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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으로 들어온 한 권

배움의 힘으로 500년 장기집권 역사를 썼다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배움의 힘으로 500년 장기집권 역사를 썼다

배움의 힘으로 500년 장기집권 역사를 썼다

도현신 지음/ 미다스북스/ 416쪽/ 2만3000원

그들은 보통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하루에 5시간에서 적게는 2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았다. 그 밖의 시간에는 일정에 맞춰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를 해야 했다. 고3 수험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던 그들은 바로 조선 왕자들이다. 500년간 조선이 이어진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 책 저자는 “조선을 이끌어가고 지탱한 근본적인 힘은 왕가의 특별한 교육에 있다”고 말한다.

조선 왕실의 치밀하고 빡빡한 교육 내용을 들여다보자. 먼저 왕위를 승계할 왕자가 태어나면 곧바로 보양청(輔養廳)을 설치, 유모를 빼고도 9~10명이 달라붙어 양육을 도왔다. 원자가 겨우 말을 시작한 2~3세쯤부터는 궁궐 예법에 맞는 몸가짐은 물론, 충효(忠孝)와 인의(仁義) 같은 단어를 들려줬다. 5세가 되면서부터는 보양청이 강학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매일 아침, 낮, 저녁 등 3번, 1회에 약 45분 동안 수업을 했다. ‘천자문’과 ‘소학’을 주로 가르쳤는데, 명종 이후에는 ‘동몽선습’과 ‘격몽요결’이 추가됐다.

원자가 세자로 책봉되면 서연(書筵), 즉 장차 왕이 될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경전을 배우고 익혀 지식과 교양을 다지는 작업이자, 인품과 도덕성을 겸비한 성군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일과이기도 했다. 많으면 24명, 적어도 18명의 스승이 세자를 가르쳤다. 서연에 참석한 세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물론, 한 달에 두 차례씩 일종의 시험인 회강(會講)을 치러야 했다. 세자를 가르치는 스승은 빈객(賓客)이 참석한 가운데 엄격한 시험을 통해 4단계로 세자를 평가했다. 또한 세자가 학습할 때는 항상 사관들이 함께 참석해 수업 태도를 철저히 기록했다. 세자가 한눈팔 수 없게 제도적 장치도 만들었다. 물론 앉아서 책만 파고든 것은 아니다. 임금과 궁궐의 웃어른에 대한 예절교육은 물론, 활쏘기, 말타기, 격구 등 건강 증진을 위한 체육 교육도 받았다. 한마디로 지덕체(智德體) 전인교육을 추구했던 것이다.

어려운 세자 시절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됐다고 해서 공부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신하들과 함께 경전과 역사를 익히고 시국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경연(經筵)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경연을 빼먹거나 게을리하는 왕은 연산군처럼 자질이 부족한 폭군으로 낙인찍혀 쫓겨나야 했다. 경연은 하루 4번 열렸는데 아침 경연은 조강, 낮은 주강, 저녁은 석강, 늦은 밤 경연은 야대라고 불렀다. 그러나 야대는 학문을 특별히 좋아하는 왕이 아니면 실시하기 어려웠다. 경연은 신하가 책의 한 구절을 읽은 후 뜻을 해석하고 논평을 달면, 왕이 질문하고 신하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경연에서는 당시 세상 돌아가는 모습 또는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의제에 올려 왕과 신하가 토론을 벌이거나 중요 국정을 결정하기도 했다. 경연은 태조 때 시작해 1907년까지 이어졌다. 25년 재위 기간 중 연평균 369.1회의 경연에 참가한 성종은 학문과 토론을 특별히 좋아했다.

책은 이 밖에 15세 이상 50세 이하의 남자 왕실 종친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던 종학(宗學)이라는 교육도 다룬다. 관직도 받지 못하고 과거시험도 볼 수 없었던 사실상 한량이었던 종친들은 종학에 나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의 힘은 현실을 바꾸고 미래를 바꾼다. 하물며 한 국가를 움직이는 사람에게 공부는 곧 정치 철학과 연결된다.



“조선 왕가의 교육은 전 세계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최상의 정치 교육이었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교육을 충실히 받음으로써 충과 효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의 정치 시스템을 움직였던 것이다. 그것이 500년간의 장기 집권을 이끌었던 본질적인 힘이다.”



주간동아 805호 (p76~76)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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