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8

2010.12.27

암각화 동심원 무늬는 주술의 증거?

울주와 울산 암각화 수수께끼 여전…청동기시대의 지문 풀수록 어려워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0-12-27 12:0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암각화 동심원 무늬는 주술의 증거?

    15도 정도 기울어진 거석에 새겨진 천전리 암각화.

    역사학계에서는 국보 제147호 울주 천전리 암각화와 제285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발견을 두고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국내 최고의 선사시대 암각화로 꼽히는 두 국보가 공교롭게도 1년 시차를 두고 12월 24일과 25일에 각각 발견됐기 때문이다. 문명대(70·한국미술사연구소 소장) 동국대 명예교수는 두 차례 모두 ‘크리스마스 선물’의 주인공이 됐다.

    “1968년부터 동국대 박물관에서 울산지역의 불교 유적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3년 조사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1970년 12월 24일 언양면 대곡리의 반구대 부근을 조사 중이었지요.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반고사 터를 찾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근방 유적들이 사연댐 때문에 대부분 물에 잠겨 낙심천만이었습니다. 당시 그 지역 한학자인 최경환(崔敬煥) 씨가 ‘물길 따라 1km쯤 상류로 올라가면 탑거리가 있다’고 해서 안내를 받아 절벽의 오솔길을 갔는데 최 노인이 문득 절벽 아래쪽 바위를 가리키며 ‘저기에도 그림인지 무엇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희미한 모양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마애불이라고 생각하고 달려갔는데 이끼와 빗물로 덮인 한 장의 거석(巨石) 위에 기하학 내지 와권문(소용돌이무늬) 같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40년 전 찾아온 크리스마스 선물

    국내 최초로 선사시대 암각화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천전리 암각화는 높이 2.7m, 너비 9.5m의 바위 상단부에 동물, 인물, 기하학 문양이 다양한 기법으로 새겨져 있고 하단부에는 신라시대 명문(銘文)과 기마행렬도가 새겨졌다. 이 때문에 1971년 1월 1일 암각화의 발견을 대서특필한 ‘한국일보’는 신라시대 화랑 유적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문 교수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조사를 거쳐 천전리 암각화는 이듬해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와 함께 한국 선사시대 암각화의 정수이자 세계 선사미술의 대표작임이 밝혀졌다.

    두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도 예상치 못한 순간 나타났다. 1971년 11월 20일 역사학회에서 문 교수가 천전리 암각화에 대해 보고하자 동료 학자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기를 원했다. 답사 날짜를 11월 24일로 정했으나 정작 동행한 이는 문 교수를 비롯해 김정배(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융조(현 충북대 명예교수,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3명뿐이었고, 이들은 역사적 순간의 증인이 됐다.



    울주에 도착한 다음 날 세 사람이 천전리를 답사하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반구대 절벽 아래쪽 바위에 고래, 호랑이 그림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당장 배를 빌려 태화강변에 자리한 바위에 접근했더니 높이 3m, 너비 10m의 바위에 하늘을 날아오르는 고래들과 고래잡이배, 춤추는 샤먼, 멧돼지와 사냥꾼 등 200여 점의 그림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대곡리 암각화는 평소 물에 잠겨 있어 볼 수가 없으나 마침 그해 심한 가뭄이 들어 물이 다 빠지는 바람에 세 사람은 암각화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 사냥을 중심으로 다양한 동물과 인물 형상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어 큰 관심을 끌었고, 학술적 연구도 상당히 진척됐다. 그러나 1년 먼저 발견된 천전리 암각화는 태양을 상징하는 듯한 원, 소용돌이, 마름모, 물결과 직선 등 기하학적 문양에다 사슴, 인물, 반인반수(半人半獸·머리는 사람, 몸은 동물) 등의 형상, 신라시대 행렬도와 명문까지 혼재돼 있어, 아직도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문 교수는 “발견된 지 40년이 지났지만 천전리 암각화의 기하학적 문양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누가 왜 이것을 조성했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의문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암각화 발견 40주년을 맞아 학술행사와 전시회가 이어지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10년 10월 26, 27일 ‘세계의 바위그림 그 해석과 보존’이라는 주제로 국제 암각화 학술회의를 개최했고, 11월 27일에는 한국암각화학회가 ‘천전리 암각화의 신화와 상징세계’를 주제로 워크숍을, 12월 11일에는 한국미술사연구소가 주관해 ‘천전리 암각화 발견 4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었다. 서울시립대박물관은 2011년 2월 25일까지 한국의 암각화와 알타이 지역 암각화 50여 점을 비교, 전시하는 ‘한국과 알타이 지역의 바위그림’ 기획전을 마련했다.

    학술회의 등 활발한 재조명 작업

    암각화 동심원 무늬는 주술의 증거?

    천전리 암각화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들. ①은 겹둥근 무늬, ②는 겹마름모 무늬, ③은 겹타원형 무늬다.

    이처럼 한국의 암각화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한 가운데, 최초 발견자인 문 교수는 최근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천전리 암각화의 발견 의미와 도상 해석’이라는 논문에서, 천전리 암각화 유적은 고조선을 형성했던 1부족인 한(韓) 부족의 태양숭배 제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문 교수는 먼저 천전리 암각화의 조성 시기에 대해 신라시대(김원룡), 신석기 후기에서 청동기(임세권), 청동기 후기(황용훈), 청동기(장명수, 이하우), 초기 철기(기하문) 등 다양한 주장이 있었으나 동물상과 기하학 문양으로 보아 청동기시대로 의견이 모아진다고 밝혔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4500년 이후 특히 기원전 3000~기원전 2000년 전후로 시작됐다고 할 때, 이 시기에는 고조선의 후국에 속한 진한이 한강 이남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진한의 중심 세력인 한 부족이 천전리 암각화를 새긴 주인공이라는 주장이다.

    또 문 교수는 천전리 암각화의 중심에 새겨진 10여 개의 크고 작은 겹둥근 무늬를 태양 또는 눈, 핵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학술대회에서 ‘천전리 암각화의 기하학적 문양과 선사미술’에 대해 발표한 강삼혜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사도 “동심원 안 중앙에 점이 있는데 이는 갑골문자에서 해를 나타내는 글자와 동일”하며, “암각화에서 동심원 무늬가 매우 깊게 새겨진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주술을 행하며 문양을 갈아낸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겹마름모 무늬와 겹타원 무늬에 대해 문 교수는 “세로로 길게 새겨진 뱀 무늬와 가로로 구불구불한 파도 무늬 등과 함께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강 학예연구사도 마름모 또는 타원형 조각에 대해 “여성의 생식기를 표현한 음문”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타원형 무늬가 과연 여성의 상징인가. 오히려 파도 무늬에 어울리는 어망추가 아닐까”라는 질문으로 토론을 유도하기도 했다. 또 안 교수는 “천전리 암각화의 중앙에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암각화가 새겨진 순서가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사실→추상이 아니라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한편 천전리 암각화에서 나타나는 5점의 인물 형상에 대해 흥미로운 논의가 펼쳐졌다.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천전리 암각화의 인물 형상은 사실적 양식의 대곡리 암각화에서 한국형 암각화라고 부르는 추상적 양식의 암각화로 넘어가는 전이과정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했다. 이어 천전리와 대곡리 암각화에 나타나는 역삼각형 얼굴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조용진 얼굴연구소 소장은 “뇌의 거울 작용을 통해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자기 얼굴 또는 자기가 늘 생각하는 얼굴을 그리게 마련”이라면서 “얼굴과 코가 길고 특히 눈 아래쪽 얼굴이 길며, 반면 정수리 부분이 낮고 대신 두개골 좌우가 발달한 역삼각형 얼굴은 경상도 내륙지역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이 풀린 지 40년이 흘렀지만 암각화를 새긴 주인공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풀어야 할 많은 수수께끼만 안겨주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