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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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신성하고 완전한 원

엄마의 품 같은 평화, 우주의 섭리 내포

  • 신연우 아트라이터 dal_road@naver.com

    입력2017-05-15 15: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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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팔 차림새가 종종 눈에 띄는 5월의 봄날, 서울 성동구 서울숲 곳곳에 꽃이 활짝 피었다. 분홍색, 흰색, 붉은색의 화려한 튤립 정원을 지나니 하늘을 향해 튀어 오르는 황매화나무가 보였다.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날 것만 같은 샛노란색이 시각의 식욕을 자극했다. 라지(large) 크기의 컵을 내밀면 캐러멜 팝콘을 수북하게 담아줄 것 같은 풍성한 꽃송이에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가까이 다가가 꽃송이 하나를 들여다봤다. 동그란 얼굴을 켜켜이 둘러싼 꽃잎들, 그 안에 수줍게 자리 잡은 중심이 방긋 인사를 했다. 활짝 피어난 얼굴을 보자 살아 숨 쉬는 봄의 생명력이 그대로 전해졌다. 구구절절 어떤 말도 필요치 않다. 꽃들의 언어는 단박에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꽃을 피우고자 지나온 시간과 꽃잎이 떨어질 미래의 차원을 넘은 완전한 평화로움이 원형의 꽃 안에 담겨 있었다.



    눈동자 속 작은 우주

    원은 완전함, 포괄하는 전체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돼왔다. 특히 신성하고 소중한 대상을 보호하고 포용하는 것을 상징한다. 시작과 끝이 동일한 원은 시작해 끝에 도달하면 다시 시작으로 이어지는 역동성을 지녀 생명이 탄생하는 의미도 갖는다. ‘도형, 그림의 심리학’(파피에)에 의하면 원은 어머니의 공간이며, 모든 것을 묶어주는 위대한 어머니의 본질과 작용 방식을 상징한다. 원 안에 있다는 것은 둘러싸여 있고 이미 받아들여진 평화로운 상태임을 뜻한다. 원 안에 있다는 것은 결국 완전한 근원적 신뢰 속에 있다는 의미다.

    원이 완전한 모양이라는 것을 외계 생명체도 알고 있었을까. 영화 ‘컨택트’에서 지구에 나타난 외계인 햅타파드는 인간에게 자신들의 언어를 알려준다. 언어학자 루이스가 거대한 나무뿌리를 연상케 하는 기괴한 모습의 생명체에게 “HUMAN(인간)”이라는 단어를 써 보이자 흰 연기를 뚫고 앞으로 나온 햅타파드는 팔 하나를 뻗어 허공에 검은 연기를 뿜었다.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움직이더니 큰 서예 붓으로 한번에 휘두른 것 같은 원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인간의 언어가 주어, 목적어, 동사 같은 순서체계를 갖춘 언어인 반면, 그들의 언어는 시간적, 공간적 방향성이 없는 비선형 언어였다. 인간은 외계 생명체를 침략자로 규정했지만, 그들은 2초 만에 만든 원으로 과거와 미래에 매여 사는 인간에게 모든 것이 존재하는 완전한 지금과 소통의 방법을 알려줬다.

    사람의 눈동자도 원형이다. 각막과 인종에 따라 다른 색상을 가진 원형의 홍채 중심에 검은색 동공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심의 동공으로부터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홍채의 무늬가 우주를 바라보는 듯 신비롭다. 울고불고 떼쓰는 아이가 힘에 부쳐도 반짝이는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어느새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는 하나의 작은 우주다.

    중심이 있는 원 안에 우주의 섭리를 표현한 만다라(mandala)는 시공간을 초월한 생의 진리를 담은 불화의 일종이다. 중심에서 방사형으로 진출하는 원의 이미지는 눈앞에 닥친 문제에 휘둘리는 작은 인간에게 더 큰 차원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형상이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원의 상징을 분석하는 일이 우리의 자아를 분석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만다라를 그리다 보면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간의 본질에 존재하는 평화를 만남으로써 치유가 된다.



    치유의 만다라

    만다라의 원형 이미지를 활용한 재미있는 광고가 있다. 바이엘(Bayer)사의 아스피린 광고(AlmapBBDO, 브라질 제작·2009)는 오묘한 내면 세계를 만다라로 표현했다. 불교의 만다라처럼 생사 원리를 아우르는 차원이 아니라, 세상살이의 온갖 문제를 끌어모아 고민하는 내면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쉬려고 일찍 집에 들어온 날, 하필이면 집 앞 도로에서 공사하는 소리가 울려대고, 세탁소에 맡긴 옷은 엉망이 돼 돌아와 짜증이 올라올 즈음,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가 요란하다.

    수입은 적은데 나갈 돈이 많아 걱정이고, 욕실 하수구가 막혀 물이 넘치는 사이 눈치 없는 아이들은 싸우느라 바쁘다. 옆집에서 악기와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어디선가 날아온 축구공이 화병을 깨트리며, 강아지가 가방 안을 헤집어놓는다. 치과에서 치아를 치료하는 기계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끼쳐 있는 동안 폭주족이 내는 굉음까지 들려와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온갖 짜증나는 상황이 만다라 구석구석에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그 만다라의 중심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람의 검은 실루엣이 보인다. 그 사람의 머리에 떡하니 놓인 것은 바로 ‘아스피린’ 한 알. 일상에서 만나는 골치 아픈 상황,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 도망치고 싶은 상황이 아스피린 한 알로 해결된다는 뜻이다. 간단명료하게 뇌의 평화를 안겨주는 자그마한 아스피린도 하나의 원이라는 사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만능 알약을 만나고 있다. 언제나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가족의 동그란 얼굴을 마주하면 어느새 평화가 깃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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