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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땅속의 잔인한 괴물 ‘지뢰’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결코 죽지도 않는다

땅속의 잔인한 괴물 ‘지뢰’

땅속의 잔인한 괴물 ‘지뢰’
2010년 12월 13일, 경기 연천군 백학면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39발의 지뢰를 발견해 제거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지뢰는 1960년대에 매설돼 40여 년이 지난 것으로 보였으나 정상적인 기능은 가능했다. 육군의 현장 담당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수십 년이 흐른 것으로 추정되지만, 뇌관 등이 부식되지 않고 그대로여서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태다.”

25사단 1공병여단 폭발물처리반(EOD)은 이곳에서 한 달간 제거작전을 벌였다. 평소 아이들이 그네를 타거나 뛰어놀던 이곳에서 대인지뢰 10발과 대전차지뢰 29발 외에도 수류탄과 고폭탄, 대전차용 철갑탄이 나왔다. 육군은 1960년대 초반 전쟁을 대비해 북한군의 주요 침투로인 연천지역에 무수한 지뢰를 매설했다. 이번에 발견된 지뢰는 이 가운데 제거되지 않은 일부로 보인다.

비무장지대와 주변 전방지역은 엄청난 지뢰가 매설된 세계 최고의 지뢰 밀집지역이다. 주한미군은 전시에 북한군 보병의 진격을 저지하려고 휴전선 주위에 100만 개 가까운 지뢰를 깔아놓았다. 육군은 적의 기갑부대가 접근해올 주요 지점마다 대전차지뢰를 매설했고, 이것을 보호하기 위해 그 주위에 대인지뢰를 깔아두었다.

2000년 6월, 경기 파주시 군내면 비무장지대 안쪽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수색대원을 이끌고 정찰 중이던 신임 대대장이 지뢰를 밟아 두 무릎 아래가 절단됐다. 마침 현장에 있던 전임 대대장 이종명 중령은 병사들을 기다리게 하고 혼자 그를 구하려 접근했다. 그러나 그도 지뢰를 밟아 두 무릎 아래가 절단되고 말았다. 전임과 신임 두 지휘관은 간신히 기어나와 목숨은 건졌다. 이 일은 분단국가의 비극적 현실과 지뢰의 야만성을 생생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남아 있다.



대부분의 폭탄은 선택적으로 인명을 살상한다. 그러나 지뢰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살상하는 가장 잔인한 폭탄이다. 특히 대인지뢰(land mine)는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으며, 아군과 적도 식별하지 않는다. 1980년 이후 세계 도처에서 무수한 분쟁이 있었다. 분쟁의 원인은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무수한 대인지뢰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내전 중인 국가들의 무장단체는 지뢰를 매설하고 있다.

지뢰가 땅에 묻히면 그때부터 애초의 군사적 목적과는 상관없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폭발 기능이 작동한다. 땅속 지뢰는 분쟁이 끝난 후에도 그곳에 남아 걸려드는 사람을 해치운다. 지뢰는 기능이 완전히 정지될 때까지 두고두고 사람의 손발을 잘라낸다. 물론 그 상대가 어른이든 아이든 가리지 않는다.

지뢰가 처음 사용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다. 독일군은 진지 방어를 위해 땅에 폭약을 설치한 후 위장해놓았다. 영국군은 이 지역에서 진격하다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독일군은 지뢰를 개발했는데, 그들이 실전에 사용한 것은 대전차지뢰였다. 지뢰는 방어용으로 만들었으나 대인지뢰가 생산되면서 공격용으로 변모해갔다.

분단된 한반도 곳곳이 지뢰밭

땅속의 잔인한 괴물 ‘지뢰’

강원도 철원군 금남면 민통선 이북의 숲 속에 설치된 지뢰.

베트남전쟁 당시 적지를 향해 작전 나간 군인들은 어둡기 전 참호를 파고 클레이모어 지뢰(Claymore mine)를 설치했다. 그러고는 자동소총의 안전장치를 풀어놓고 수류탄과 탄창을 손쉽게 쓸 수 있도록 해 적의 야간기습에 대비했다. 흔히 ‘크레모아’로 통하는 클레이모어는 대인지뢰의 일종이다. 적이 다가올 방향에 설치한 다음 점화장치를 두들겨 작동시키면 근접한 적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강력한 무기다. 지형에 따라 여러 개를 적절히 매설했다가 적의 1개 소대 정도를 콩가루로 만들 수도 있다.

북베트남 게릴라부대 베트콩은 야생 바나나와 파인애플 따위에 교묘하게 부비트랩(booby trap)을 장치했다. 인계철선으로 연결된 폭탄은 마치 쥐덫처럼 아군 병사들의 목숨을 노렸다. 미군은 베트남에서 여러 종류의 지뢰를 사용했지만, 그중 특이한 것은 살포용 지뢰인 ‘그래블(Gravel)’이었다. 적지에서 고립된 아군을 구조하기 위해 쓴 그래블은 항공기에서 냉동상태로 살포됐다. 적과 아군 사이에 뿌려진 지뢰는 작은 성냥갑만 했으나 즉시 해동되면서 기능이 작동했다. 그래블은 건드리면 날카롭게 폭발하기 때문에 적의 진격을 저지하며 구조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현대의 대인지뢰는 사람을 죽이기보다 부상을 입히는 쪽이 더 효과적이란 비열한 목적으로 제조됐다. 플라스틱제 대인지뢰는 불과 20g 내외의 폭약이 들어 있다. 이 정도 폭약으론 사람이 죽지 않지만 손이나 발목이 절단된다. 신체가 잘려 피 흘리며 비명 지르는 병사는 전사한 쪽보다 훨씬 더 동료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부상한 병사를 방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치료를 위해 이동시키려면 한두 명이 매달려야 해 전투력에 손실이 생긴다. 따라서 그만큼 의료와 병참에도 부담을 준다는 논리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구 소련군은 항공기로 수백만 개의 플라스틱 지뢰를 공중에서 살포했다. 이 지뢰는 적에게 부상을 입히기 위한 것이었다. 소련군 12개 사단에 맞서던 무장 게릴라조직 무자헤딘의 전사 상당수가 걸려들었으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신체가 썩는 고통을 당했다. 희생자 중에는 아이도 많았다. 많은 아이가 나비 모양으로 생긴 지뢰를 호기심에 건드렸다가 끔찍한 폭발사고를 당했다. 플라스틱 대인지뢰는 탐지하기도 어렵지만, 폭발압력으로 혈관과 조직 깊숙이 상처를 남긴다. 플라스틱 지뢰 파편은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데다 엑스레이 필름에도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상만 입히는 비열한 그놈

지뢰는 무장차량과 탱크를 파괴하는 대전차지뢰와 사람을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는 대인지뢰로 분류된다. 대전차지뢰는 보통 수백kg의 압력에서 반응한다. 대인지뢰에는 폭풍지뢰와 파편지뢰가 있다. 폭풍지뢰는 치명적인 폭발압력으로 다리 아래를 망가뜨려 일명 ‘발목지뢰’라고 부른다. 예전 미국에서 생산했던 M-14 대인지뢰가 대표적인 ‘폭풍형’이다. 파편지뢰(산탄지뢰)는 대체로 폭발 반경이 넓어 살상력이 강력하다. 그중 ‘도약형’은 두 개의 뇌관이 있다. 센서를 건드리면 뇌관이 파편을 공중으로 수십cm에서 수m까지 튀어 오르게 만들고, 두 번째 뇌관은 장전장치를 풀면서 날카로운 금속 파편이 수십m까지 날아가 인명을 살상한다.

이탈리아 군수회사 발셀라 메카노테크니카는 세계 최대의 지뢰 제조사 중 하나로 악명이 높았다. 발셀라는 탐지가 어렵거나, 제거마저 힘든 교활한 지뢰 생산에 주력했다. 지뢰에 센서를 달아 조금만 기울어도 폭발하거나, 지뢰 아래쪽에 제거방지용 뇌관을 또 하나 붙여 제거하는 순간 폭발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발셀라의 플라스틱 지뢰는 쉽게 부식하지 않아 수십 년간 묻혀 있어도 기능엔 이상 없을 만큼 수명이 길다.

국제연합(UN)은 1980년 ‘유엔지뢰선언’을 선포하며 지뢰를 ‘무차별 무기’로 명명해 국제적 지뢰수출을 금지했다. 그러나 발셀라는 유엔의 금지를 무시하고 1984년부터 2년간 이라크에 900만 개의 대인지뢰를 밀수출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밀수출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이라크군은 사담 후세인의 지시에 따라 이란과의 전쟁에서 지뢰를 사용했다. 이란군은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려고 아이들을 지뢰밭으로 내몰았다. 이란의 회교혁명정부는 동원된 아이들에게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다 죽으면 천국으로 바로 가게 된다’고 가르쳤다. 이 때문에 무수한 아이가 불구자가 되거나 목숨을 빼앗겼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미국도 1988년까지 적대국인 이란에 지뢰를 팔았다.

지뢰의 희생자는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지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 가운데 민간인은 20%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민간인 피해가 60%로 늘어났고, 1980년 이후 분쟁지역의 피해자 90%가 민간인이었다. 과거 분쟁이 있었거나 분쟁 중인 70여 개 국가에 지뢰가 널려 있고, 희생자의 70%는 여자와 아이들이다. 내전을 치르는 제3세계 분쟁국가에선 땔감을 줍고 물을 길어오고 놓아기르는 가축을 돌보는 게 여자와 아이들의 몫이라 그들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국제지뢰금지운동’이라 부르는 ICBL(International Campaign to Ban Landmines)은 지뢰에 반대하는 비정부기구다. 이들은 지뢰의 위험성을 알리고 이를 제거하려 노력해 1997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ICBL은 지금도 지뢰의 야만성을 경고하며 인류의 양심에 호소하고 있다.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는 사망하기 전까지 ICBL의 가장 열정적인 후원자였다. 다이애나는 지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아프리카 앙골라를 방문해 대인지뢰를 국제적 문제로 부각하는 일에 앞장섰다. 지뢰 폭발로 다리를 잃은 흑인 아이를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쓰다듬던 모습은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됐다. 그 덕에 많은 사람이 그를 가슴이 따뜻했던 여인으로 기억한다. 인구 1000만 명의 앙골라에는 지금도 1000만 개의 지뢰가 깔려 있다.

비용 많이 들고 위험도 큰 제거작업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지난 베트남을 다시 찾은 미국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미군 지뢰공병으로 참전했던 사람들로 1995년부터 자비를 들여 베트남을 찾아와 매설지도와 탐지기를 들고 예전의 작전지역을 돌아다니며 지뢰를 제거했다.

지뢰를 제거하는 일은 비용도 많이 들고 위험부담도 아주 크다. 영국의 맥(MAG)은 전 세계에 전문가를 파견해 지뢰를 제거하는 인도주의 단체다. 제거팀은 탐지기를 사용하거나, 칼 모양으로 생긴 도구를 조심스럽게 땅속에 찔러넣으며 지뢰를 찾아 나간다. 이들은 두 명이 한 조가 돼, 한 사람은 작업하고 또 한 사람은 뒤에서 지켜본다. 만일 실수해 지뢰가 폭발하면 즉시 동료를 구조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방탄복과 방탄유리로 된 헬멧을 쓰고 있지만, 폭발력이 강한 지뢰가 터지면 별 도움이 안 될 때도 많다. 맥, ICBL, 유엔 지뢰제거 자문회사인 영국 SGS 등 여러 단체 전문가가 1995년 한 해 동안 제거한 지뢰는 20여만 개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해 여러 분쟁지역에서 200만 개의 지뢰가 새로 매설됐다.

1998년 10월 중부전선에서 북한군 남녀 두 명이 비무장지대를 통해 남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지뢰지역을 넘기 시작했다. 적의 침투가 쉬운 비무장지대 취약지구엔 육군이 지뢰를 고밀도로 매설해뒀다. 이런 지역은 매설지도 없인 통과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남녀 병사는 서로 기대기도 하고 꼭 껴안아주며 고밀도 지뢰지역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이 넘어오는 광경은 아군의 열상탐지기(TOD)를 통해 관측됐다. 이들은 사랑을 이루기 위한 열정으로 죽음의 지역을 지났고, 지뢰밭으로도 막을 수 없던 희망은 남쪽에서 현실이 됐다.



주간동아 2010.12.27 768호 (p44~46)

  • 주성민 군사문제 전문 자유기고가 bluejays@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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