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5

2010.12.06

해병대는 ‘악’으로 버텼다 이젠 북한 정권 비수로 만들라

서해 5도에 미사일 배치 등 전력 보강 통해 상륙 전진 기지 구축을

  • 이정훈 동아일보 논설위원 hoon@donga.com

    입력2010-12-06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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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는 ‘악’으로 버텼다 이젠 북한 정권 비수로 만들라

    11월 28일 새벽, 중무장을 한 채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 동이 터오는 연평도 해안을 순찰하는 해병대원들.

    연평도 포격전에서 드러난 북한 의도와 우리의 문제점을 차분히 정리해보자. 북한군은 무력으로 한반도를 석권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데, 이를 실현하려면 단시일 내에 서울을 점령해야 한다. 서울은 휴전선에서 불과 50여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북한군은 이 목표 달성에 유리한 편이다. 그러나 한국군은 휴전선과 서울 사이에 많은 부대를 배치해놓았다. 따라서 서울을 점령하려면 혈투를 벌여야 한다.

    이럴 때는 ‘훅’을 날려 상대의 가드가 벌어지게 해야 한다. 서울 서쪽에는 대한민국 제3의 도시인 인천광역시가 있다. 이런 대도시에 해상저격여단(한국의 해병대에 해당)을 상륙시키고 증원군을 계속 집어넣으면, 한국 육군은 ‘옆구리’를 막기 위해 서울 북쪽 부대 일부를 보낼 수밖에 없다. 서울 북쪽의 한국군 가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때 2파로 기동부대를 휴전선에 투입해 한국군 방어선을 찢어버리고 서울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군이 펼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면전인데, 이 작전을 펼치려 보니 큰 장애가 발견된다.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도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서해 5도 해병의 임무는 상륙 저지

    서해 5도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북한군이 공기부양정에 탄 해상저격여단을 인천에 상륙시키면 ‘뒤가 불안’해진다. 서해 5도에 ‘살아 있는’ 한국 해병대가 공기부양정이나 공기부양정이 떠나는 북한 쪽 항구를 공격해 ‘훅 작전’을 무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인천상륙작전을 하기 전에 서해 5도부터 점령해야 한다. 북한은 서해 5도를 점령한 후 휴전선을 돌파하는 2단계 공격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아군은 서해 5도 해병대의 주 임무를 적의 상륙 저지로 정했다. 서해 5도에는 북한군의 포격, 공습을 받아도 해병대와 주민들이 장기간 대피할 수 있는 대피소와 지하 진지를 구축했다. 이 진지와 대피소 덕분에 11월 23일 연평도의 해병대와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북한군 포격에도 큰 인명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주 임무가 상륙 저지이다 보니 국방부는 해병대에게 상륙을 저지하는 방어용 무기만 갖게 했다. 그러다 1999년 제1차 연평해전 후 비로소 북한의 곡사포 사격에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해, 155mm K-9 자주포 포대를 배치했다. 제1차 연평해전에서 패한 북한군이 곡사포를 이용한 TOT(Time On Target) 사격으로 아군 함정을 공격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TOT 사격이란 멀리 있는 포를 먼저 쏘고, 앞에 있는 포는 조금 늦게 쏴, 같은 시간에 모든 포탄이 동일 목표에 떨어지게 하는 일제사격이다. 곡사포는 정밀한 사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점(點)에 불과한 함정을 맞힐 수 없다. 그래서 같은 시간에 ‘탄우(彈雨)’가 쏟아지는 TOT 사격을 해서, 그중 몇 발이라도 맞히는 것이다. 함정은 TOT 사격을 피할 방법이 없기에 적의 곡사포를 제압하고자 백령도와 연평도에 K-9 한 개 포대(6문)를 배치했다.



    포사격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표적 확인이다. 적은 아군의 공격을 의식해 끊임없이 포의 위치를 바꾸므로, 정찰활동으로 그 변화를 추적해야 한다. 그러나 아군은 바다 건너 북한으로 정찰활동을 할 수색대를 투입할 수가 없다. 북한에서 본 백령도와 연평도는 점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 안에서 K-9을 옮겨봐야 거기가 거기다. 그냥 TOT 사격을 퍼부으면, 북한은 그중 몇 발이라도 K-9을 때리는 전과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북한군은 넓은 땅 이곳저곳으로 포대를 옮길 수 있으니 해병대 K-9은 정밀 사격을 할 수가 없다. 해병대는 이 맹점을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나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합참)은 지난해 말까지 묵살했다. 그러다 지난 1월 말 우리 정부는 북한군이 두 섬 앞의 북방한계선(NLL) 바다로 TOT 사격을 하자 깜짝 놀라, 육군이 쓰던 대포병(對砲兵) 레이더 중 가장 오래된 것을 보내줬다. 이 레이더는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오는 적 곡사포탄의 궤적을 잡아 포탄이 발사된 위치를 역추적한다. 그런데 지난 8월 북한이 NLL 바다로 또 무더기 사격을 했을 땐 이 레이더가 너무 낡아서인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대포병 레이더가 불안한 상태에서 우리 군은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에 임해야 했다.

    고장, 오판 속에서 빛난 해병의 투혼

    연평도 포격전에서 해병대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많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해병대는 이 포격전에서 특유의 투혼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 사건은 11월 16일 아군이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www.khoa.go.kr) ‘항행경보’ 코너에 ‘연평도 해역에서 포사격 훈련을 한다’는 사실을 공지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북한은 연평부대가 실사격 훈련을 하기로 한 11월 23일 오전 8시 20분,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 단장 명의로 ‘북측 영해에 대한 포사격이 이뤄질 경우 즉각적인 물리적 조치를 한다’고 경고했다. 이에 합참은 위기관리 태세를 유지한 상태에서 10시 15분부터 연평도 서남방 4.8km 바다를 향해 각종 포탄 3000여 발을 쏘는 실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에 동원된 K-9은 4문이었다. 나머지 2문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북한을 향해 놓았다. 연평부대는 오전 사격을 끝내고 오후 사격에 들어가 4문이 15발씩 쏘게 됐는데, 마지막 60발을 쏘려던 4번포에서 갑자기 장전된 포탄이 발사되지 않는 고장이 일어났다. 장전된 포탄은 잘못 건드리면 터질 수 있어 기술자들이 뽑아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4번포 불발로 포대원들이 주춤할 때 북한의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 중 한 발이 1번포 포대 안을 때렸고, 또 한 발은 3번포 포대 외벽을 때렸다. 포탄은 장약을 터뜨렸을 때 나오는 힘으로 날아간다. 장약을 많이 넣으면 길게 날아가고, 적게 넣으면 짧게 날아가는 것이다. 이날 사격은 4.8km 떨어진 해상으로 쏘는 것이었으므로 장약을 많이 빼놓았다.

    그런데 1번포 포대 안에 떨어진 적 포탄의 파편이 날리면서 빼놓은 장약에 불이 붙었다. 장갑이 없는 견인포였다면 파편으로 병사들이 몰살할 수도 있었으나 K-9은 장갑을 두르고 있어 전원 무사했다. 하지만 파편으로 충격을 받은 1번포는 자동 발사가 되지 않았다. 화재 또한 점점 커져 병사들은 1번포 조작을 포기하고 화재 진압에 주력했다. 3번포는 포대 외벽이 피격돼 상대적으로 작은 화재가 일어났다. 3번포 역시 파편을 맞아 자동사격장치가 고장 났지만, 병사들이 수동으로 전환해 사격에 합류할 수 있었다.

    북한군은 2시 34분부터 46분까지 12분간 1차 사격을 퍼부었다. 모두 150여 발을 쏴서 90여 발은 바다에, 60여 발은 지상에 떨어졌다. 북한군 사격 시 피신했던 자주포 대원들은 북한 사격이 끝난 1분 뒤인 2시 47분부터 고장 난 1, 3, 4번포를 제외한 3문의 자주포를 무도 쪽으로 돌려 3시 15분까지 28분 동안 50발을 퍼부었다.

    해병대는 ‘악’으로 버텼다 이젠 북한 정권 비수로 만들라

    해병대가 서해 5도를 상륙 전진 기지화하기 위해 요구하는 무기들. 대공자주포 ‘비호’, 휴대용 방공 미사일 ‘신궁’, 지대지 유도미사일 ‘현무’, 국산 방공미사일 ‘천마’.

    그러나 대포병 레이더가 적의 사격 원점을 잡아주지 못해 포대원들은 평소 자주포에 입력해놓은 좌표대로 발사했다. 접적 지역에서의 포사격은 예민한 일이라 합참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A일보 보도에 따르면 다급한 연평부대의 요청에 대해 합참은 ‘쏴라’ ‘쏘지 마라’는 결정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최고 사령부의 지시가 없자 연평부대장이 자기 판단으로 50발을 쏘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군이 포를 쏘는 중에도 북한군은 3시 12분부터 29분까지 17분간 다시 20여 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북한군이 재차 사격을 할 때 자주포대원들은 초기 4분간 맞사격을 하다 10분간 피신했다. 그리고 적이 사격을 끝내기 4분 전인 3시 25분부터 41분까지 16분간 30발을 발사했다. 이때는 대포병 레이더가 정상으로 작동해 개머리에 있는 적 포대를 향해 제대로 발사했다. 고장 났던 3번포도 수동 조작으로 사격에 참여했다.

    A일보에 따르면 이때 합참은 20발을 응사하라고 했으나, 연평부대장은 30발을 대응사격하게 했다고 한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연평부대장 행동은 무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포격전이 끝난 후 우리의 대응이 약했다는 지적이 많자, 누구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3번포가 뒤늦게 합류했다고 보면 연평부대는 3.5문의 K-9으로 44분간 80발을 쏘았다. K-9의 최고 사격속도는 분당 6발이나, 이는 최초 사격에서만 가능하다. 연속사격을 하면 포신이 과열되므로 분당 1발 사격이 적정하다. 연평부대 K-9은 적 포탄이 떨어지는 와중에 대당 ‘2분에 1발꼴’로 사격을 실시했다. 그리고 마무리 사격을 하는 성과도 거뒀다. 연평도 포격전은 연평부대가 단독으로 12분간 사격을 퍼부은 후 종료됐다.

    여기서 발견되는 것은 ‘악으로 깡으로’ 덤비는 해병대 기질이다. 이에 대해 육군은 감탄하는 눈치다. 한 육군 장성은 “역시 해병대는 해병대야. 그런 상황에서 육군 지휘관은 그렇게 단호한 결심을 절대 못하지. 그렇게 많은 사격을 못하지”라고 했다.

    이러한 사달을 겪은 뒤 해병대와 서해 5도를 보는 우리 군의 시각이 바뀌었다. 서해 5도를 상륙을 막기 위한 방어기지로 유지하는 것보다 북한군을 섬멸하는 발진기지로 보자는 의견이 많아진 것이다. 방어기지로만 운용하면 연평도 주민 보호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급히 K-9 포대와 대포병 레이더, ‘한국판 방사포’인 다연장로켓포(MLRS) 포대가 배치됐다. 육군이 쓰던 장비와 함께 긴급히 들어간 것이다.

    천마, 신궁, 비호, 현무를 배치하라!

    그러나 좁은 섬에 많은 장비가 몰려 있으면 적 공격에 표적이 된다는 부담이 있다. 적의 공군기 내습이 특히 문제다. 적 공군기는 아군 공군기를 출격시켜 막을 수 있지만, 아군기를 공중전에만 투입하는 것은 낭비다. 그래서 해병대는 국산 방공미사일 ‘천마’, 휴대용 방공미사일 ‘신궁’, 대공자주포 ‘비호’를 배치해주길 바란다. 날아온 적기를 천마와 신궁, 비호로 잡아버리면 아군기는 적 공군기지를 작살내거나 지대함 미사일 기지를 파괴해 아군 함정의 접근을 허용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해병대 예비역들은 “왜 우리는 방어작전만 계획하느냐”고 반문한다. “북한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해 서해 5도를 노린다면, 우리는 서해 5도를 발판으로 평양 근처로 들어가는 대동강상륙작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동강상륙작전을 준비한다면 서해 5도는 그야말로 최고의 전진기지다. 수심이 깊은 대청도에 상륙함을 배치하고 수륙양용 장갑차와 기동헬기, 공격헬기 등을 우선 보강한다. 여기에 현무-2나 현무-3 미사일도 배치한다면 중국까지 견제할 수 있다.

    서해 5도는 적의 어떤 공격에도 침몰하지 않는, 조지워싱턴 항모보다 수십, 수백 배 크고 넓은 불침(不沈) 상륙함이다. 연평도 포격전 때 해병대 1사단은 연평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완전무장한 1개 연대를 출동시키려 했었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남북한은 면을 때리는 곡사포를 썼기에 모두 정확한 사격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주목할 것은 상대 포격에도 누가 더 투혼을 발휘했느냐다. K-9과 MLRS, 대포병 레이더에 이어 천마와 신궁, 비호, 현무-2와 3, 공격용 헬기까지 보강된다면, 서해 5도는 김정일 정권의 최후를 노리는 결정적인 비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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