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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안철수 왠지 끌려”…중도는 변화 바람 원한다

침묵하는 다수 현실 정치에 실망… 새로운 인물 새 정치에 갈증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안철수 왠지 끌려”…중도는 변화 바람 원한다

“안철수 왠지 끌려”…중도는 변화 바람 원한다

9월 6일 오후 서울대 안철수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왼쪽)로의 서울시장 후보단일화 결정을 발표한 뒤 포옹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했다. 그렇지만 주권자로서 국민이 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이다. 만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투표권을 갖는 유권자지만, 그 권리는 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총선과 지방선거, 그리고 5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대통령선거에서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이자 현실이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짧게는 4년, 길게는 5년에 걸쳐 두고두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주권자 국민의 숙명이다. 이런 점에서 ‘투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권리 위에서 낮잠을 잔 유권자는 자신이 꿈꾸던 세상과는 다른 4년, 5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전과 다른 선택 일종의 경고

4, 5년에 한 번씩 유권자의 소임을 마친 국민은 다시 유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다음 선거 때까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침묵’으로 감내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다른 가치를 지닌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다수의 유권자는 체념한 채 다음 선거까지 침묵 모드로 일관한다. 그러다 입후보자들이 구애를 시작하는 이른바 ‘선거철’이 다가오면 침묵하던 민심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침묵을 깨고 자신의 호불호를 여론조사를 통해 적극 표출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10월에 있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50여 일 앞두고 정치권을 강타한 ‘안철수 열풍’은 가깝게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민심 향배를 보여줬지만, 멀리 보면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이어질 수 있는 민심의 바로미터 구실을 했다. 개인 안철수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안철수’라는 인물을 통해 투영됐다는 분석이 정론이다. 민심 풍향계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말도 만들어냈다. 유권자들이 내년 총선 및 대선을 앞두고 예전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지금까지 정당 지지율이나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 나타나지 않았던 ‘새 바람’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선거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중도층’을 시원(始原)으로 꼽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여당도, 야당도 아닌 무당파로 남아 있던 중도층이 안철수라는 새 인물을 만나 스파크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여기에 박근혜 대세론에 주눅 들어 마땅한 대안 후보를 찾지 못하던 야권 지지층까지 일시에 결합하면서 ‘안풍’이 거세게 불었다는 해석이 많다.



“대선 여론조사가 기존 인물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이 새롭게 대선주자로 떠오른 이후 새 인물에 대한 유권자들의 요구가 본격적으로 가시화하기 시작했죠. 안철수 현상도 새 인물에 대한 중도층 요구가 응집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코리아리서치센터 원성훈 이사는 “기존의 야권 대선후보보다 서울대 안철수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부상한 것은 야당 지지층은 물론, 중도 무당파까지 흡수했기에 가능했다”면서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요구가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反한나라당과 非민주당

9월 6~7일 ‘동아일보’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대선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야권후보 안철수’를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6.1%였다. 상대적으로 정파색이 옅은 20대(55.1%)와 30대(52.6%)에서는 전체 지지율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역별로도 지역색이 옅은 서울(38.7%)과 경기 인천(40.5%) 등 수도권에서 평균 지지율을 웃돌았다. 지역 규모별로는 대도시(39.1%)와 중소도시(37.1%)에서 높았으며, 직업별로는 학생(53.4%)과 화이트칼라(48.2%), 자영업(41%) 계층에서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대학 재학 이상의 고학력층에서 48.2%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도 특징이다. 이 같은 세부 항목별 지지율 결과는 평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크게 드러내지 않던 중도 성향의 유권자층이 ‘안철수 쏠림 현상’을 주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EAI) 여론분석센터 정한울 부소장은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상당 부분 존재함에도 민주당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보이콧과 연이어 터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후보 매수 의혹 등으로 중도층에서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했다”면서 “안철수 돌풍은 중도층의 반(反)한나라당, 비(非)민주당 여론이 핵심 기반임을 시사한다”고 풀이했다.

“중도층의 정당 지지율 변화를 살펴보면 한나라당 지지 성향의 중도층은 어느 정도 고정돼 있던 데 반해, 민주당을 지지하는 중도층은 들쭉날쭉했습니다. 변화가 컸던 민주당 지지 성향의 중도층이 안철수라는 인물을 만나 결집해 안철수 현상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전면적 무상급식 이슈를 앞세워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은 민주당은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 이른바 3무 무상복지시리즈를 앞세우며 좌편향 노선을 유지해왔다.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노선은 한동안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았지만 예산 부담과 증세 우려가 부각되면서 차츰 지지세가 약화됐다.

지지율 하락은 중도 성향 유권자층에서 특히 컸다. 그러다 지난 4·27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중산층’과 ‘중도층 역할론’을 앞세워 경기 분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한때 민주당에 대한 중도층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한미 FTA와 반값등록금 이슈 등에서 민주당이 또다시 우왕좌왕하자 한나라당 지지율에 뒤지기 시작했다.

정 부소장은 “민주당은 지지층 내에서도 요구하는 정책 방향이 갈라져 이념적 좌표를 설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서 “진보 지지층에서는 좌향좌 압력이 큰데 중도와 보수 지지층에서는 우향우 압력이 높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샌드위치 처지”라고 진단했다.

6월 동아시아연구원이 한국일보와 실시한 정치이념 조사를 보면, 이념 지형이 다른 지지층이 서로 다른 요구를 내세우는 민주당의 현실과 고민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진보 진영에서는 ‘민주당이 지금보다 진보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견이 46.6%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중도 진영에선 ‘왼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견이 28.6%에 그친 데 반해, ‘지금보다 중도나 보수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요구가 40.3%를 기록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민주당이 중도나 보수로 이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47.4%로 가장 높았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진보(81.7%), 중도(75.6%), 보수(65.2%) 등 모든 진영에서 ‘중도나 진보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다.

디오피니언 백왕순 부소장은 “진보, 보수, 중도 등 모든 이념 계층에서 한나라당에 중도나 진보 쪽으로 이동하라 요구하는 것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나 부자 감세 등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정책에 대한 역작용”이라면서 “한나라당 지도부나 차기 대선주자들은 모든 이념 계층이 요구하듯 정책과 이념 좌표를 중도나 진보로 이동해야 중도 성향 유권자를 지지층으로 유입시킬 수 있다”고 봤다.

“안철수 왠지 끌려”…중도는 변화 바람 원한다

9월 7일 오후 경북 구미시 금오공대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서 안동 신세계연합클리닉 박경철 원장과 서울대 안철수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원을 얻는 자 천하를 얻어

실제로 정부와 여당은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중도실용노선과 공정사회론 등 중도 성향 유권자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노선을 내놓으며 역대 어느 정부나 여당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물가 상승 및 전세 대란으로 대표되는 체감경제의 극심한 악화와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등이 불거지면서 국민은 정부의 중도실용노선과 공정사회론의 진정성에 불신을 갖게 됐다. 이후 정권 심판론이 고조되면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백 부소장은 “우리 국민, 특히 중도층은 이념적 갈등을 원치 않는다”면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밀어붙인 무상급식 주민투표도 중도 성향을 가진 국민 눈에는 이념 갈등으로 비쳤기 때문에 한나라당에 대한 중도층 이탈을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넓디넓은 중국 대륙에서는 ‘중원’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는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낸 후보가 대통령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정치개혁’과 ‘새 정치’를 화두로 중도층 공략에 성공해 집권했고,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경제 살리기’를 앞세워 중도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중원’을 얻으려고 항우와 유방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듯,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중도층 견인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안철수 현상을 촉발시킨 중도층의 반란은 내년 대선 판세를 가를 태풍의 눈으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다.

박근혜 중도층 확장성 취약

30%대 꾸준한 지지… 지나친 안정성이 오히려 한계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에서 매월 정기 여론조사를 통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중도층에서 안정적인 30%대 지지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참조).지난해 초 세종시 이전 수정안 문제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과 갈등 관계를 형성했을 때는 일시적으로 중도층 지지율이 25%까지 하락했지만, 같은 해 10월 8일 이 대통령과 회동한 이후 30%대로 올라선 이후 올해는 최저 33.7%에서 최고 37.4%까지 안정적인 추세를 보인다.

그동안 지난해 지방선거와 올 4·27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고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되는 등 여권은 여러 번의 정치 변동을 겪었지만, 박 전 대표에 대한 중도층의 지지세는 견고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박 전 대표에 대한 중도층 지지율이 지나치게 안정적인 것이 오히려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정한울 부소장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중도층의 지지는 흔들림 없는 콘크리트 지지 기반을 보인다”면서 “지나치게 안정적인 지지세는 확장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왠지 끌려”…중도는 변화 바람 원한다




주간동아 804호 (p38~40)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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