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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악마의 유혹 ‘사이버 도박’ “난 이렇게 파멸했다” 01

“호기심에 베팅하다 중독, 난 악마의 손에 걸렸다”

미혼남 A씨 경험담 “가산 탕진도 모자라, 주변 사람에 손 벌려”

“호기심에 베팅하다 중독, 난 악마의 손에 걸렸다”

어른들은 “술 마시고 행패 부리는 남자하고는 살아도 노름에 빠진 남자하고는 못 산다”고 했다. 술에서 깨면 정상인으로 돌아오지만, 노름에 미쳐 전답(田畓)에 집문서까지 저당 잡히고 종국에는 마누라까지 팔아먹었던 조상의 처절한 경험에서 나온 말이리라. 도박중독은 ‘끝장’ 볼 때까지 그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 특히 ‘접속’만으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사이버 도박은 편리한 접근성 탓에 한번 빠지면 웬만해선 헤어 나오기 힘들다. 일과시간에 사무실에서 억대 도박을 하다 쇠고랑을 찬 직장인 얘기가 결코 남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컴퓨터 앞에 앉은 당신 역시 사이버 도박의 위험에 노출돼 있긴 마찬가지다. ‘잠시 머리 좀 식힐까’라는 생각에, ‘혹 돈을 딸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 첫발을 들여놓았다가 경제적 손실은 물론, 가정 파탄에까지 이른 도박중독자의 사례를 꼼꼼히 읽어보라. 사이버 도박은 일단 시작하면 ‘딱 한 번만 더’라는 유혹에 쉽게 사로잡힐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끝장 보려다 인생 막장에 다다를 수 있는 사이버 도박의 위험을 피하는 길은 애당초 눈길조차 주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

악몽은 스팸 문자메시지 한 통에서 비롯했다. 사이버 도박장을 홍보하는 광고였다.

나는 39세 미혼 남성이다. 정신과병원에서 도박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어머니 명의로 된 서울 강남의 주상복합건물 지하에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호기심이 동해 문자메시지에 적힌 인터넷 주소에 접속했다. 축구 도박 사이트였다. 배당률이 높진 않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강팀에 베팅하면 마이너스 배당도 나왔다.

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을 좋아한다. 맛보기로 10만 원씩 베팅하면서 요령을 터득했다. 이후엔 경기당 100만 원씩 리버풀에 걸었다. 리버풀이 연거푸 두 번 이겼다. 1.2배, 1.4배 배당률이 나왔다. 20만 원, 40만 원씩 번 것이다.



본전 생각하다 늪에 빠져

“호기심에 베팅하다 중독, 난 악마의 손에 걸렸다”
욕심이 났다. 1000만 원을 걸어 1.4배 배당률이면 400만 원을 따는 것 아닌가. 그러나 리버풀이 연거푸 패했다. 오기가 생겼다. 약팀에 걸어 한 번에 만회하기로 전략을 바꿨다. 한 방에 복구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되돌아보니 미친 짓이었지만….

5000만 원 가까운 돈을 잃었다. 그만뒀어야 했는데, 본전 생각에 사이버 카지노에까지 발을 들여놓았다.

20대 초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학할 때 카지노에 드나든 적이 있다. 그때는 승률이 괜찮았다. 사이버 카지노는 오프라인 카지노와 똑같다. 실제 카지노에 있는 게임이 거의 다 있다. 테이블 게임을 할 때 딜러를 화면으로 보는 것만 다를 뿐.

슬롯머신부터 시작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다. 돈 먹는 하마 아닌가. 블랙잭 테이블로 옮겼다. 화면 속의 백인 여자가 예뻤다. 그렇게 시작한 블랙잭을 4개월 넘게 했다. 카지노 사이트를 몇 군데 옮겨 다니면서 돈을 잃었다.

사이버 도박은 담배보다 더 끊기 어렵다. 금단 현상이 심하다. 참다 참다 접속하면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샘솟는다. 설렌다.

그렇게 5억 원을 잃었다. 아우디 승용차도 팔았다. 친구에게서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100만 원씩, 100만 원씩. “급히 쓸 일이 좀 있는데, 펀드를 깨기가 좀 뭐해서”라고 둘러댔다.

사이버 도박장 운영자가 돈을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개인 정보를 파악해갔다. 판돈이 적어진 것을 보고 접근해온 듯하다. 돈을 실제로 빌린 것도 아니다. 사이버상에서만 충전했을 뿐. 선이자로 10%를 뗐다. 2000만 원 혹은 1000만 원씩 빌려 1억5000만 원을 더 잃었다.

돈을 갚으라는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죽이겠다”는 협박도 해왔다. 변호사와 만나 상의했다. 변호사가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부모님께 사실을 털어놓고 생활비를 받은 뒤 친지가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로 몸을 피했다.

도박중독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카지노에 들락거렸다. 돈이 떨어졌다. MTB동호회 후배에게 손을 벌렸다. “놀러왔는데 지갑을 잃어버렸다. 서울에 가는 대로 주겠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30만 원씩, 30만 원씩 빌려서 다 잃었다.

친구와 동호회 후배가 전화를 받지 않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친구 녀석 하나가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모두 들었단다. “○○한테 절대로 돈 빌려주지 마”라는 말과 함께.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돈을 떼인 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화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소문을 가장 많이 퍼뜨린 여자 후배에게는 부모님 돈으로 빚을 갚으면서 사과했다. “내 얘기는 하고 다니지 마”라는 말도 덧붙여.

도박중독에 빠진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인터넷 도박장 같은 곳엔 절대로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있는 곳이 카지노가 된다. 중독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주간동아 805호 (p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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