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4

2011.09.19

만장일치의 순간 위기의 또 다른 신호

‘애빌린 패러독스’와 집단사고

  • 김한솔 IGM 협상스쿨 책임연구원 hskim@igm.or.kr

    입력2011-09-19 0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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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케팅 전략회의 시간. 최 과장이 하반기 계획을 발표한다. 방 과장은 열심히 메모하며 개선 방향을 고민하는 중이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강 팀장의 지적. 그의 날카로운 코멘트에 방 과장은 ‘역시 팀장님은 달라!’라고 생각했지만, 몇몇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강 팀장이 이 회사로 오기 전에 다른 업종에서 일을 해서인지 접근 방식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갸우뚱한 상태로 다른 팀원의 표정을 살피는 방 과장. 하지만 다들 수긍하는 눈치다. 많이 고민했을 발표자 최 과장도 강 팀장의 코멘트를 한 글자라도 놓칠 세라 열심히 받아 적는다.

    그 순간 방 과장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괜히 나섰다가 찍히는 건 아닐까?’ ‘만약 내 말대로 전략을 바꿨다가 나중에 그것 때문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지?’ 결국 방 과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회의는 ‘평화롭게’ 끝났다. 방 과장의 회의 태도, 괜찮은 걸까.

    ‘애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라는 말이 있다. 이야기는 미국 텍사스 주의 한 가정에서 시작한다. 무더운 여름날, 아빠가 말했다. “우리 애빌린 가서 스테이크나 먹을까?” 그 말을 듣고 딸이 생각한다. ‘더워 죽겠는데 애빌린까지 가야 해?’ 애빌린은 집에서 85km나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그 말에 아들이 맞장구치고 나선다. “그럴까요? 오랜만에 고기 좀 먹어볼까?” 그러자 엄마가 말한다. “가자, 저녁밥 하기도 귀찮은데.”

    그렇게 가족은 애빌린으로 떠났다. 하지만 식사는 형편없었다. 그저 더웠을 뿐이다. 돌아오는 길, 긴 여행에 지쳐 침묵에 잠긴 차 안에서 딸이 말한다. “오랜만에 외식하니 좋네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가 말한다. “그래? 난 별로였어. 너희가 가고 싶어 하길래 가자고 한 것뿐이야.” 그러자 아들이 말한다. “가고 싶어 했다고요? 난 아빠가 가자니까 그냥 맞장구친 것뿐인데….” 그 말에 아빠가 답한다. “난 다들 너무 심심해하기에 그냥 해본 말이었어. 근데 전부 찬성했잖아?”

    가족 가운데 애빌린에서의 식사를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싫다고 말하지 않았고, 결국 아무도 원치 않던 외식을 해야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당신 회사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시시각각 열리는 회의에서 당신은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는가. ‘왜 아무도 NO라고 말하지 않는가?’라는 책까지 있는 걸 보면 그리 쉬운 일 같진 않다. 도대체 우리는 왜 ‘아니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



    만장일치의 순간 위기의 또 다른 신호
    답은 ‘소외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다들 그렇다고 하는데 나만 굳이 아니라고 말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입을 닫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직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치명적인 약점이다. 조직행동 전문가 스티븐 로빈슨은 “기업에서 어떤 대안을 고민할 때 반대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진행된다면 그 조직은 집단사고(Group think)에 빠진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만장일치는 박수 받을 일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하다는 신호라는 뜻이다.

    혹시 당신이 속한 조직이 항상 ‘모두’ 만족하는 결과를 얻는 ‘것처럼’ 보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아무도 원치 않는 애빌린’으로 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1993년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돌연 농구를 그만두고 야구에 뛰어들어 ‘평범한’ 마이너리그 선수로 전락하자 모두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용기를 내라. 당신의 한마디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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