국이 아니지만, 현재 정부 내부에서 논의 중인 방안은 ECT가 규정하는 통과국 의무사항을 참조해 남·북·러 사이의 계약에 반영하는 방식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임의로 가스관을 잠그거나 폐쇄하는 경우 ECT 체제가 규정하는 국제 중재절차의 힘을 빌려 손해배상을 받아낸다는 것. 특히 통과 계약에 서명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ICSID 같은 중재기구 협약에 가입하도록 한다면, 남측 기업의 자산을 북한 당국이 임의로 처분한 금강산 관광지 사건의 재발을 막는 부수적 효과도 노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러 세 차례 회의에 쏠린 눈

러 가스관 프로젝트 이미 通했나
관계기관의 청와대 보고에는 국내에서의 조치를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를 들어 북한을 통과해 들여온 PNG를 일반 가정으로 이어지는 공급시설로 연결하는 대신, 화력발전소 같은 기반시설로 잇는 방식이다. 북한이 가스를 끊어도 일반 가정이 에너지 공급 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는 일은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특히 여름에는 전력 수요가 느는 대신 가스 수요는 줄어드는 한국의 에너지 소비 패턴을 감안하면 이는 더욱 활용도가 높은 아이디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근본적으로는 가스를 공급하는 주체인 러시아에 강도 높은 공급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북한이 임의로 가스를 끊는 경우에도 LNG(액화천연가스) 형태로 선박을 이용해 어떻게든 정해진 양을 한국에 공급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안전보장에 대한 책임 자체를 러시아가 지도록 하는 것이다. 9월 2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주강수 사장은 “가스관을 차단하는 경우 PNG 가격으로 LNG를 대신 공급받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러시아 측이 ‘사할린-3’ 가스전과 연해주 지역의 천연가스액화기지를 수년 내 완성하면 선박을 이용해 가스를 들여오는 일 역시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유사시 PNG와 동일한 가격으로 공급한다는 조항만 계약에 반영하면 안전보장 문제는 완결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문제의 청와대 보고에서 관련 기관은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북한 통과 리스크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완벽한 안전보장 없이는 사업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러시아 측이 명확히 인식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는 한·러 혹은 북·러 사이의 양자 협상만 이뤄졌지만, 앞으로 진행할 3자 협상 과정에서는 앞서 언급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예정이라는 게 가스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세간의 우려와 달리 매우 낙관적인 기조인 셈이다.

주무기관이 이렇듯 긍정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는 사실은 가스관 프로젝트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가 매우 높은 수준임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 적잖은 우려가 있음에도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정세 전환이나 에너지 외교 성과 확보 차원에서 이 문제에 ‘다걸기’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과 러시아는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나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그에 앞서 10월 말 열리는 한·러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에서는 양측의 장관급 각료가 가스관 프로젝트와 관련해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과연 가스관 프로젝트는 이명박 정부 임기 말을 장식하는 최대의 성과물로 화려하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 이들 회의에 한반도는 물론 국제 사회가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주간동아 806호 (p50~51)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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