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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악, 신용등급 강등 … “총리 당장 짐 싸!”

이탈리아 국민 재정위기 불안감 확산 … 잇단 잡음 베를루스코니 퇴진 목소리

  •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악, 신용등급 강등 … “총리 당장 짐 싸!”

악, 신용등급 강등 … “총리 당장 짐 싸!”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이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 퇴진을 외치는 한 이탈리아 시민.

9월 14일 이탈리아 하원이 542억 유로(약 82조 원)에 달하는 고강도 재정 감축안을 승인했음에도, 9월 20일 신용평가 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이탈리아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강등했다. “경제성장 둔화와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로 부채 축소가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S·P는 또 이탈리아를 계속해서 ‘부정적 관찰 대상’에 올려놓아, 추가 등급 하락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탈리아 재정위기가 가져올 후폭풍은 지금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탈리아의 신용등급 강등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높은 부채 비율과 대외 수요 악화, 정부의 긴축정책, 공공 및 민간 부문의 조달비용 상승 압력은 커 가는데, 이를 극복할 정치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이 강등하면서 이번 재정 감축안에 대한 후속 조치가 필요해졌다. 또 이탈리아에 대출을 많이 해준 프랑스와 독일에까지 그 파장이 미쳐 유로존 전체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터져 나온다.

유로존 제3위의 경제대국 이탈리아가 재정위기에 몰린 이유는 8월의 금융시장 동요와 채권값 폭락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그 여파를 줄이기 위해 이탈리아 채권을 매입하는 대신, 이탈리아 정부에 2013년까지 대대적인 재정 감축을 통해 균형재정을 달성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이탈리아 하원이 재정 감축안을 승인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7월에 이어 추가된 감축안은 8월 12일 발표했던 당초 455억 유로(69조 원)에서 크게 늘어난 규모로, 수많은 논란 끝에 찬성 316표 대 반대 302표로 겨우 승인이 났다.

같은 시각 국회 앞 몬테치토리오 광장에서는 “베를루스코니는 당장 물러나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고, 시위대와 경찰의 격렬한 충돌로 로마 도심이 마비됐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재정 감축안의 하원 통과로 발등의 불을 끄고 정치생명을 연장해 한숨 돌리려 했지만, S·P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안팎에서 퇴임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언론은 재정 감축안을 ‘이탈리아의 피눈물’이라고 표현했다.

경제성장 둔화와 리더십 부재



이탈리아의 지난해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4.6%로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낮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공공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이탈리아 중앙은행(Banca d’Italia)에 따르면, 2011년 9월 현재 공공부채는 1조9120억 유로(2896조 원)로 6월보다 100억 유로 증가했다. 이탈리아의 공공부채 비율은 GDP의 120% 수준. 이는 유럽연합의 회원국 권고기준인 60% 이하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번 재정 감축안은 별 문제 없다”는 정부의 말만 반복해서 들어왔던 이탈리아 국민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밀라노 증시는 연일 폭락하고 장기 국채 BPT(Buoni Poliennali Del Tesoro) 이자율이 급등하면서 “독일 국채(분트)와의 스프레드(수익률 차이)가 기록적으로 400포인트까지 치솟는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계속됐다. 위기에 우왕좌왕한 정부는 이미 발표한 긴축정책조차 ‘한다, 안 한다’를 반복하면서 국민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재정위기가 커지고 있음에도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리더십은 보이지 않았다. 재정 감축안을 놓고 연정 내에서 불만과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자 그는 무려 4번이나 정책을 수정했다. 총리와 트레몬티 재무장관은 “부가가치세는 절대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소득이 9만 유로 이상인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한시적인 연대세(solidarity tax) 시행을 발표했다. 그러나 연대세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슬그머니 철회해버렸다. 여기에는 억대 연봉을 받는 이탈리아 프로축구 선수들도 한몫했다. “연대세는 계약에 없던 특별세이므로 소속 클럽이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세리에 A리그 시즌 개막일에 파업을 하는 소동까지 벌였다.

연정의 핵심 파트너인 북부동맹의 당수 움베르토 보시의 압력으로 연금 개혁도 흐지부지됐고, 소규모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통폐합안도 지자체 공무원의 거센 반대에 한발 후퇴했다. 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국경일을 폐지한다던 발표도 결국 백지화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정부의 결단력과 신속한 의회 승인을 촉구했다.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9월 3일 체르노비아에서 열린 경제포럼에서 “재정적자 감축 목표 달성이 이탈리아의 국가 신뢰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이자 유럽중앙은행 차기 총재로 선임된 마리오 드라기는 “유럽중앙은행이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재정위기 국가들의 국채를 무한정 매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탈리아 정부의 안일한 행동에 일침을 놓았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이처럼 재정 감축을 강력하게 이끌어나가지 못하는 데는 2013년에 치르는 총선에 대한 부담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정부는 지난봄 지방선거와 원전 부활 국민투표에서 완패하는 등 민심을 크게 잃었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며 2013년 총선까지 개혁을 미루려는 공산인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국제 금융시장의 불신이 커지고 국채 이자율이 다시 급등하자 화들짝 놀라며 유럽중앙은행의 옐로카드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연 30만 유로 이상의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3%의 연대세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것.

하지만 신설한 연대세는 상징적 대책일 뿐 세금 거두기 효과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힘들다는 평가도 나온다. 10만 유로 이상 소득 신고자는 전체 이탈리아 납세자의 약 1%에 불과하고, 그나마 30만 유로 이상 고소득자는 3만7000명 정도이기 때문이다. 루카 디 몬테제몰로 페라리(Ferrari) 회장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 나처럼 500만 유로 이상 재산을 보유한 거부들에게 부유세를 매기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는 “서민들 허리띠를 졸라매는 정책을 선택하고 정작 거부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 최고 부자는 바로 미디어 재벌인 베를루스코니 총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심심풀이 총리” 발언에 할 말 잃어

악, 신용등급 강등 … “총리 당장 짐 싸!”

눈덩이처럼 불어난 공공부채가 이탈리아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하원의 재정 감축안에 뿔난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엠마 마르체갈리아 이탈리아 전경련(Confindustria) 회장은 “정부의 재정 긴축안은 온통 세금 인상뿐이다.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은 하나도 없고 2012년 조세 부담률은 44.1%로 사상 최고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미 재정 감축안 여파로 서민들 지갑은 얇아지고 있다. 9월 17일부터 부가가치세 세율이 1% 오르면서 휘발유, 커피 같은 생활필수품 가격도 슬금슬금 오르는 상태. 다급해진 이탈리아 정부는 막대한 달러자산을 보유한 중국에 러브콜을 보내 이탈리아 채권 매입을 타진했지만 중국은 채권 매입에는 관심 없고 이탈리아의 국영기업 지분 매입에만 눈독을 들인다.

이탈리아 국민은 재정위기 극복의 가장 큰 걸림돌로 총리의 정치 리더십 부재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지지도는 사상 최저 수준이다. 9월 13일 실시한 여론조사 전문기관 IPR의 조사에 따르면, 총리의 지지도는 24%로 추락했다. 이런 와중에 그는 미성년자 성매매와 탈세 혐의 등으로 각종 재판에 계류 중이다. 최근엔 총리 사저에서 매춘부들과 벌인 문란한 사생활 내용이 공개돼 국민의 낯을 뜨겁게 만들었다. 또 “총리직은 남는 시간에나 하는 것”이라는 발언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탈리아 국민은 정치, 경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혼란스럽고 연일 터지는 베르루스코니 스캔들 탓에 피곤하다. 재정위기의 악몽에서 벗어나 깨끗한 손과 깨끗한 마음을 가진, 무엇보다도 신뢰도가 높은 새 총리가 등장하기를 기대하지만 ‘심심풀이’로 총리를 한다는 베를루스코니는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다. “이제 그만 집에 가라”는 국민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주간동아 805호 (p50~51)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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