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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기부 바이러스 확산, 세상 사는 맛 절로 나요

일식업계 기부왕 (주)어도 배정철 사장 “모든 수익 환원, 작은 식당이 기적 보여줄 것”

기부 바이러스 확산, 세상 사는 맛 절로 나요

기부 바이러스 확산, 세상 사는 맛 절로 나요

기부가 일상인 (주)어도 배정철 사장은 ‘일식업계 김장훈’으로 통한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99-1번지. 이 주소 잊어버리면 죽는다.”

영화 ‘황해’에서 면가(김윤석 분)는 구남(하정우 분)에게 쪽지를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쪽지에 적힌 주소지에 사는 인물을 죽이는 것이 구남의 임무. 순박한 조선족 청년 구남은 밤낮 건물 주변을 서성이며 작업할 기회를 엿본다. 회칼이 날아드는 잔인한 핏빛 무대. 하지만 실제 이 건물에는 훈훈한 미담이 숨어 있다.

“어느 날 동네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묻더군요. 지금 당신 식당에서 살인사건이 나서 경찰차가 출동하고 난리인데 여기서 뭐 하느냐고. 영화를 현실로 오해한 거죠. 하하.”

이 건물 1층에 들어선 (주)어도 배정철(49) 사장.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그는 스태프와 한 식구처럼 지냈다. 간판 불을 켜고 끄는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기본. 한날 전선에서 불이 났을 때도 “괜찮다”고 웃어넘겼다. 오랜 기간 이어진 촬영이 성가실 법도 한데 “어도 CF를 찍는 것”이라며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배 사장은 일식업계에선 유명한 기부천사로 통한다. 지난 17년간 기부금품을 합쳐 무려 40여억 원을 기부했다. 서울대병원, 순천향대, 전남 순천 효천고, 전남 장성고, 엠마누엘 재활원 등 각종 단체에 돈과 초밥 등을 기부하고 있다. 식당에 들를 때마다 나홍진 감독은 “좋은 일 하신다. 언젠가 초밥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다”며 그에게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1월 4일 다소 한산한 오후, 어도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1월 3일부터 1억 원 기부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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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는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해야 가능한 겁니다. 가족, 어도 직원, 기부를 권하는 지인, 기부하는 단체 직원 등이 밀고 끌어주는 덕분에 기부라는 행위가 완성되는 거라고 믿습니다.”

2011년 첫 번째 월요일인 1월 3일. 배 사장은 한걸음에 은행으로 내달렸다. 창구 직원에게 서울대병원으로 1억 원 입금을 부탁했다. 작업을 끝낸 뒤 수신자로부터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문자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배 사장도 답장을 보냈다. “도와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라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나눠야 한다는 원칙을 되새기기 위해 기부로 새해를 연 것이다.

모든 나눔이 아름답지만 배 사장의 그것은 더 특별하다. 그의 나눔은 여유가 아닌 의지에서 나온다. 남은 횟감으로 죽을 끓여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는 것으로 시작해 조금씩 기부 규모와 대상을 늘려왔다. 둘에서 하나가 아닌, 하나에서 반을 나누는 그의 기부 철학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찢어지게 가난한 집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늘 자식들 끼니 걱정을 하셨죠. 그러면서도 할머니 친구분들이 집에 놀러 오시면 어머니는 곳간을 뒤져 고구마라도 내놓으셨어요.”

어머니의 인심 덕분에 그의 집은 가난한 경로당 같았다. 고구마 하나 놓고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집안에 힘든 일이 있으면 동네 노인들이 없는 살림을 쪼개 돕겠다고 나섰다. “배고픔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열두 살 소년은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생활고 끝에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 왔다. 온 가족이 거리로 나섰고, 배 사장도 고사리손에 신문을 쥐었다. 학업은 중학교 1학년을 끝으로 접어야 했다. 여리고 내성적인 성격. 하지만 신문 배달을 시작한 이후 날마다 새로운 자신과 맞닥뜨렸다. 일에 돌입하면 샘솟는 열정으로 수개월 만에 신문 ‘확장왕’이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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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내성적인데 일에 접어들면 열정과 오기가 생겼어요. 동력은 돈이었죠. 거리에서 어른들께 꼬박꼬박 인사하고, 아주머니들과 빨리 친해지기 위해 부지런을 떨었어요. 영업에 대한 감을 익힌 시기였습니다.”

신문 배달 경험은 훗날 이어진 그의 기부에 중요한 밑바탕이 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기부를 시작한 것은 1993년 어도를 개업한 뒤부터. 돈이 모이자 자연히 나눔의 폭도 자유로워졌다. 바닥에서 시작해 서른한 살에 자신의 가게를 열 수 있었던 저력은 몸에 밴 성실함과 독한 고객관리에서 나왔다.

그가 일식업계에 발을 내디딘 것은 열여섯 살 무렵. 새벽마다 연탄 150장을 두 번씩 갈면서 국자와 젓가락으로 구타당하는 막내 생활을 수년간 했다. 비염으로 코에서 고름이 뚝뚝 떨어지고 기억력이 감퇴했지만 수술비용이 없었다. 약국을 돌며 수면제를 한 움큼 모아 돌아온 단칸방. “돈 없어 수술을 못 시키니 병이 낫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죽으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3년만 더 살기로 했다. 그러다 열아홉 살 무렵, 주방 뒤에서 앞으로 나온 뒤부터 일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기부 바이러스 확산, 세상 사는 맛 절로 나요
“주방에서 나와 손님들과 대면하게 됐죠. 명함을 받아서 1년에 3번씩 편지를 썼어요. 친한 손님들한테는 회를 직접 떠서 선물하기도 했죠. 신문 확장왕 때 배운 기술을 활용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가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 지금은 제 가게가 된 어도 사장님이 연락을 주신 겁니다.”

가게 영업은 승승장구했다. 돈도 많이 벌었다. 가족 부양을 위해 건물 두어 채를 마련한 뒤, 2010년 초 오랜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체계적인 기부를 위해 어도를 법인화한 것. 가계가 안정됐으니 수익 전부를 기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지금부터 일을 해서 벌어들이는 돈은 모두 사회에 환원할 계획입니다. 가족들은 먹고살 만큼 상황이 좋아졌으니까요. 작은 식당에서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눔에 동참하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거액을 꾸준히 기부하다 보니 원치 않게 언론을 타는 일이 생겼다. 속내가 궁금하다는 의혹의 눈초리가 주변에서 날아들었다. “홍보를 해야 한다” “그럴 필요 없다. 조용한 게 좋다”. 가게를 찾아와 돈을 사정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하지만 이제 소소한 일에는 초연하게 됐다. 스스로 떳떳하면 된다는 마음이 서자 관심은 오롯이 ‘기부’로 모아졌다.

스스로 떳떳한 일 … 뚜벅뚜벅 걸어갈 것

기부 바이러스 확산, 세상 사는 맛 절로 나요

1년 중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배 사장은 모자란 가족 사랑을 포스트잇 편지에 담아 보낸다.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뒤에서 ‘기부할 돈 우리한테나 주지’라고 흉보는 직원도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흔들림 없이 꾸준히 기부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바깥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신경 쓰지 않고, 가게로 찾아오는 분들은 회덮밥을 대접하거나 다른 방법을 알려주죠.”

배 사장은 워커홀릭이다. 어도는 365일 연중무휴. 아파도 출퇴근 시간을 어긴 적이 없고, 지인이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줘 2년 전 처음으로 부부여행을 다녀왔다. 그 덕분에 성공했지만, 가족에게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가족에게 보내는 포스트잇 편지. 두꺼운 노트에 다닥다닥 붙은 포스트잇에는 가족에 대한 그의 단상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지금껏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주말과 명절에도 영업을 하니까요. 그런 시간이 길어지자 아이들이 저를 인정해주지 않더군요. 없는 시간을 쪼개 어떻게 교감할까 고민하다가 생각한 방법이 포스트잇 편지입니다. 영어책 읽는 모습, 바이올린 연주하는 모습 등 아침에 잠깐 본 모습을 떠올리며 매일같이 주제를 바꿔 씁니다. 거짓으로는 마음을 나눌 수 없으니까요.”

횟감을 손질하고 손님들과 술잔을 주고받는 틈틈이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고 나면 일기장을 펼친다. 일기 역시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글로 속내를 풀어내며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 그 덕분에 일탈 없이 계획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올 수 있었다. 독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인 덕분일까. 그는 지금껏 계획대로 살아왔다. 서른 살 이전에 집, 마흔 살 이전에 건물을 장만했고, 지난해부터 발생하는 수익 모두를 사회 환원하고 있다. 그의 다음 꿈은 뭘까.

“얼마 전 서울대에 진학한 장성고 학생이 편지를 보내왔어요. ‘저도 사장님처럼 자라서 남을 돕는 사람이 돼야겠다’라고요. 기부가 기부로 이어지는 세상, 정말 멋지지 않나요?”



주간동아 2011.01.10 770호 (p60~62)

  •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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