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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매일 악몽에 시달린 일곱 달 A양 학교는 나 몰라라

김수철 피해 아동 상처는 여전하고 가족들 삶은 무너져

매일 악몽에 시달린 일곱 달 A양 학교는 나 몰라라

매일 악몽에 시달린 일곱 달 A양 학교는 나 몰라라
12월 13일 찾은 서울 모 병원 1인실. 여덟 살 A양의 시선은 천장에 매달린 TV의 만화영화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만화 속 토끼가 달리다 넘어지자 씩 웃었다. 이가 여러 개 빠져 앞니 두 개만 톡 나온 모습이 만화 속 하얀 토끼와 닮았다. 윤기 흐르는 까만 긴 머리에 하얀 피부의 A양은 엄마 말대로 ‘멋 부리기 좋아하는 도도한 꼬마 아가씨’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그렇게 좋아하는 분홍 스웨터 대신 흰색 환자복을 입는다. A양은 지난 초여름 입에 올리기도 힘든 일을 당했다. 아이와 엄마는 평생 ‘김수철’이라는 이름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일곱 달이 지났다.

배변주머니 제거 70% 회복 수준

6월 7일 오전 9시 55분 학교 재량휴업일에 ‘방과 후 컴퓨터 수업’을 듣기 위해 A양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 후문으로 들어왔다. A양이 운동장에 들어선 뒤 어머니가 돌아가자, 9시경부터 술에 취한 채 운동장에 앉아 있던 김수철이 아이에게 접근했다. 김수철은 커터칼로 A양을 위협하며 어깨동무를 한 채 데리고 나가 학교에서 500m 떨어진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했다. A양이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고 학교로 들어간 지 고작 7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A양의 어머니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꽉 막힌다.

“오후 2시 반쯤 아이가 운동장에 앉아 있는 걸 발견했어요. 이미 CCTV에서 아이가 이상한 남자랑 같이 나갔다는 걸 확인하고, 선생님들이랑 경찰이랑 다 같이 아이를 찾고 있을 때였죠. 수영장 모퉁이에서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에는 피가 묻은 아이를 발견했는데…. 엄마 아빠를 보고도 허연 눈으로 허공만 보더군요.”

A양은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경찰은 오후 7시 30분경 집 근처에서 서성이는 김수철을 검거했다. A양은 항문과 질 사이 벽에 구멍이 생겼고 장이 끊어져 정상적인 배변이 불가능해 결국 배변주머니를 달았다. 상처를 꿰매야 하는데 아직 몸이 작아서 한 번에 수술을 할 수 없어 매주 전신마취를 하고 상처를 치료하고 아무는 정도를 확인하며 다시 수술했다. 마취가 풀릴 때의 고통은 어른도 참기 힘든데 키가 120cm도 안 되는 아이에게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마취 주사를 놓을 때도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 아이의 가는 팔에 주삿바늘을 몇 번이나 찔러야 했다. 처음 두 달은 잘 견뎠지만 수술이 계속될수록 아이의 인내는 바닥이 났다.



“꾹 잘 참다가도 서너 번 정말 힘들어했어요. 밤새도록 울고 잠도 못 자고…. 저도, 아이의 친할머니도 통곡을 했죠. 내가 대신 아팠으면…. 나중에 아이가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겁도 났어요.”

다행히 치료가 잘 돼 12월 15일 배변주머니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어머니는 걱정이 앞선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기능이 많이 돌아와도 정상의 70%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6개월 동안 항문을 전혀 쓰지 않아서 어쩌면 다시 배변주머니를 달아야 할지도 몰라요. 이걸로 치료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전에, 그것도 학교 안에서 아이가 납치됐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벌어졌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학교 측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재량휴업일에 있었던 일이므로 학교의 관리책임이 없다”고 답했다. 어머니는 답답했다. 아이는 계속되는 치료에 힘겨워했고 가족의 생활도 무너졌다. A양의 부모는 “이 모든 게 부모 탓인가” 자책하다 지난 7월 학교 운영 및 설치에 책임을 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통상 위험 아니니 책임질 수 없다”

매일 악몽에 시달린 일곱 달 A양 학교는 나 몰라라

학교 CCTV에 찍힌 김수철과 A양의 모습.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면서 ‘도대체 이게 다 누구 책임인가’를 끝까지 가려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9월 피고 측인 서울시가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답변서를 보고 A양 부모는 더욱 기가 찼다. 서울시는 “학교 재량휴업일에 학생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A양 측 주장에 “당번교사들은 ‘방과 후 수업’ 담당교사가 아니므로 학생들의 출석 상황을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방과 후 컴퓨터교실 담당교사는 학교장과 계약을 체결한 민간사업자 측 강사일 뿐 공무원이 아니므로 출결 확인의 의무가 없다”고 답했다.

A양 부모는 “김수철이 학교에 출입하는 데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은 것은 학교가 경비상 과실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A양 어머니에 따르면 김수철은 오전 9시경부터 1시간가량 학교 주차장을 서성였고 중앙현관 뒤편에서 페인트 작업을 하던 목격자는 “(김수철이) 한눈에 이상하게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사고가 학교생활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도록 예측되거나, 예측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한해 교장이나 교사가 보호감독의무 위반의 책임을 진다”고 답했다. 즉 김수철 사건은 “매우 예외적이고 돌발적인 범죄행위이며 학교생활에서 통상 발생하는 위험이라고 볼 수 없어” 학교 측의 관리책임 범위에 들지 않는다는 것. 또한 운동장 개방에 대해서 서울시는 “초·중등교육법 제11조에 의해 학교 시설과 운동장 개방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복지에 이바지한 것”이기 때문에 “학교를 통행하거나 학교 시설을 이용하는 인근 주민을 일일이 검문하거나 출입 목적을 확인할 수 없다”고 답했다. A양 어머니는 “기가 찼다. 정말 아이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며 울먹였다.

“처음 아이가 집에 안 왔다고 교무실에 알릴 때도 당직 선생님은 ‘친구랑 놀러 갔겠지요’ 하고 태연히 말했어요. 폐쇄회로(CC)TV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CCTV를 다룰 줄 아는 기사가 없다’고 했어요. 결국 신고도 내가 파출소로 달려가서 하고….”

한편 서울시 측에서 참고자료로 제시한 선생님들의 상황 진술을 보면 공통적으로 “오후 2시 30분경 아이를 찾은 후 A양의 어머니가 ‘선생님이 빨리 조치를 취해주셔서 빨리 해결된 것 같다’며 감사하다고 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도 A양 어머니는 “2~3일 후 병문안 온 당시 당직 선생님께 그냥 한 말인데 그걸 거기에 갖다 붙여 자기들 책임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학교가 야속하다”고 털어놓았다.

“만약 학교에서 김수철을 진작 내쫓았다면, 김수철이 아이를 데리고 나갈 때 경비가 제지했다면, 아이가 출석하지 않은 걸 제게 바로 말해주기만 했더라도 이런 고통은 없었을 것 아니에요.”

A양은 대부분의 시간을 병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으며 보낸다. 워낙 손이 야무져 그림도 잘 그리고 만들기도 잘하는데, 기자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A양은 바닥 매트에 앉아 만들기 장난감을 조몰락거렸다. 한참 있다 보니 A양은 아까 먹고 남은 아이스크림 바에 연두색 찰흙을 감싸 꼭 멜론맛 아이스크림 같은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어, 아이스크림이 다시 생겼네?”라고 기자가 묻자 A양이 앞니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어머니에게 “애가 피아노도 잘 친다 하고 미술도 잘하고, 아주 다재다능하다”고 칭찬했더니 어머니는 “공부도 잘한다”며 밝게 웃었다.

병실에서 하루하루 간호사가 꿈

매일 악몽에 시달린 일곱 달 A양 학교는 나 몰라라

현장검증에서 김수철(모자 쓴 사람)이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8월 A양의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뒀다. 딸을 간호하느라 자주 직장을 빠져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한없이 자상한 아버지지만 법정에서 김수철을 봤을 때는 “내 손으로 때려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다시 일자리를 찾고 있다. 현재 가족은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받은 보상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다행히 병원비는 ‘원스톱 지원센터’에서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가족은 이사를 했다. A양 어머니는 “우리 집이 바로 학교 후문 앞이었는데 퇴원하고 그 집으로 돌아가면 계속 그때 생각이 날까 봐 걱정됐다. 나부터도 학교 담벼락조차 보기 싫었다”고 말했다. 한 살 어린 남동생(7)도 그 사건 이후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 학교는 아이들이 인터넷 강의로 수업을 대체할 수 있게 도와줬지만, 사실 병실에서 강의를 듣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은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학습지 풀고 책 읽는 것으로 수업을 대신한다.

사실상 좁은 병실이 현재 이 가족의 집이다. 큰 환자용 침대 옆에 간이침대, 그리고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가 다인 이곳에서 네 식구는 옹기종기 모여 지낸다. A양은 걷는 데 문제가 없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배변주머니 때문에 주변 공원에 산책 나가기도 어렵다. A양 어머니는 “이제 아이도, 부모도 많이 지쳤다. 단란했던 우리 가족에게 ‘생활’이라는 게 아예 사라졌다”고 말했다. 내년 3월 두 아이는 새로운 학교를 다닐 예정이다. ‘새 학교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한시름 놓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불안해요. 그 학교에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오갈 테고…. 아이를 이 나라에서 키울 수 있을지 자체를 잘 모르겠어요.”

병실을 나서기 전, 침대에 앉아 화이트보드에 별 그림을 그리던 A양에게 “커서 뭐 되고 싶어?”라고 물었다.

“간호사 되고 싶어요. 아픈 사람 고쳐주니까.”

귀여운 토끼 천사가 또 씽긋 웃었다.



주간동아 2010.12.20 767호 (p50~52)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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