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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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스타로 살기보다 40살까지 골대 지키고파”

유럽 진출 1호 골키퍼 권정혁 “매 경기 꾸준한 활약 그 꿈을 찾아 도전”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12-20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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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 스타로 살기보다 40살까지 골대 지키고파”

    권정혁 선수의 활약을 소개한 핀란드 현지 언론 기사.

    ‘유럽 진출 1호 골키퍼’.

    193cm 장신 골키퍼 권정혁(32) 선수의 이름 앞에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는 2009년 FC서울에서 핀란드 베이카우스리가의 롭스(RoPS)로 이적해 대한민국 골키퍼로는 최초로 유럽에 진출했고 이듬해 VPS 바사로 팀을 옮겼다. 유럽파라고 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랑스 리그의 박주영(AS모나코) 등을 떠올리는 국내 팬들에겐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민첩성을 바탕으로 올 시즌 VPS 바사에서 31경기를 뛰며 주전 골키퍼로서 활약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핀란드 최대 스포츠 잡지 ‘베카자(Veikkaaja)’가 선정하는 2010시즌 베스트11에 뽑혔으며, 전체 선수 평점 순위에서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핀란드 전국 일간지인 ‘일타-사노마트(Ilta-sanomat)’가 선정하는 시즌 베스트11에 뽑혔다. 그의 팀 성적이 1부 리그 14개 팀 중 10위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그의 활약은 단연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핀란드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활약

    “한국인들이 핀란드 축구를 무시하는 것처럼 핀란드인들도 한국 축구를 무시해요(웃음). 아시아와 북유럽 간에 축구 교류가 거의 없다 보니깐 생긴 일이었죠.”

    53개 유럽축구연맹(UEFA) 중 그가 속한 핀란드리그는 20위권에 드는 중위권 리그. 그렇다고 수준을 낮게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빅리그 클럽 팀들은 팀에서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실전 감각을 유지시키는 차원에서 이들 리그로 선수를 임대한다. 비록 리그 이름값은 낮지만 축구 수준은 빅리그 못지않다는 평이다. 특히 그가 활동하는 핀란드리그를 비롯해 북유럽리그는 골키퍼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곳에서 그는 ‘유럽 진출 1호 골키퍼’란 이정표를 넘어 ‘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다.



    “예전부터 유럽 무대에 진출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큰 무대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실력을 겨루는 것을 꿈꾸잖아요. 2007년 군복무를 마치고 나면서부터 조금씩 준비를 했습니다.”

    부평초등학교 시절 반 대항 축구대회에 나갔다가 감독의 눈에 띄어 축구선수로 들어선 권정혁 선수. 김남일(FC 톰 톰스크), 안효연(홈 유나이티드 FC), 서기복(인천 FC 코치) 등 쟁쟁한 선수들 앞에서 그는 골키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꿈을 찾아가기까지 그의 여정은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군복무가 끝남과 동시에 그는 울산 현대로 복귀했다. 그리고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한 뒤 2008년 다시 FC서울로 옮겼다. 이때 그의 축구인생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무릎과 발목 부상으로 한 차례도 리그 경기에 뛰지 못했다. 재활에 매달리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꿈을 돌아봤다. 그리고 해외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가 해외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실력과 함께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영어 실력을 쌓아둔 덕분이다. ‘배우면서 살자’가 좌우명인 그는 운동을 하는 틈틈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체육특기생으로 고려대에 들어갔지만 전공은 신문방송학과를 택했고, 3점대 중반의 좋은 학점으로 졸업했다. 엘리트 체육의 폐해로 학교 체육이 파행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그의 선택은 지금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수학이나 과학은 자신 없었지만 언어에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전공 수업도 최대한 열심히 들었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물론 이런 저를 ‘운동선수가 운동을 해야지 무슨 공부냐’며 안 좋게 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체육선수들도 배워야 한다는 소신에 대해선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렵게 핀란드리그에 진출해 맞이한 첫 경기. 그는 이날 경기가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이날 그는 주전 골키퍼로 투입됐다. 상대는 전년도 우승팀. 잔뜩 긴장을 한 채 경기장에 들어섰는데 경기 시작 2분여 만에 사고가 터졌다. 상대팀 스트라이커가 골대 부근에서 공을 차는 척하면서 그의 입을 강타한 것이다. 자칫 발이 조금 위로 올라갔다면 코가, 내려갔다면 이가 산산조각 날 뻔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천만다행으로 피만 나는 정도에 그쳤지만 퇴장을 줘도 충분한 상황이었다.

    “심판이 퇴장은커녕 경고도 주지 않더군요. 그때 정신이 바짝 들면서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며 경기에 집중을 했죠.”

    비록 팀은 0대 3으로 패했지만 그는 무수한 선방으로 홈 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용병이란 꼬리표를 떼기는 쉽지 않았다. 감독을 비롯해 선수들이 실력보다는 국적으로 그를 평가하는 일이 많았다. 더욱이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책임을 골키퍼에게 돌리는 감독 때문에 적잖게 마음고생을 했다.

    “한번은 감독을 직접 찾아가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선수들 미팅 때 한 얘기는 잘못됐다’며 따졌습니다. 한국에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죠. 하지만 유럽리그에선 자기 의견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바보가 돼요. 그런데 감독의 반응이 충격이었습니다. 감독은 ‘네가 화내는 것이 기분 좋지는 않지만,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해 고민을 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이해를 하더군요.”

    치열한 주전경쟁 성실함으로 이겨내

    결국 실력으로 보여줘야 했다. 특히 핀란드리그에선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의 지역에서 유망주를 데려다 키워 비싸게 되파는 경우가 많아 유망주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비록 이번 시즌에선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지만, 내년에도 주전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때로는 치열한 경쟁이 주는 중압감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는 “경기를 뛰고 지친 상황인데도 스트레스 때문에 2~3시간밖에 자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힘이 들 때마다 그는 자신의 롤 모델인 네덜란드 출신 명골키퍼 에드윈 판데르 사르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판데르 사르는 박지성과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판데르 사르에게 마음이 끌린 것은 바로 성실함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꾸준히 활동한 성실함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큰 부상을 겪지 않고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해왔는데 그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방증이죠.”

    매순간 쉽지 않은 생활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낭만은 있다. 특히 ‘사우나의 나라’ 핀란드에서 벌어지는 ‘사우나 파티’는 미혼으로 홀로 타향살이를 하는 그에게 큰 활력을 가져다준다.

    “핀란드엔 한국처럼 중요한 경기가 끝난 뒤 회식을 하는 문화가 없습니다. 경기장 VIP 식당에서 밥 먹을 사람은 먹고, 아니면 그냥 퇴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두 달에 한 번 정도 모든 선수가 사우나에서 피로도 풀고 음식도 먹으며 감독·코치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데 팀 단합에 최고입니다.”

    올 시즌 1년 단기계약이 끝나면서 그의 활약을 지켜본 여러 팀에서 접촉을 해오고 있다. 핀란드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나서의 진로를 묻자 그는 “축구에 전념하고 싶다”고 명쾌하게 답했다.

    “지도자로서의 생활도, 공부를 더 하는 것도 아직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축구를 오래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마흔 살까지는 현역 선수로 뛰고 싶습니다. 꾸준히 출전하며 경기에 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매 경기 스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성실함으로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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