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8

2010.12.27

이런, 디지털 유산 저승까지 따라간다

육체 떠났어도 온라인 세상에선 생존자…프라이버시 유출에 취약 논란 분분

  • 손영일 기자 scud@donga.com

    입력2010-12-27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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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디지털 유산 저승까지 따라간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디지털 자산의 사후관리에 대한 문제는 새로운 논란거리로 부각되고 있다.

    “당신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들… 우리들의 마음이 담긴 선물… 맘에 드셨나요? 미리 생일 축하드렸어요.”(고(故) 최진실 씨 싸이월드 미니홈피)

    톱스타 고 최진실 씨가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두 자녀와 그를 아끼는 많은 팬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난 지 2년 2개월이 흘렀다. 고인의 생일인 12월 24일을 앞두고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많은 추모의 글이 올라왔다. 이곳에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누리꾼이 찾아와 최씨는 현재 활동 중인 여느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가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상속해서 관리해야 vs 상속 땐 더 큰 피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지만 요즘 사람은 죽어서 남길 것이 이름 이외에도 많아졌다. 1999년 문을 연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그 수만 2500만 개에 이른다. 네이버 블로그 1900만 개와 다음 블로그 500만 개를 합치면 국내 3대 포털에 개설된 블로그나 미니홈피는 5000만 개에 육박한다. 국민 1인당 1개꼴로 디지털 자산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육신은 세상을 떠나도 생전 그가 운영하던 블로그, 카페, 트위터, 페이스북 등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s)은 여전히 온라인 세상에 존재한다.

    이런 디지털 자산으로 인해 육신은 사라졌어도 온라인상에서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다.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 e메일이 오고, 이웃 누리꾼들의 글이 남겨진다. 그러나 죽은 자가 이를 관리할 수는 없기에 방치된 디지털 유산은 점차 ‘유령’이 돼간다. 최근 고인의 디지털 자산에 대한 상속을 인정해 유령들의 생성을 막자는 ‘디지털 유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논의는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과 맞물려 있다. 일각에선 “디지털 유산을 인정해야 프라이버시의 침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령이 된 디지털 유산은 그만큼 프라이버시 유출에 취약하다. 따라서 상속을 통해 유족들이 관리해야만 악의적인 의도로 고인의 디지털 유산에 접근하는 이들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선 “사적인 내용이 담긴 디지털 유산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프라이버시 침해에 해당한다”고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주간동아’가 온라인 리서치업체 ‘마크로밀 코리아’에 의뢰해 2010년 12월 20~21일 전국 5대 도시 20~40대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현재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 싸이월드 미니홈피, 트위터, 페이스북, 인터넷 카페 중 하나라도 직접 운영하고 있다”고 한 응답자는 78%. 이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죽고 난 뒤에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 싸이월드 미니홈피, 트위터, 페이스북, 인터넷 카페 등을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응답자의 절반 이상(51.3%)이 ‘폐쇄하는 게 좋다’고 했다. ‘누군가(가족, 친구, 회사 등)가 상속해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29.7%, ‘폐쇄를 하지만 콘텐츠 권리는 상속인에게 넘긴다’는 19.0%에 불과했다.

    이런, 디지털 유산 저승까지 따라간다
    51.3% “폐쇄하는 게 좋다”

    재미있는 것은 연령별로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20대의 경우 폐쇄에 찬성하는 비율은 46.5%로 40대의 58.4%에 비해 12%포인트 가까이 낮았다. 반면 누군가에게 상속(31%)을 하거나 콘텐츠 권리를 넘기는 의견(22.5%)의 합은 53.5%에 이르렀다. 젊을수록 폐쇄보다는 상속에 긍정적이다.

    ‘폐쇄하는 게 좋다’고 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대부분(64.5%)이 ‘관리가 안 된 채 방치되는 것이 안쓰러워서’라고 답했다. 그리고 ‘개인정보 유출 우려’(27.0%), ‘해킹에 악용될 위험 때문에’(6.0%)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런 결과를 두고 직장인 서문원(33) 씨는 “설사 유족이 상속을 받아도 추모 공간 이상으로 활용하기는 어렵다. 유족도 언젠가는 죽을 텐데 그 다음은 누가 관리하겠나. 결국 시기의 문제일 뿐 방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에서 보듯 사람들은 자신이 죽고 난 뒤 디지털 유산이 방치되거나 이로 인해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우려한다. 디지털 유산의 처리 방법을 생전에 결정해놓는다면 이런 문제점을 줄일 수 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속 여부에 대한 고인의 정확한 뜻을 알지도 못한 채, 포괄적으로 디지털 유산을 인정하는 것은 그만큼 프라이버시 침해의 소지가 크다는 것.

    일단 디지털 유산을 재산권으로 인정하고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2010년 10월 건국대에서 열린 ‘사자(死者)의 디지털 유품 관리현황과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김기중 변호사(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는 “디지털 정보의 경제적 가치가 증가하고 있는 최근 현황에 비춰볼 때, 민법상 디지털 정보에 재산권적 성격을 부여하고 일정한 권리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사 디지털 유산을 인정한다 해도 어디까지 상속을 인정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 현금화가 가능한 포인트나 싸이월드의 도토리, 게임머니 등을 상속의 범주에 포함하는 것에 대해선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를 얻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생전에 카페에 올린 글이나 사적으로 주고받은 e메일까지 디지털 유산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더욱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고인이 가족 몰래 보관한 일기나 편지도 유족이 모든 권리를 가지듯 e메일이나 기타 디지털 유산 역시 상속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프라이버시 침해를 이유로 반대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직장인 김동균(30) 씨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나의 e메일을 보거나 온라인상에 올린 글을 삭제할 권리를 주는 것에 대해선 반대한다”고 말했다.

    “비공개로 작성된 블로그 포스트나 e메일은 일기장이나 편지처럼 물리적인 실체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계정을 알려주지 않는 한 주변 사람이 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읽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좀 더 자유롭게 내 생각을 적어뒀는데 이를 누가 찾아낸다면, 이는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입니다.”

    이렇듯 디지털 유산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연 데는 성공했지만, 합의를 얻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디지털 유산에 관한 근거 규정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현재는 정보통신망법, 통신비밀보호법, 민법 규정 등을 혼재해 적용하는 실정이다. 최근 국회에 정보통신법 개정안이 올라왔지만 실질적인 법의 통과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 결과 포털이나 SNS 업체들도 임시방편적 개별 대응에 그치고 있다.

    업체마다 입장 차이 고심 거듭

    이런, 디지털 유산 저승까지 따라간다

    사후에도 일정 수준의 접속량을 보이는 고 최진실 씨의 미니홈피.

    우선 블로그, 카페, e메일 등 가장 많은 디지털 유산이 만들어지는 포털의 경우 고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방점을 두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원칙적으로 타인 승계가 불가능하다. 개인의 사생활 정보가 많은 만큼 아이디를 양도하는 것도 금지된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고 최진실 씨의 미니홈피처럼 제3자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SK커뮤니케이션즈 관계자는 “계정이 침해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확인되면 해당 미니홈피를 폐쇄한다”며 “다만 직계가족의 요청으로 추모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에는 폐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망자에 대한 유가족의 상속 요청이 있을 경우 사망 사실과 가족관계를 확인한 후 계정만 삭제해준다. 유가족은 망자의 비밀번호와 ID를 물려받을 수 없으며 자료 열람도 허용되지 않는다. 다음커뮤니케이션 관계자는 “블로그, e메일의 경우 계정 삭제 요청이 있을 시 계정이 삭제되며, 삭제 이후에는 콘텐츠의 열람이나 백업을 할 수 없다”며 “카페 등 공개 게시판의 망자의 공개된 게시글은 삭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NHN은 디지털 유산에 대한 별도의 방침을 마련하지는 않았으나 고인의 사망증명서나 고인과의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있으면 고인이 남긴 ‘디지털유산’을 백업해 제공한다. 유족들이 사망자의 아이디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경우 이를 받아들여 삭제한다. NHN 관계자는 “지금까지 디지털 유산과 관련된 문의는 2~3건에 불과했다. 포털 차원에서 개별적인 접근을 하기보다는 제도적으로 공동의 방침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NHN, 다음커뮤니케이션, SK커뮤니케이션즈 등 6개 회원사가 참여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선 디지털 유산 관리에 관한 공통정책안 및 표준 약관 마련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KISO 성동진 사무처장은 “현재 공통정책안을 만들어 개인정보보호법과 같은 관련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지 점검하고 있다. 방통위 등 관련 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어느 정도 컨센서스가 만들어지면 최종안을 마련하는 데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전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 업체들도 디지털 유산의 처리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SNS 발달에 따라 디지털 유산에 해당하는 정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트위터는 죽은 이와 함께 계정이 사라지게 하거나 그동안 썼던 글을 유품으로 물려받게끔 하고 있다. 부고 등을 포함해 소정의 양식으로 접수한 요청에 한해서, 계정을 완전히 삭제하거나 고인이 생전에 남긴 트윗을 모아 신청자에게 전달하는 것.

    페이스북은 운영자가 사망할 경우 기존 페이스북 페이지는 그대로 남지만, 고인의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는 사라진다. 새로운 친구를 맺을 수 없고, 누구도 고인의 계정으로 로그인할 수 없다. 다만 고인의 가족이나 친구의 요청이 있을 경우 몇 가지 절차를 거쳐 ‘사이버 추모 공간’으로 전환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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